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그리운 세월

17. 까치밥

오늘의 쉼터 2015. 8. 30. 10:27

17. 까치밥

 

하늘은 깊은 슬픔을 간직한 채 그저 낮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고,

그 구름을 올려다 보는 영민의 눈가에 회색 그림자가 어린다.

구름이 자꾸 낮아진다.

슬픈 마음 가릴 수 없어 눈물만 흘리는 사람들을 위해 구름은 슬픔을 가려 주려고

오늘도 한 켠 아래로 아래로 자신을 낮게 드리운다.

비가 오려나?

영민은 식당안에서 창가에 앉아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하늘 저쪽에서 검은 구름이 악마의 악다구니처럼 밀려오지만,

아직도 이곳은 포근한 느낌을 주는 뭉게구름이 머물고 있었다.

영민은 먼 하늘의 검은 구름을 불안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그 구름은 이쪽의 뭉게구름을 마치 폭력으로 짓밟으려는 듯이 다가오고 있고,

머지 않아 세력을 잃은 뭉게구름은 검은 구름에 쫓겨나 버리고,

세상은 온통 그 검은 기운에 못이겨 악악대며 빗줄기를 받아야지만 될 것이다.

구름이 떠나듯이 사람도 떠나간다.

하나의 자리가 비면 그 자리를 메꾸는 사람이 들어서는 것 처럼, 자리가 차면 반드시 비워져야만 한다.

그렇게 인생은 메꾸고 메워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영민이 형!"

누군가가 식당문을 박차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응?

영민이 놀라서 시선을 거두어 뛰어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영필이었다.

같은 공민학교에서도 말이 없는 작은 아이다.

그런데 그 애가 여긴 왠일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중인데 그 애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형, 학교가.... 선생님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 그리고 선생님에게.

영민은 다짜고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서 후다닥 밖으로 뛴다.

안에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 나온 장현은 그저 달려가는 영민의 뒷모습만을 보았을 뿐이다.

아아, 학교가 부서지고 있다.

그 못생긴 무허가 건물이 청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앙상한 갈비뼈만을 남긴 채로 무참하게 부서지며 비명을 질러댄다.

그 비명은 너무나 처참해서 영민은 그대로 굳어진 채 서있을 뿐이다.

옆에서는 손창석 선생이 그저 멍하니 부서져 나가는 학교건물을 넋나간 듯이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학생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와 한다.

그래. 그것은 마지막 소망이다.

간절히 공부하기를 원하는 이 불쌍한 아이들의 마지막 소망처였다.

그런데 작업복들에게는 그 간절한 마음이 하잘 데 없는 것이다.

그들은 법에 의해 자신의 일을 진행할 뿐이다.

그런데 그 법은 무엇이냐.

누구를 위해 법이 존재하는가.

권력자를 위해?

있는 자들을 위해?

법앞에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못했다.

법앞에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영민이 견디지 못해서 한 걸음 나아간다.

그들이 마지막 소망을 악다구니처럼 부수고 있는 그 앞으로.

작업복 하나가 그의 앞을 막는다.

"야, 임마. 비켜."

허수룩한 차림의 영민이 하찮게 보였는 모양이다.

"당신들 뭐야. 왜 학교를 부수는 거야."

영민의 말이 낮게 깔리며 극도의 불만을 담고 있다.

작업복이 그 모습을 보고는 픽 웃어 버리고 다시 곡갱이를 잡고는 학교 벽을 허문다.

"멈춰. 멈추라고."

왜 이렇게 소리가 저음으로 깔리는 걸까.

자신은 소리치며 그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은데 정작으로 목소리는 아주 잔잔한 저음으로 깔리며,

오히려 더욱 위협적으로 들린다.

"이 새끼가 왜이래. 얌마. 무허가 건물은 시에서 철거하는 거 몰라?"

작업복이 으르렁 대는데 영민의 손이 작업복이 손으로 잡고 있는 곡갱이를 움켜 잡는다.

"어, 이 새끼가? 어이, 여기 좀 봐!"

작업복이 소리를 치자 다른 작업복들이 손을 멈추고는 영민을 노려본다.

"뭐야? 어떤 놈이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있어."

다른 작업복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일손을 놓고는 영민에게 다가왔고,

영민은 그 '공무집행'이라는 말에 심한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항상 공무집행을 해왔고, 그 공무집행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저질러지는 악행이었다.

적어도 영민이나 다른 밑바닥 인생들에게는 그런 의미다.

그들은 공무집행의 시행자들이다.

