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폭우속에서 <종결>
장현은 무언가 섬?한 느낌을 받고는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촌의 밤은 쉽사리 어두워진다.
특히 지금은 폭풍우가 오려하기에 더욱 스산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그 스산한 가운데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한두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장현은 들고 내뺄 곳이 없나를 살핀다.
어차피 자신을 노리고 오는 자들이라면 보통은 넘는다고 보아야 했다.
아마 형사들이거나 아니면 마영달이 보낸 자들일 거다.
방은 바로 담과 연이어 있어서 만약에 창문쪽에 한명만 지키고 있다면
그쪽을 노릴 수 밖에 없었다.
폭우가 오려는지 투둑투둑 비듣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바람소리가 마치 세상을 쪼갤 듯이 횅횅거리며 문창호지를 뒤흔들었다.
장현은 주머니를 뒤진다.
재크나이프 하나.
그것을 꺼내 든다.
살려면 상대방에게 어떠한 여유도 주지 말아야 한다.
우찌끈하며 천둥치는 소리.
그 소리에 세상은 벌벌벌 떨며 잠든 척을 하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방금 다가올 광란의 몸부림에 대한 서곡일 뿐.
사내들의 행동이 시작된 것 같다.
문고리 끌르는 소리.
딸그락하고 문고리가 풀릴 때까지 장현은 그대로 도사리고 있다.
밖에는 몇명이 있을지 분간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장현이 취할 행동은 그대로 몇명을 갈기고 뒷쪽으로 돌아 담을 훌쩍 뛰어 넘는 것이다.
끼익하고 문여는 소리가 마치 천년이나 지난 듯이 길게만 느껴진다.
바람에 빗방울이 섞여서 마구 안으로 들이 닥치고,
그 순간 장현은 마치 웅크리고 있던 범이 튀듯이 밖으로 뛰쳐 나갔다.
들어오려던 사내가 그 바람에 흠칫하는데 장현의 옆발이 그대로 사내의 복부에 꽂혔다.
으아이.
장현은 사내가 나동그라지는 것을 살필 겨를도 없이 후다닥 왼쪽으로 돌았다.
검은 그림자가 그를 막아서고 장현은 그대로 몸을 날려서 사내의 면상을 격하게 찍어 버렸다.
헉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무너지는데 장현의 등뒤에 뭔가가 틀어 박힌다.
어헉.
순간적으로 번개가 꾸당하고 세상을 파란 광채로 악마와 같이 비추고,
그 번개 속에서 장현은 마영달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어둠은 그들의 모습을 잡아 먹어 캄캄 지옥으로 만들었다.
"마영달."
장현은 담장 앞에 서있는 두명의 거한의 모습을 보고는 그쪽으로 도망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비가 마구 온몸을 적신다.
폭우는 이 세상을 침몰시킬 듯이 들이치고 어디선가 바다의 울음소리가 길게 아악 아악 하고 들려온다.
"씨발, 문디 짜식들."
장현이 상말을 뱉아 냈다.
마영달이 왔으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왔을 터였다.
이제 이 작은 어촌에서 죽든지 살든지 사생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온다, 온다.
비가 온다.
마지막 가는 인생길을 하늘도 슬퍼해서 비를 내린다.
비는 온세상을 덮고 쓸고 갈 모든 것을 쓸어서는 함께 이승에서의 마지막 춤을 추어댄다.
왜냐고 묻지 않는다.
어차피 이런 세계에서는 이유가 필요없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니까.
장현은 빗발이 사정없이 들이치는 가운데 사내들을 노려본다.
총 다섯명.
쓰러진 놈이 두명.
그들도 언제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다.
문제는 마영달과 그 양옆에 두명.
장현은 마영달 하나도 제대로 감당해낼 지 모르는데,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보디가드 두명까지 합세하면 가망이 없는 것이다.
재크나이프를 손바닥 아래로 오게 거머 잡는다.
원래는 손바닥 위로 잡아야만 쑤시기 좋으나, 전세가 불리한 마당에는 찍기 좋게 잡아야만 한다.
그것으로 승부를 볼 수 없으니까, 한명만이라도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번쩍하고 다시 파란 광채가 일었을 때, 장현은 마영달의 반대 방향으로 짓쳐나갔다.
