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35장 한랜드 [4]
{726) 34장 한랜드-7
순찰차가 멈춘 곳은 다음 휴게소 주차장이다.
한 시간쯤 달린 터라 밤 11시 반, 한시티는 한 시간 거리가 되었다.
“커피나 한잔 마십시다.”
앞쪽을 향해 말한 김태식이 문을 열다가 생각난 것처럼 장현주에게 말했다.
“따라와.”
차에 혼자 둘 수는 없을 것이다.
휴게소 식당은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운전사로 보이는 손님이 드문드문 앉았을 뿐이다.
경찰들은 따로 자리 잡았고 김태식과 장현주는 구석 쪽 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시켰다.
김태식은 그 후로 일절 말을 안 했는데 뭘 마실 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커피가 올 때까지 물끄러미 앞에 앉은 장현주의 가슴만 보았으므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삼킨 김태식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옆쪽 통로로 나갔다.
화장실에 가는 것 같았다.
그제야 커피잔을 든 장현주가 한 모금을 삼켰다.
맛있다.
설탕도 안 탄 커피가 이렇게 맛있다니. 곧 커피 맛을 보지 못할 운명이기 때문인가?
다시 한 모금을 삼킨 장현주의 눈이 뜨거워졌다.
평양에 남겨둔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함흥의 언니, 형부, 그리고 여섯 살짜리 조카 옥이, 모두 반역자 가족으로 총살형이 아니면 수용소행이다. 수용소는 더 참혹하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데, 미안합니다.
형부, 언니, 옥아, 그리고 어머니, 새 세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모두가 잘사는 세상….’
그때 앞쪽에 다시 김태식이 앉았으므로 장현주는 머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헛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김태식 대신으로 김광도가 앉아있다.
그때 김태식이 말했다.
“벌써 영하 40도요. 오늘은 50도까지 내려가겠는데.”
김광도다.
김광도가 말하고 있다.
숨을 들이마신 장현주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나한테 인계하고 갔습니다.”
김광도가 김태식이 마시다 만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커피 맛이 형편없군, 신고해야겠어.”
“…….”
“보릿가루를 볶아서 만든 것 같은데.”
머리를 든 김광도가 장현주를 보았다.
“자, 갑시다. 여기서 두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잠시 후에 장현주는 김광도와 대형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한랜드로 달려가고 있다.
운전사는 러시아인 직원 유리, 한국말을 모른다.
이제는 김광도가 김태식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장현주는 그것이 더 편안했다.
문득 소리 내서 웃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더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으므로 서둘러 창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검은 유리창이 거울 역할을 해서 김광도의 옆모습이 비쳤다.
김광도는 앞쪽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턱을 조금 들었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손끝으로 눈물을 닦은 장현주가 다시 바로 앉았을 때 김광도가 말했다.
“내가 김태식 씨한테 평양에 계신 당신 어머니하고 함흥의 언니 가족을
한랜드로 모셔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숨을 들이마신 장현주가 몸을 굳혔고 김광도의 말이 이어졌다.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뭐, 벗은 김에 오입한다고 한꺼번에 처리해야지요.”
“…….”
“당신 가족이 북한에서 제대로 살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리고 김광도가 좌석에 등을 붙이고 앉더니 긴 숨을 뱉었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가족이 오고 나서 나하고 이혼하든지 말든지 해요.”
{727) 35장 한랜드-8
밤 12시, 아무르바 안쪽 사무실에 사내 여섯 명이 둘러앉아 있다.
상석에는 러시아 마피아의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라진, 왼쪽에는 아무르바 사장
마르비와 라진의 심복 노보스키가 앉았고, 그 앞쪽에 대전 유성파의 전무 고복진과 조상규,
통역 빅토르 안이 자리 잡았다.
라진은 보드카에 적당히 취한 상태인데,
고복진과 약속을 11시에 했지만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한 후에 방금 불러들였다.
라진이 웃음 띤 얼굴로 고복진을 보았다.
“상의할 것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오?”
통역을 들은 고복진이 바로 대답했다.
“예, 저희 보스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만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동맹?”
빅토르 안에게서 시선을 뗀 라진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라진의 시선을 받은 마르비는 따라 웃었지만 노보스키는 외면했다.
곧 라진이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떤 동맹을 말하시오?”
“예, 미·일의 마피아-야쿠자 연합세력, 그리고 김광도의 세력에 대비하기 위한 동맹입니다.”
“방금 김광도의 세력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김광도가 한랜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압니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서울 강남의 거대 조직이 곧 자리를 잡을 것 같은데
우리가 당신들하고 서둘러 동맹을 맺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겠소.”
이것이 핵심이다.
통역하기 쉽도록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던 라진이 곧 답변을 듣는다.
“김광도의 방해로 영업이 안 됩니다.
우리 업체의 지분을 드릴 테니까 러시아에서 보호해 주십시오.”
작정하고 왔기 때문에 고복진도 가감 없이 말하자 라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이건 동맹이 아니라 수하가 되겠다는 말이다.
앉아서 보호비만 받게 되었다.
라진이 물었다.
“보호비는?”
“영업이익의 10퍼센트.”
“20퍼센트는 받아야 하겠는데. 인건비가 많이 나가.”
“우리 보스는 15퍼센트가 넘으면 차라리 업체 문을 닫겠다고 했습니다.”
“좋아, 그럼 15퍼센트.”
의자에 등을 붙인 라진이 다시 얼굴을 펴고 웃었다.
“계약서에 사인한 날부터 업체에 손님이 쏟아지게 만들어 드리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중국 측하고 연대한 사실을 알고 있지요?”
“알고 있습니다.”
“강남의 조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요?”
“예, 라진 씨.”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 것 같소?”
“그것이….”
고복진은 심호흡부터 했다.
한국 최대 조직인 강남의 신한국파는 한랜드에 전력투구하기로 내부 총회의 의결을 받았다.
신한국파는 12개 지역 조직의 연합체 형식인데, 말이 강남의 신한국파지 본부만 강남에 있을 뿐
부산, 대구, 전주, 광주, 서울, 대전, 인천 세력 등을 규합한 연합조직이다.
현재 신한국파 회장은 서울 강남회 회장인 백기종인데, 강남건설 회장이기도 하다.
고복진이 말했다.
“저희보다 10배는 클 겁니다.”
그래서 러시아 마피아와 붙은 것이다.
유성파는 신한국파에 끼지 못했다. 라이벌인 대전파가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라진이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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