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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35장 한랜드 [3]

오늘의 쉼터 2015. 10. 2. 16:20

<365> 35장 한랜드 [3]

 

{724) 35장 한랜드-5

 

 

‘유토피아’는 40피트 컨테이너를 18개 늘어놓은 나이트클럽으로 꽤 큰 업소 축에 든다.

오후 7시 반, 유토피아 안쪽 사장실 분위기는 무겁다.

상석에 앉은 대전유성파 회장 박기호의 얼굴은 굳어졌고,

좌우에 늘어앉은 간부들도 모두 시선을 내리고 있다.

그동안 유성파는 한랜드에 쏟아붓듯이 투자를 해서 두 달간 룸살롱 4개, 식당 2개,

모텔 2개를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그러나 모텔 두 곳만 현상유지를 할 뿐 나머지는 적자 운영인 것이다.

특히 유토피아는 하루에 1000만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 원인은 단 하나, 김광도의 ‘한강그룹’이 운영하는 업소에 손님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방금 업무 보고를 끝냈는데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박기호가 입을 열었다.

“방법 없냐?”

잘못 말했다가는 재떨이나 물병이 날아가는 터라 모두 시선만 피하고 있다.

박기호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원인은 박기호 때문이다.

가게나 식당을 김광도의 업소 바로 옆에다 세우라고 했던 것이다.

김광도 업소 손님을 빼앗겠다는 의도였는데 지금은 박기호 소유의 업체들이

김광도 업체의 선전용 간판 노릇을 하는 꼴이 되었다.

박기호도 제 눈으로 보고 아연실색을 했다.

첫날에 유성파 종업원들은 손님을 끌어갔는데 둘째 날이 되었을 때

밖에 나온 종업원들은 혼비백산을 했다.

사내들 수백 명이 가게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세어 보았더니 가게 한 곳당 50여 명씩 가로막아서 문도 보이지 않았고 덤빌 엄두도 못 내었다.

내무부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와보고는 그냥 돌아가 버렸다.

별일 아니라는 것이다.

유성파 행동대는 합쳐서 100명도 안 되었는데 이쪽은 500명이 넘는 데다 모두 북한 출신이었다.

그때부터 유성파 가게는 물만 먹었고 지금도 가게 앞에는 북한 양아치들이 모여서 있다.

박기호는 어금니를 물었다.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 김광도를 찾아가 으스대면서 겁을 주었던 일이 생각날 때마다 관자놀이가 쑤신다. 그때 고문 유충섭이 말했다.


“회장님, 김광도는 한강회 회장입니다. 북한에서 온 밀입국자를 모두 장악하고 있어서 솔직히….”

박기호도 아는 사실이었으므로 유충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나 작심을 한 듯 말을 잇는다.

“저기, 김광도 하고 화해를 하는 것이, 허락하신다면 제가 가 보겠습니다만.”

박기호가 눈만 치켜뜨고 있자 유충섭의 말이 빨라졌다.

“서로 공존하자고 제의하겠습니다. 예, 이대로 가면 서로….”

“서로?”

박기호가 말을 자르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었다.

“야, 유 고문, 너 나를 얼라로 봐? 그놈이 협상을 할 것 같냐?

이대로 두 달, 아니 한 달만 가면 우린 문 닫아야 된다.

행정청 놈들도 모두 한강놈들 편이고 말야. 그런데 서로라니?”

유충섭은 숨만 쉬었고 박기호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협상을 하려면 러시아 마피아 하고 해야 돼. 그래야 자존심도 세우고 조건도 좋아진다.”

어깨를 부풀린 박기호가 전무 고복진을 보았다.

“고 전무, 네가 가라.”

“예, 회장님. 가지요.”

대답부터 한 고복진이 물었다.

“가서 뭐라고 할까요?”

“김광도의 한강을 같이 죽이자고 해. 그럼 알아 듣고 조건을 내밀 거다.”

 

 

 

 

 

{725) 35장 한랜드-6

 

 

버스가 멈춰섰으므로 장현주는 눈을 떴다.

이곳은 한시티를 벗어난 고속도로 휴게소.

 불을 환하게 밝힌 휴게소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여러 대 주차되었다.

오후 10시 반, 한시티를 8시에 출발했으니 2시간 반을 달려온 셈이다.

그때 버스문이 열리더니 사내 두 명이 들어섰다.

방한복 가슴에 한랜드 마크가 붙어 있다.

내무부 소속 경찰이다.

버스문이 다시 닫혔으므로 장현주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검문이다.

검문은 입국자 중심으로 했고 그것도 형식적이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가 된다.

버스 승객은 거의 러시아 관광객이었고, 중국인이 서너 명 섞였다.

그때 앞장선 경찰이 곧장 장현주에게 다가왔다.

시선이 마주친 후에 떼어지지 않는다.

경찰은 한국인 같다.

장현주 앞에 멈춰선 경찰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한국말이다.

“장현주 씨죠?”

“네.”

“같이 가시죠. 짐은 어디 있습니까?”

“왜 그러시는데요?”

“체포되신 것입니다. 죄명은 내란선동….”

장현주가 숨을 들이켰을 때 경찰의 말이 이어졌다.

“마약 공급 혐의도 있습니다. 마약 도매상 역할을 하셨더군요.”

버스 안의 시선이 모두 모여졌고 주위는 조용하다.

뒤쪽 경찰은 러시아인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때 장현주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경찰이 한걸음 물러섰다.

“밖에 순찰차가 있습니다.”

밖의 순찰차에는 한 사내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장현주가 옆자리에 앉았어도 눈만 껌벅이며 바라만 보았다.

순찰차는 곧 휴게소에서 유턴하더니 한시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탄 경찰 둘도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차 안은 엔진음만 울리고 있다.

옆자리의 사내는 40대 중반쯤 되었다.

거친 피부, 납작한 코에 눈이 가늘다.

어둠을 뚫고 순찰차는 속력을 내어 달려가고 있다.

한랜드 감옥에 갇혔다가 북한으로 추방되면 바로 총살될 것이다.

공개 총살될 가능성이 많다. 그랬으면 좋겠다.

관중이 많은 곳에서 총살되면 두려움이 적어진다는 소문이 났다.

자신이 무대에 선 배우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배우다.

인생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한 편의 연극. 그때 옆자리 사내가 말했다.


“난 보위부 체포반 반장 김태식이다.”

숨이 막힌 장현주가 목만 벌렸다.

그러나 감히 머리를 돌려 사내 시선을 받지 못했다.

앞만 본 채 굳어 있다.

사내의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너는 아는가? 이제는 한랜드가 북조선 인민들의 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장현주는 몸이 공기를 뺀 비닐 풍선처럼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사내가 앞쪽을 향한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한랜드로의 탈북도 눈감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한랜드는 실패한 공산주의의 대안이나 같았다.”

“…….”

“그것이 지도자께서 심사숙고 끝에 내리신 결론이었다.”

그때 김태식이 머리를 돌려 장현주를 보았다.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 있다.

“그런데도 실패한 공산주의를 다시 한랜드에 심으려고 하다니.

너희들 같은 족속 때문에 일본인한테서도 무시를 당하는 것이야.”

어깨를 부풀린 김태식이 한마디씩 씹어뱉듯이 말했다.

“너희의 더러운 피로 조국 땅을 더럽힐 수 없다. 이곳 동토의 거름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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