그 짧은 번개불에 사내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그대로 달린 것이다.
이럇!
한 사내의 기합소리와 함께 각구목이 날아드는 것을 그대로 그의 옷자락을 왼손으로 잡으면서
안으로 파고든다.
그 무모함과 완력에 사내가 허덕 놀라는데 장현의 거센 오른 손이 그의 배로 파고 들었고,
사내는 윗몸을 들썩이며 비명을 지른다.
으헉!
쳐다볼 필요도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내가 쇠를 짤라 만든 철봉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
초조한 것이 바로 흠이었다.
장현은 그것이 어떤 무기인가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각구목 정도라고 여기고는 그대로 왼팔로 턱하고 막는데 짜르르한 아픔이 엄습한다.
어억.
왼팔의 뼈가 금이 가는지 눈알이 빠져나오는 듯한 충격이 왔다.
하지만 멈추면 그것으로 끝이다.
장현이 아픔을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사내의 얼굴에 깊숙히 찍었다.
어어억!
재크나이프가 뺨에 찍힌 사내가 지옥의 악귀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버린다.
헉헉.
이제 세명.
마영달과 보디가드 두명.
하지만 자신의 왼팔은 이미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장현은 이를 문다.
번개불이 다시 번쩍하고 천둥이 세상을 무너뜨리려는 듯이 꽈르릉 댔다.
장현은 그 번개불 속에서 두명의 미소를 본다.
혜진,
그리고 영민.
이대로 갈 수는 없다.
혜진에게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그것이 비록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할지라도 그대로 뱉어내고 싶었던 말이다.
마영달이 훅하고 앞으로 달려 나온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파도였다.
한마리의 들쥐를 덮치는 커다란 수리부엉이의 몸짓이다.
장현은 덮쳐오는 마영달의 몸으로 오른발을 휘익 커다랗게 그렸다.
턱하고 마영달의 몸이 걸렸지만 그것은 오히려 장현에게 악수였다.
마영달이 허덕 그 발을 잡고는 팔꿈치로 와닥 장현의 정강이를 찍어내린다.
하지만 장현도 그렇게 쉽게는 당하지 않았다.
마영달이 장현의 정강이를 내려치는 순간에 이미 장현의 몸이 훙 뜨며
그의 왼발이 마영달의 면상에 틀어박힌다.
으학! 어헉!
그 한방에 두 사내는 땅바닥에 뒹군다.
장현이 오른발에 심한 부상을 입은 것 같다.
하긴 그 거구가 정강이를 온몸의 체중을 실어서 찍었으니
아마 부러지지는 않았어도 금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마영달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장현의 무지막지한 발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그의 면상을
그렇게 찰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두 사내가 와락 덤벼들고 장현은 몸을 미친듯이 땅바닥으로 굴린다.
사내들에게 잡히면 끝장이었다.
마영달이 아직 수습을 못하고 있는 중에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 나가야지만 한다.
그러나 한 사내가 몸을 붕 날리면서 장현의 진행방향을 막았고,
장현은 다짜고짜로 오른 손으로 사내의 다리를 거머 잡고는 화닥 잡아 당긴다.
어억.
비때문에 땅이 진창이 된 것이 다행이다.
사내의 힘으로는 끌려오지 않을 듯했는데, 미끄러움때문에 사내의 몸이 후둑 끌려 들어온다.
그대로 뜨면서 이마로 그자의 얼굴을 박아 버린다.
으닥야!
비명소리.
장현은 한발로 간신히 진창에 버티고 있다.
힘이 없다.
번개불이 다시 번쩍이면서 사내들이 진창에서 흐르르 일어서는 것이 보인다.
이제는 끝이다.
그들은 마치 땅끝의 심연에서 불쑥 불쑥 솟아나는 망령들 처럼, 끼끼끼 웃으면서 무기를 들고 있다.
세상은 모두가 폭우로 숨어버렸는데, 오로지 이들만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다.
장현은 절뚝거리면서 몇발자국을 걸어본다.
하지만 발 하나가지고 도망을 칠 수도 없다.
마영달이 충격을 수습했는지 소리친다.
"없애버려."
