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34장 남과 북의 꿈 [9]
{715) 34장 남과 북의 꿈-17
“잘됐다. 난 아직도 그저 그렇다.”
김광도는 저절로 튀어나온 제 말에 몸이 굳어졌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온 것 같다.
신지현의 검은 눈동자와 부딪쳤을 때 4년 전의 어느 날이 떠오른 것이다.
헤어지기 전이었는데 그때의 얼굴이다. 다시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여긴 직장이 꽤 많아. 험한 일이지만 놀지는 않아.
지금은 룸살롱에서 일해. 안에서 술과 안주를 나르는 일이라 추위 걱정은 없어.”
‘내가 백마 탄 왕자 행세는 안 한다.
하지만 장래성이 없다고 날 찬 상대한테 나 지금 잘나간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다 끝난 일이니 그대로 간직하게 해두자.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피곤하다.’
그러자 신지현의 시선을 받던 김광도의 눈앞에 장현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숨을 들이켠 김광도가 문득 결심을 했다.
‘그렇다. 백진철에게는 열나는 김에 말했지만 장현주에게 아이를 심어주자.
아직 내무부에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진짜로 정자를 넣어주는 거다.’
그때 신지현이 말했다.
“그렇겠네. 추위 걱정은 없겠네.”
“팁도 꽤 많아. 하루에 200달러 받은 적도 있어.”
“많네. 여긴 부자들이 많이 오나 봐.”
“그런 것 같아. 난 만족해.”
“그럼 됐지, 뭐.”
신지현이 머리까지 끄덕였는데 표정은 가라앉아 있다.
김광도는 문득 신지현에게 내가 지금 룸살롱 3개, 직업소개소 1개를 운영 중이며
시내에 방 150개짜리 호텔과 카지노, 아웃렛 2개를 건설 중인 사업가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조금 전에도 느꼈다가 포기했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신지현이 뭐라고 할까?
우선 표정관리에 애를 먹을 테지만 김광도에게는
어떤 표정도 다 연기 못하는 탤런트처럼 보일 것이다.
이윽고 김광도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웃었다. 그러면서 문득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일어났다.
“너, 네이션은행이라고 했지?”
“응.”
생각에서 깨어난 듯 신지현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혀졌다.
맑은 눈, 곧은 콧날과 가늘고 단정한 입술을 보자 김광도의 가슴이 갑자기 찌르르 울렸다.
1년 동안 몇 번 여관에 갔던가? 아마 10번쯤 될 것 같다. 그때 신지현이 말했다.
“오빠, 나, 오빠가 일한다는 가게 아가씨로 일할 수 없어?”
숨을 들이켠 김광도가 시선만 주었고 신지현이 말을 이었다.
“나, 네이션은행에 취직했다는 건 거짓말이야. 한국에서 사채업자 피해서 도망쳐 나온 거야.”
“…….”
“사채빚이 6000만 원이나 있어. 이혼하고 직장 잡기 힘들어서 2500만 원쯤 빌렸다가 그렇게 늘어났어.”
신지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 여기선 무슨 일이든 할 거야. 오빠처럼 술안주를 나를 수도 있어.
“…….”
“오빠처럼 열심히 살 거야.”
그때 신지현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떨어졌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호흡을 가눈 김광도가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오후 4시가 되어가고 있다.
어중간한 시간이었지만 어서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
개가 살이 붙은 뼈다귀를 입에 물었을 때 이 기분일 것이다.
잠자코 따라 일어선 신지현에게 김광도가 물었다.
“너, 지금도 김치찌개 좋아하니?”
옛날 기억이 다 떠오르고 있다.
{716) 34장 남과 북의 꿈-18
서동수에게 한랜드는 한민족의 새로운 땅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현실화시킨 것이었다.
그것을 신의주에서 단련한 후에 한랜드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땅 한랜드는 70년 동안 남과 북으로 갈라져 온갖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어온 한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그것이 기업가로 성공한 서동수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마지막 봉사다.
오후 8시, 서동수가 한시티 C지구에 위치한 중식당 베이징으로 들어섰다.
한랜드에는 중국인들의 투자가 한국인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조선족은 중국어에 익숙했기 때문에 중국계로 봐도 될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미리 연락을 받은 사장 정한성이 기다리고 있다가 서동수 일행을 맞았다.
서동수는 비서실장 유병선과 동행이다.
안쪽 방으로 안내된 서동수에게 정한성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장관 각하, 식사 시중을 들도록 아가씨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아니, 이 식당에서는 밥 먹으면서도 시중을 받나?”
서동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베이징 식당은 컨테이너 건물이 아니다.
건설회사의 작품으로 철근 3층 건물이다.
연건평 1000여 평에 식당과 나이트클럽, 룸살롱까지 갖춰졌다.
정한성이 다시 웃었다.
“식사와 함께 술을 드실 테니까요. 제가 서비스하겠습니다.”
정한성이 몸을 돌렸으므로 서동수가 유병선을 보았다.
“한국인이 중국인 상술까지 배웠으니 천하무적이구먼.”
“과연 그렇습니다.”
유병선도 웃음 띤 얼굴이다.
오늘 베이징 식당에 온 것은 사장 정한성을 만나기 위해서다.
다시 정한성이 들어섰는데 뒤를 아가씨 셋이 따르고 있다.
제 파트너까지 데려온 것이다.
서동수는 물론이고 점잔을 빼는 유병선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정한성은 중국에서도 성공한 기업가다.
40대 중반이지만 요식업 체인점으로 억만장자가 되었고
이번에 한랜드에 진출해서 벌써 10여 개의 식당, 유흥업소, 호텔을 세웠다.
셋이 각각 파트너 한 명씩을 옆에 끼고 앉았을 때 서동수가 긴 숨을 뱉고 나서 물었다.
“정 사장, 이제 만난 인사는 끝낸 거요?”
“예, 말씀하시지요.”
정한성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다롄 출신의 고졸 학력인 조선족 정한성은 20세 때
식당 종업원으로 시작했다가 25년 만에 거부가 되었다.
운도 따랐겠지만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동수가 지그시 정한성을 보았다.
“정 사장이 한랜드에 진출하신 목적을 들읍시다.”
“새 시장이기 때문이지요.”
정한성이 바로 대답했다. 어깨를 부풀린 정한성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기회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요.”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였다.
만족한 것이다.
정한성의 배후에는 삼합회가 있다.
삼합회는 마피아보다도 더 방대하고 막강한 조직이다.
안종관은 정한성이 삼합회의 간부라고 했다.
서동수의 시선이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로 옮겨졌다.
초승달 같은 눈썹, 물기를 먹고 반짝이는 눈, 오뚝 선 콧날 밑의 입술이 깨물고 싶도록 육감적이다.
“네 이름은?”
서동수가 중국어로 묻자 아가씨가 눈웃음을 치면서 대답했다.
“마오라고 합니다, 장관님.”
식사가 들어왔고 술까지 놓이자 서동수가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좋은 식사와 술과 여자, 그야말로 삼합(三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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