살기 위해 아둥바둥 발광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들은 염라대왕처럼 심판을 내린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단죄하는 의식의 심판을 말이다.

장현이 생각난다.

그 공무집행으로 인육이 되어 버렸던 그 처참한 몰골.

그것이 그들의 심판이고,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유희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영민아, 안돼!"

손선생의 목소리가 영민의 손을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바로 법의 보호아래 있는 폭력이다.

온 세상을 그들의 기운에 물들게 만드는 사악한 기운들이다.

그리고 영민은 그들에게 밀려 나야만 할 그런 밑바닥 인생이다.

"심심한데 잘되었군."

누군가가 빈정대며 낄낄댄다.

그래, 그들은 이럴 때 조차도 유희로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이 새끼!"

옆에서 삽자루가 인정사정없이 영민의 얼굴을 노리며 날아왔고, 영민은 순간적으로 몸을 휙하며 숙인다.

살기를 품은 삽자루가 횅 소리를 내면서 영민의 머리위로 쏜살같이 지나친다.

맞으면 그대로 머리가 박살날 듯한 살벌한 공격.

삽자루가 지나치는 찰라 영민의 몸이 훅하고 허공을 뛰쳐 오른다.

공격한 사내가 얼뚱한 표정을 짓는데 영민의 앞발이 그자의 턱주가리에 정확하게 꽂혀 버렸다.

퍽! 어이쿠야!

비명과 함께 사내는 피를 뿌리며 뒤로 발라당 나자빠져 버린다.

이들은 인간 사냥꾼이다.

영민을 인간으로 보았다면 그렇게 삽자루를 흉악하게 날리지는 않았으리라.

이제 영민은 인간 사냥꾼이 노리는 보기 좋은 사냥감이었다.

장현이 당했던 것 처럼, 아니 더 심하게 당할 수도 있었다.

사냥꾼들은 눈을 분주히 굴리면서 사냥물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한 명이 당했기에 신중한 움직임이었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흉기는 한번이라도 맞으면 그대로 영민의 숨통을 끊어 버릴 것이다.

"죽어! 이 새끼!"

와락 한 사내가 영민의 뒤에서 그의 뒤통수를 노리고 곡갱이를 날렸고,

곡갱이는 영민의 뒤통수를 두쪽으로 쪼갤 듯이 험악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졌다.

영민이 그것을 껑충 옆으로 뛰어 피하니

워낙 있는 힘껏 내려쳤기에 사내의 곡갱이는 떵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깊숙히 박혀 버렸다.

그 순간 영민의 뒷발이 정확하게 사내의 얼굴로 와지끈 날아갔다.

퍽! 우와악!

비명소리가 아주 무심하게 들린다.

사내들이 내뱉았던 '죽어라'라는 말.

그것은 바로 있는 자들이 못가진 자들에게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었고, 그것은 말뿐이 아니라 의미였다.

하층의 부류에게 주어진 운명같은 의미.

그들은 파리를 죽이듯이 잔혹하게 하층의 인간들을 대했다.

그것이 그들에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일인 것처럼.

영민의 눈빛은 차분했다.

언제라도 갈 수있기 때문이다.

그저 가진 자의 세상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다가

언제든지 훅하고 아무런 미련없이 갈 수 있는 것이 여태까지 배운 인생이었다.

"야이!"

"이얍!"

양쪽에 있던 사내들이 한꺼번에 삽과 쇠모루를 날렸다.

쇠모루를 든 자는 그 길이와 무게를 고려한 듯 영민의 몸통을 노렸고,

삽을 잡은 자는 삽날로 영민의 배쪽을 찍으려고 덤벼들고 있다.

두 공격을 한꺼번에 피해야만 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뒤로 껑충 뛰는 수 밖에 없다.

뒤로 껑충 뛰는데 무언가가 영민의 발에 걸린다.

아차!

아까 쓰러진 자 중에 한명이 이를 갈며 영민의 발을 잡은 것이다.

어엇! 눈앞이 캄캄해 졌다.

순간적으로 아랫도리가 허전해 지며 이젠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민은 허겁지겁 옆으로 몸을 굴렸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시도였다.

특히 여러명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옆에서 노리고 있던 자의 발이 사정없이 영민의 배에 내리 꽂혔다.

헉!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한다.

그러나 영민도 갖은 일을 다 겪은 터였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판단했다.

자신의 배를 밟았던 자의 발을 죽자사자 끌어 안는다.

이렇게 되면 둘이 엉키게 되고, 다른 자들의 흉기 공격은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영민의 생각대로 사내는 영민과 땅바닥에서 뒤엉켰고,

그 바람에 작업복들은 흉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사태는 정말로 불리했다.