사내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사악한 마왕의 춤사위이다.
그 들썩이는 어깨짓에 장현의 혼이 부르짖고 있다.
어허, 어허.
분다 분다.
미친 바람이 분다.
영민이 언젠가 소리친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쓰레기 속에서 가물가물 끊어져 갈 때, 그때 들었던 영민의 몸부림이다.
"행님아. 잘 있거레이."
이렇게 소리친다.
이제 생각나는 것은 혜진이 아니라 영민이었다.
장현은 안다.
자신이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영민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내들의 거친 흉기가 날아오고 장현은 춤을 춘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춤을.
번개가 인다.
폭우가 친다.
그리고 장현은 자신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안다.
장현의 머리에 뭔가 거대한 것이 떨어졌다.
그것은 번개이다.
그것이 장현을 앗아가는 악독한 운명의 거대한 힘인 것이다.
장현은 허덕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순간 등뒤에서 한 사내의 억센 흉기가 장현의 등을 꺽어 버렸다.
"행님아!"
그것이 장현의 마지막 남긴 비명이었다.
대관령 근처의 작은 통나무집.
어떻게 운전기사가 그곳을 알았으며 어떻게 그곳으로 데리고 왔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영민은 오로지 윤경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윤경은 영민과 단둘이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기쁜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가 마치 세상을 잠기어 버릴 듯이 쏟아붓고 있다.
통나무집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하나의 방주와도 같았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런 불편이 없게끔.
둘은 비소리가 마구 들리고 장작이 불타오르는 벽난로의 앞에 마주 앉는다.
"고영민, 안 추워?"
열이 오르는 모양이다.
하긴 빗속을 그렇게 달려왔으니 추울 만도 하다.
영민이 담요를 가져다가 조심스럽게 윤경의 몸을 덮어준다.
6월의 밤.
비는 절대로 그치지 않을 듯이 쏟아지고 있다.
다싸로운 벽난로의 기운이 어느 정도 추위를 가시게 했는지 윤경의 얼굴이 약간은 발갛게 달아오른다.
옆에 앉아있는 영민에게 온몸을 기대며 윤경은 말한다.
"아, 참 좋은 밤이야."
영민은 윤경의 어깨를 지그시 감싸 안았다.
"고영민, 아니, 나 이렇게 부르지 않을래. 너무 딱딱해 그지."
영민이 고개를 돌려 윤경을 바라본다.
"나 영민이 당신이라고 불러도 돼지?"
영민이 고개를 끄덕여 준다.
"이렇게 꼭 부르고 싶었어. 당신이라고."
마지막이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더 이상 남아 있는 시간이 없으면 솔직해 지는 것일까.
영민은 눈을 감는다.
윤경이 풋하고 웃는다.
"여보, 기억나. 내가 톰소여의 모험을 읽고 썼던 글을 말이야."
영민도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문구는 생각나지 않았다.
"영민아, 너를 사랑해'라고 썼잖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그 뜻은 그랬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 그렇게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마치 톰소여의 여자친구가 썼던 것 처럼.
밤이 깊어가고 비는 도저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우당거리고 있다.
비가 오는 데도 어디선가 밤새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새끼를 잃었는지 빗속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장작이 이글이글 불을 뿜어대고 윤경과 영민은 마치 굳어진 듯이 앉아 있었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윤경이 부스럭댔다.
"왜?"
영민이 묻자 윤경이 얼굴에 홍조를 띄며 말한다.
"이제 방으로 데리고 가 줘."
영민이 담요를 싼 채로 윤경을 안아 드는데 그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방에는 아주 깨끗한 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하얀 시트가 마치 영원한 결백처럼 씌여있다.
영민은 윤경을 아주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힌다.
몸을 일어키려는데 윤경이 화닥 영민을 끌어 안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가지마. 내 곁에 있어."
마치 영민이 나가면 영원히 마지막이라는 것처럼 윤경은 달라붙고 있다.
그러자 할 수 없이 영민은 윤경의 옆에 눕는다.
그렇게 둘은 죽은 듯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그대로 있지마. 저기 벽에 걸려있는 내 잠옷 좀 가져다 줘."
영민이 벽에 걸려있는 잠옷을 드는데 어디선가 향기가 나는 듯하다.
