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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35장 한랜드 [8]

오늘의 쉼터 2015. 10. 22. 17:28

<370> 35장 한랜드 [8]

 

{734) 35장 한랜드-15

 

 

대동강 변의 초대소는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초대소에서 양만철과 점심을 먹은 서동수가 방에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북한은 신의주특구가 발전되면서 경제가 살아났고 소득이 높아졌다.

암시장이 불 번지는 것처럼 일어났는데 한국산 밀수품이 신의주를 통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국은 전처럼 가혹하게 억제를 하지 않았으므로 북한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한 대신 서민 경제가

살아났다.

이제 휴전선에서의 긴장감은 거의 사라졌고, 핵 협상은 유야무야되었다.

북한은 핵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는데 폐기는 미루었다.

미·일·중 3국이 끈질기게 압박을 했지만 정작 북한 핵의 대상국이었던 한국 정부가

두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뻔했다.

남북한 연방이 핵을 보유하려는 것이다.

국가 간의 모든 이해관계도 개인과 다르지 않다.

이익이 되면 감싸고 해가 되면 없앤다.

그래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배신과 위약(違約)이 더 뻔뻔해진다.

소파에 눕듯이 앉아 깜박 잠이 들었던 서동수가 노크 소리에 깨어났다.

응답을 했더니 곧 문이 열리면서 한복 차림의 여자가 들어섰다.

여자를 본 서동수가 빙긋 웃었다. 하성숙이었기 때문이다.

양만철이 연락을 하더니 이제야 도착한 것 같다.

시선을 받은 하성숙이 눈을 크게 뜨더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한 손으로 입을 가렸는데 얼굴이 상기되었다.

“오랜만이야. 지금도 그 초대소에 있었던 거야?”

서동수가 묻자 하성숙이 다가와 두 걸음 거리에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집에 돌아가 있다가 불려 온 길입니다.”

“그랬구나. 어쨌든 반가워.”

“저도 반갑습니다.”

“여기 앉아.”


서동수가 옆자리를 가리켰다.

“내가 보고 싶다고 불러 달랬어.”

“들었습니다.”

하성숙이 조심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

급하게 왔는지 긴 머리는 뒤로 묶었는데 진주색 한복 저고리에 무릎 밑까지

내려온 검정 치마를 입었고 단화 차림이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곧 안정이 되었는지 하성숙이 머리를 돌려 서동수를 보았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장관 동지.”

“아직도 한랜드에 가고 싶어?”

서동수가 묻자 하성숙이 먼저 머리부터 끄덕였다.

“예, 그곳에서 식당을 하고 싶어요.”

“참, 베트남에서 식당 일도 했다고 그랬지?”

“네, 3년 있는 동안 주방일, 영업까지 익혔거든요.

베이징 주재 대사관에서는 식당 관리 부주임이었습니다.”

“한랜드에서 식당을 차리려면 몇 만 달러가 있어야 할 텐데.”

“돈은 있습니다. 돈을 갖고 나갈 수만 있으면 됩니다.”

하성숙의 두 눈에 열기가 띠어졌으므로 서동수가 웃었다.

투자자를 만났다.

“누구하고 나갈 거야?”

“오빠하고 어머니하고 저하고…….”

입안의 침을 삼킨 하성숙이 말을 이었다.

“포병대 상위인 오빠는 올케하고 열 살짜리 딸이 하나 있습니다.

세 식구죠. 오빠 가족하고 어머니, 저까지 다섯 식구인데요.”

하성숙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 올케 음식 솜씨도 좋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모은 돈까지 합하면 10만 달러 정도는 됩니다.”

보고 싶어서 불렀는데 투자자를 만난 셈이다.

 

 

 

 

{735) 35장 한랜드-16

 

 

오후 7시 반,

서동수가 초대소로 찾아온 김동일과 저녁 식사를 한다.

식당의 원탁에는 둘이 앉았다.

시중을 드는 직원들도 멀찍이 떨어져서 다가오지 않는다.

서동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통령께선 췌장암이라고 하셨습니다.

생존기간은 6개월, 5개월 내에 대통령 선거를 끝내고 물러나신다고 합니다.”

식사가 거의 끝났을 때 서동수가 말했다.

김동일은 시선만 주었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대통령으로 지금 신의주 장관 조수만 씨를 지원할 것 같습니다.”

김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분, 무난하지요. 대통령에 당선되시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잔을 든 김동일이 서동수를 보았다.

“그럼 연방대통령 후보로도 조수만 씨가 나옵니까?”

“대통령은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조수만 씨는요?”

“연방의 한국 총리를 맡게 되실 겁니다.”

“그럼 연방대통령 선거에서는 형님과 내가 대결하게 되는 겁니까?”

김동일이 굳어진 얼굴로 물었지만 서동수는 웃었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참모들이 싫어하겠는데요.”

“글쎄 말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동일이 빙긋 웃었다.

“정말입니다. 우리 당에서는 연방대통령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거든요.”

“어쩔 수 없이 승낙한 겁니다.”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한 대통령이 갑자기 그렇게 되셔서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건 이해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동일이 옆쪽 소파로 다가갔고 서동수도 뒤를 따랐다.

소파에 앉은 김동일이 말을 잇는다.

“한 대통령의 병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안 전화도 드렸지요.”

한복 차림의 여직원이 인삼차가 담긴 잔을 내려놓고 소리 없이 물러갔다.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솔직히 한 대통령을 연방대통령 선거에서 누를 자신이 있었지요.”

한 모금 인삼차를 마신 김동일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한국 야당이 이미 은밀하게 우리 측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야당 기반은 의외로 깊고 넓게 퍼져 있더군요.”

“…….”

“그것이 꼭 이념이나 정책 차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현재의 여당, 대통령과 지도층이 싫다는 비율이 30퍼센트가 넘는다고 합니다.”

“…….”

“이 표가 다 우리한테 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한에서 연방대통령이 나오면 북한 주민은 종이 되어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끌려다닌다는 선전 선동을 할 겁니다.

그럼 먹히게 되어 있어요.”


서동수가 입맛만 다셨고 김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형님이 후보로 나오시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요.

형님이 신의주를 개발한 분이란 말씀입니다.

그런 선전 선동이 먹히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더구나 한랜드까지 개발하는 중이시니…….”

그러고는 김동일이 이맛살을 찌푸린 얼굴로 길게 숨을 뱉었다.

“난 망했습니다.”

“나아, 참.”

같이 숨을 뱉은 서동수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역시 이맛살이 찌푸려져 있다.

“권불십년이라고, 몇 년 지나면 다들 물러날 텐데 왜들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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