영민은 자신이 사내를 타고 올라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사방에서 사내들의 집중공격을 받을 것이다.

영민은 차라리 사내의 밑에 깔린 채 한명의 공격만 받기로 작정했다.

사내는 밑에 깔린 영민을 인정사정없이 주먹으로 갈겨대고,

영민은 어찌할 수 없어서 그대로 주먹을 맞고만 있다.

주위에 둘러싼 자들의 낄낄거림이 치욕스럽게 느껴지면서

영민은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문다.

얼굴은 만신창이가 나고 있고, 보다 못한 손선생이 달려든다.

"멈춰! 멈추라고! 당신 사람 죽일 셈이야?"

손선생이 마구 사내를 잡고 흔들자 사내도 흠칫 정신을 차렸는 모양이다.

"당신들 누구야. 다 고소할 거야. 누군 빽 없는 줄 알아."

작업복들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다.

하긴 무허가 학교의 선생이라도 선생정도면 높은 사람 하나쯤 알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사내들이 구스렁댄다.

"이쯤이면 다 부순 것 같으니 철수하자고."

이 소리가 나자 마지막으로 남으면 곤란할까봐 모두 부리나케 꽁무니를 뺐다.

영민은 정신이 가물가물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보려고 한다.

손선생이 영민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고 그제서야 영민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흐느껴 울고 산산히 부서진 학교 건물은 처량하게도 쓰러져 있었다.

비가 오려는지 습기 머금은 바람이 몰려온다.

오직 배우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의 오열은 쉽게 그칠 줄 모르고 길게 이어졌다.

장현이 뒤늦게 뛰어왔다.

아마 한 학생이 그에게 알렸던 것 같다.

장현은 죽자사자 뛰어와서는 영민을 와락 끌어안는다.

그 바람에 영민의 상처가 더욱 쓰라렸다.

"행님아! 행님아!"

영민의 눈에서 다시 서러운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장현이 악을 써댄다.

"이 존마새끼들! 다 쥑이 뿌린다. 다 쥑이 뿌린다꼬!"

하지만 그들은 이미 모두 사라져 버렸고, 오직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만이 폐허의 위에 덮여있다.

장현은 하늘을 우러러 절규한다.

"다 쥑인다. 다 쥑이뿌린다카이!"

그때 영민의 손이 장현의 손을 꼭 쥔다.

"장현아, 괜찮아. 나 괜찮다."

장현이 눈물을 흘려버렸다.

"행님아, 내다. 나 여기 있다 안카나."

그 소리가 너무나 어색하게 들려서 더욱 슬프게만 느껴졌다.

영민은 자꾸 말이 없어져만 갔고, 장현은 무엇을 하는지 매일 어디로 쏘다니다가 돌아왔다.

영민과 장현이 식당일에 그리 신경도 쓰지 않자, 마침내 식당 주인의 인내에 한계가 왔는지 나가라고 했다.

영민도 장현도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주섬주섬 작은 옷가방에 허접떼기 옷을 챙긴다.

각설이 출신이기에 어디에 어떻게 머물든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그저 옷가방을 들고 나와 버린다.

뭔가가 허전했지만 시원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이곳에 매어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비가 내린다.

무슨 슬픔이 그리도 많은지 하늘이 견디지 못하고 운다.

한없이 운다.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만들려는지 하늘은 자신도 견디지 못할 슬픔에 하냥 울고만 있다.

그 슬픈 빗줄기가 영민과 장현의 온몸을 잔인하게 때려댄다.

그리고 그들의 빈 마음을 빼곡히 슬픔으로 채워 버린다.

마침내 장현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발을 빨리 했고, 영민은 허적허적 그의 뒤를 따랐다.

빨리 갈 필요도 서둘 필요도 없는데 발걸음을 빨리하는 장현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만 한다.

중림동에서 염천교로 이어지는 서울역 뒷편.

아주 허름한 건물들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남은 생을 간신히 이어보려는 듯한 모습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 모습이 마치 무리에서 탈락하면 영원히 끝이라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장현은 비에 젖어 후줄근한 모습으로 그러나 당당한 걸음걸이로 한 건물로 들어섰고,

영민은 그저 장현의 뒤를 따르고만 있다.

건물에는 오래된 쾌쾌한 냄새와 쇠녹 냄새가 난다.

장현은 바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턱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어떤 범죄의 냄새다.

다 낡은 문은 니스칠이 벗겨져 얼룩덜룩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는데 다른 베니아판으로 얼기설기 막아놓았다.

