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35장 한랜드 [1]
{720) 35장 한랜드-1
아무르바 안쪽의 사무실로 두 사내가 들어섰다.
동양인이다.
기다리던 라진이 웃음 띤 얼굴로 맞는다.
“어서 오시오, 왕춘(王春) 선생. 반갑습니다.”
라진이 50대쯤의 사내와 악수를 나눴다.
왕춘은 삼합회의 부회장으로 서열 4위의 거물이다.
삼합회는 중국 공산당 정부 흉내를 내는지 주석 격인 회장과 7인의 부회장이 통치한다.
왕춘은 조직과 자금 담당 부회장이니 실세 중 실세다.
“반갑습니다, 우장(吳江) 선생.”
라진이 40대 중반쯤의 사내와도 악수를 하고는 동업자 이바노프를 소집했다.
우장은 삼합회의 한랜드 지역총책 역할을 맡고 있다.
넷이 마주 보고 앉자 라진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역시 한랜드가 세계의 축소판이 되고 있군요.
우리가 이곳에서 만나고 있지만 야쿠자는 일본에서 미국 마피아하고
한랜드 진출 건을 상의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왕춘이 검은 얼굴을 펴고 웃었다.
“한랜드만 한 황금시장이 없거든요.”
“미·일 세력에 밀리면 안 되지요.”
라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바노프가 머리를 끄덕였고 왕춘이 거들었다.
“우리가 기선을 잡은 상황 아닙니까? 더구나 지역적, 혈연적 관계로 주도권을 쥐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라진이 웃으며 말을 잇는다.
“한랜드의 고려인과 조선족만 해도 25%나 됩니다.
더구나 한랜드는 러시아 임차지이고 중국과도 가깝습니다.
이곳을 우리들의 근거지로 키워야지요.”
그리고 이제 러시아, 중국이 동맹을 맺을 작정인 것이다.
그때 왕춘이 헛기침을 했다.
“한랜드 정부에서 한국인 사업가 김광도를 키우고 있는 것을 아시지요?”
왕춘은 김광도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했다. 라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놈이 한국과 북한의 대리인 역할을 합니다.”
“김광도가 북한인 심복 백진철을 내세워 세력을 모으고 있는데 벌써 조직원이 300명이 넘었더군요.”
왕춘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한랜드에서 축소판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러와 미·일, 그리고 남북한 연합 세력 간에 말입니다.”
“승자가 이 황금랜드를 독차지하게 되겠지요.”
라진이 느긋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국의 5개 호텔·카지노 체인과 일본의 다나카 그룹이 진출하면서
곧 마피아와 야쿠자가 끼어 들어올 겁니다.”
이미 한랜드 정부의 투자 승인을 받아 놓은 상태인 것이다.
미국과 일본 기업의 투자 금액은 러시아와 중국 측 기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엄청난 물량과 함께 마피아와 야쿠자가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때 왕춘이 입을 열었다.
“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우리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러시아 정부 측에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한랜드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왕 선생.”
라진이 웃음 띤 얼굴로 왕춘을 보았다.
“이 한랜드는 시베리아 지역의 경제 개발을 위해 임차해 준 땅입니다.
러시아는 이곳을 한국의 북방 영토로 내준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러시아 정부도 우리를 적극 지원하고 있지요.”
동병상련이다. 한국의 국력 확장에 대한 러·중 간 입장이 분명하게 맞는다.
이로써 러·중 대리인 격인 마피아와 삼합회 간 협상은 의견 일치를 보고 끝났다.
(721) 35장 한랜드-2
한시티 서북쪽에 대형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한랜드 정부에서 서울 남대문시장을 모델로 만든 곳인데 상점은 모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졌고,
가로 세로가 각각 2㎞에 이르는 정사각형의 대형 시장이다.
시장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었으므로 장현주는 낮에 이곳에 와서 실크로드 주방의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오후 3시, 장현주가 시장 서쪽 식당가의 함흥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사내가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으로 따라 들어간 장현주가 구석 쪽 의자에 앉았을 때 주방 아줌마가 밖으로 나갔다.
주방에는 사내와 장현주 둘만 남았다.
40대쯤의 사내는 마른 얼굴에 표정이 굳어 있다.
주방이 좁았으므로 바짝 붙어 앉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개성식당 조금옥 동무가 평양으로 소환되고 나서 다 자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에 있던 동지들이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내의 이름은 이석진. 어제 평양에서 탈출해온 신(新)공산당의 회원이다.
장현주도 신공산당의 간부회원인 것이다.
이석진이 말했다.
“김동일 위원장의 강력한 지시를 받은 보위부가 체포반을 이곳으로 급파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현주는 체포 0순위다.
장현주가 머리를 들었다.
“조봉수 비서도 체포되었어요?”
조봉수가 신공산당의 핵심인 것이다.
김동일 체제에도 비판적이었고, 썩어빠진 남조선 주도하에 한반도가 자본주의화 되는 것에도
반대했던 이상가. 지도자 김동일의 최측근으로 선전선동부 비서인 조봉수가 한랜드를
신(新)공산주의 국가로 건설하려고 했다.
장현주의 시선을 받은 이석진이 외면했다.
“실종되었는데 소문으로는 총살당했다고 합니다.”
“…….”
“그래서 장 동무도 피하는 게 낫겠습니다.
나는 한랜드를 떠나 러시아 서쪽으로 숨어들 작정입니다.”
“…….”
“내가 그 말 전하려고 다시 이곳에 온 겁니다. 시간이 없어요, 장 동무.”
장현주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무력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졌고 가슴에 쇳덩이가 든 것 같다.
이윽고 머리를 든 장현주가 주머니에서 접힌 지폐를 꺼내 이석진에게 내밀었다.
“이거 2000달러예요. 여비도 모자라실 텐데 갖고 가세요.”
“장 동무…….”
지폐를 응시하던 이석진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이더니 주르르 볼로 흘러 떨어졌다.
아직 이석진은 손을 내밀지 않는다.
“무슨 돈이 있다고 이걸 주십니까?”
“빌렸어요. 자, 어서 받으세요.”
김광도한테서 받은 돈이다.
이윽고 돈을 받은 이석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장 동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곧 보위부 체포반이 온다는 데 말입니다.”
“아직도 날 믿고 있는 동지들이 이곳에 남아 있어요.”
장현주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저만 도망칠 수는 없지요.”
“분합니다.”
어깨를 추켜올렸다가 내린 이석진이 장현주에게 악수를 청했다.
“장 동무, 미안합니다.”
“어서 떠나세요.”
이석진의 손을 쥔 장현주가 일어서며 웃었다.
맑은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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