잠옷을 가지고 오자 윤경은 그옷을 건네 받고는 숨을 색색하고 쉬어댄다.
그러다가 힘이 드는지 영민을 부른다.
그 소리가 너무나 작아서 영민이 자신의 귀를 윤경의 갖다대니 윤경이 부끄러운 듯이 속삭인다.
"내 옷 좀 벗겨줘. 응?"
영민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지만 거절하지 않고 윤경의 옷을 하나 하나 성스러운 동작으로 벗겨 내렸다.
마침내 윤경은 하얀 반나체의 모습으로 눈을 꼭감고 있었고,
영민은 그 조각같이 하얀 윤경의 몸에 잠옷을 입히려 했다.
윤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눈을 꼭 감은 채로 말한다.
"그러지말고 나를 꼭 좀 안아줘."
흐흑.
영민의 몸이 긴장과 흥분을 참지 못하고 흐르륵 떨어대고 있다.
"어서."
영민이 윤경의 알몸을 그대로 안아 버렸다.
비가 후두둑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창문이 그대로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흔들려 댄다.
"나 영원히 당신의 안에서 살거야. 나 영원히 죽지 않아."
영민의 온몸에서 활화산 처럼 이는 감정의 불꽃때문에 속절없이 윤경의 몸에 무너져 버리고 만다.
바람이 엄청 불어왔고 비바람이 나무를 뽑아놓는지 찌끈찌끈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윤경은 자신의 몸에 무너진 영민을 있는 힘을 다해서 껴안았다.
비가 방안에 까지 침범했는지 빗소리가 심하게 들리자 영민은 흐덕 눈을 뜬다.
응?
옆에 있어야할 윤경이 없다.
걸을 힘도 없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영민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시 빗소리가 들린다.
아, 그것은 빗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윤경이 샤워하는 소리다.
걷기도 힘들어 하는 그녀가 애를 쓰면서 샤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잔잔히 들리는 노래소리.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가끔씩 힘이 드는지 노래는 중간에서 동강나다가 다시 이어진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어디선가 얼룩백이 황소가 음메하고 우는 환상이 보인다.
윤경은 기어이 혼자 힘으로 샤워를 하고 나온다.
그리고 잠옷을 힘들여 입고 난 후에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녀는 화장을 한다.
거의 혼신의 힘을 들여서.
영민은 그런 그녀의 안간 힘을 안타깝게 바라다 보았다.
화장을 가까스로 끝낸 윤경은 다시 영민이 누워있는 침대로 돌아왔고
영민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윤경을 황급히 부축했다.
윤경은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나, 이뻐?"
눈을 감고 이렇게 말하는 윤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그럼. 당신보다 이쁜 것은 이 세상에 없어."
영민의 말에 서글픈 색이 가득 담겨 있다.
영민의 말을 듣고 윤경은 안심했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둘은 다시 나란히 눕는다.
"나 두고 떠나지 않을 거지?"
영민이 말없이 그녀를 껴안는다.
윤경이 깔깔 댔다.
"난 말이야.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어.
오로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윤경이 힘이 드는지 기침을 몇 번 한다.
그녀의 얼굴이 화장에 가려있지만 창백하게 질려있다.
"이제,... 좀,... 자야겠.. 어."
힘이 드는 모양이다.
"그래, 좀 자도록 해."
영민이 그녀의 몸을 꼭 껴안은 채로 이렇게 말했다.
아침이 그 환한 모습으로 폭우를 씻은 듯이 벗겼는데
영민은 윤경의 몸을 그대로 껴안고 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밤이 윤경의 마지막 밤이었다는 사실을.
그 밤을 위해 윤경은 한평생을 산 것이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껴안고 자신도 이렇게 가고 싶다.
영원히 가지 못할 나라로 가는 것이다.
영민은 꿈을 꾼다.
통나무 집에서 멀리 계곡을 바라보며 자신은 윤경을 위해 시를 쓰고 있고,
윤경은 통나무 집에서 영민을 위해 밥을 짓고 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지만 영민은 하염없이 꿈을 꾼다.
그녀는 그렇게 갔지만 영민의 가슴에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다.
영원한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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