문옆에는 상호 비슷한 것이 걸려 있는데, 너무나 낡아서 보기에도 심히 어지러웠다.

문을 열자 역한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고, 사무실 안은 거의 텅비어 있었는데,

다 낡은 책상이 하나, 그리고 구석에는 방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고,

거기서 세사내가 화투를 치고 있다가 영민과 장현이 들어오자 경계의 빛을 띤다.

사내들 옆에는 다 찌그러진 양재기에 담배꽁초가 물인지 술인지 모를 검은 액체에 담겨진 채로 더럽게 놓여있고,

그 옆에는 소주 한병과 잔 두개가 쓰러져 있다.

다른 구석으로는 흉기로 쓸 수 있는 각구목과 잡동사니가 있었는데, 그쪽에 다른 쪽문이 하나 달려있었다.

사내들이 장현이 일을 맡기러 온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한눈에 파악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같은 부류의 하층민을 너무도 쉽게 알아챈다.

사내들이 첫눈에 기를 제압하려는 듯 장현을 노려보는데 장현이 먼저 너스레를 떤다.

살기 위해 배웠던 본능이다.

"행님들, 뺑코 행님 어디 있능교?"

"짜샤, 뺑코 형님은 왜 찾아?"

한 사내의 대꾸가 거칠었다.

얼굴이 얽은 폼이 마마꽤나 앓은 것 같았다.

"아, 볼 일이 있어서 안 그랍니꺼."

장현이 다 망가진 책상위에 그대로 털석하고 주저 앉자 그 큰 몸집에 깔린 책상이 죽는다고 삐그덕댔다.

사내들은 장현을 노려보다가 이렇다할 대꾸가 없자 포기했는지 안에다 대고 소리를 지른다.

"뺑코 형님, 나와 보슈. 손님 왔수다."

작은 쪽문 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그리고는 한 사내가 나타났다.

얼굴이 하얗고 코가 보통 사람보다는 뾰죽한 사내가 하얀 싱글 차림으로 나타났다.

"누가 날 찾는가?"

사내의 말은 점잖은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약간 가볍게 들린다.

영민은 그가 신고 있는 하얀 구두가 어떻게 그토록 광이 날 수 있나가 신기해서

가만히 그의 구두코만을 바라보고 있다.

"뺑코 행님인교. ?달이 행님이 한번 찾아보라케서 왔슴니더."

영달이라는 말을 듣자 뺑코의 눈이 번쩍 뜨이며 자세가 누그러진다.

"영달형님이?"

"야, 그저 밥이나 먹여 주이소마."

뺑코가 머리를 굴린다.

영달이 보냈다면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야, 곰보. 이 분들 잘모셔."

갑자기 뺑코가 존대를 하자 사내들이 당황했다.

하긴 마영달하면 이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주먹이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사람이면 보통 사람은 아니란 것이 이 세계에서도 소문이 나있는 상태니까 말이다.

상견례가 그 정도라는 것이 이상했다.

영민은 한번 정도 맞부딪혀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의외로 뺑코는 장현과 영민을 후대했고 잘 수 있는 방하나까지 얻어 주었다.

비록 중림동 비탈길에 막지어진 무허가 판자집이지만

그래도 기거할 수있는 방하나가 생긴 것이 퍽이나 다행이었다.

장현은 무엇을 하는지 부지런히 밖으로 나돌았고,

영민은 방에 있으면서 무료함에 책을 읽는다.

 

너는 누구냐,

까악 까악 빈 허공에 달려있는 빠알간 부끄러움에

타다타버린 빠알간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

빠알간 까치마저도 가슴이 타는지 멀리로 사라져 버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파란 하늘에

딱 하나 점찍힌 빠알간 까치밥

 

세상에 까치밥만큼 서러운 것은 없을 거다.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고 까치마저도 떠나간, 빈 가을의 공간에서 올두마니 달려있는 그 헛헛한 고적감.

그래서 까치밥은 제 설움에 못이겨 홍시가 되어 터져 떨어져 버리고 만다.

영민은 아직도 자신의 감정 깊숙히에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의 핏줄이 흑흑 흐드득 상념처럼 불쑥 불쑥 고개를 드는 것을 느낀다.

그 아스라한 감정은 영민뿐 아니라 인간이면 모두 갖고 있는 인간 본연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헉!

영민은 그저 허리를 꺽고는 조그만 상위에 머리를 묻어 버렸다.

무언가가 그의 머리 속으로 강하게 밀려들고 있지만,

영민은 스스로 터져 버리는 까치밥처럼 그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안으로 안으로만 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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