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 32장 시베리아 [3]
(663) 32장 시베리아-5
크렘린궁의 대통령 집무실에 앉은 푸틴이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
“한국인들은 그곳에 또 하나의 한국을 세우겠다고 하겠지만 결국 러시아 안이야.
러시아에는 수많은 민족이 있지.”
“그렇습니다. 각하.”
하바롭스크 지방장관 마르첸코가 굳어진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시베리아에도 많은 민족이 있지요.”
“가만, 하바롭스크주의 면적이 얼마지?”
푸틴이 묻자 마르첸코가 허리를 폈다.
오후 3시,
이 시간에 마르첸코가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드문 일이다.
“예, 78만8000㎢입니다.”
“인구는?”
“예, 60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시베리아 인구가 너무 적어.”
푸틴이 입맛을 다셨다.
시베리아의 면적은 1300만㎢인데 인구는 1500만 명 정도다.
“사하공화국이 어떨까?”
불쑥 푸틴이 묻자 마르첸코가 숨을 들이켰다가 외면하고 뱉었다.
“각하, 사하공화국은 동성에서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하가 개발되어야만 해.”
눈을 가늘게 뜬 푸틴이 벽에 걸린 대형 러시아 지도를 보았다.
사하공화국은 러시아 연방 중 하나로 1992년에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러시아 극동연방관구에 속하는 사하공화국, 또는 야쿠티아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행정구역을 갖고 있는 지방이다.
면적이 310만㎢로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14배다.
그러나 인구는 95만 명, 하바롭스크 지방은 사하공화국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때 마르첸코가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푸틴의 호출을 받았을 때 마르첸코는 이것이 동성의 ‘투자 임차’ 때문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카타리나가 동성 측에서 푸틴의 측근에게 접촉하고 있다는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은 교활한 곰이다.
약점이 보이면 가차 없다.
지금 사하공화국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그렇다.
마르첸코가 입을 열었다.
“각하, 하바롭스크에 투자가 절실합니다.
하바롭스크가 발전하면 그 시너지가 자연스럽게 사하공화국 쪽으로 옮아갈 것입니다.”
동성의 ‘투자 임차’가 사하공화국 쪽으로 옮아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때 푸틴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동성에서 사하공화국에도 사람을 보냈는데 슈티로프가 환장을 하고 있어.
땅을 거저 주겠다고 했다는 거야.”
“야쿠티아는 사람 살 곳이 못 됩니다.”
마르첸코가 자르듯 말했다.
“거기로 갔다가 다 얼어 죽으면 시베리아에 아무도 투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악담을 하는군.”
푸틴이 입맛을 다셨지만 사실이다.
사하의 1월 평균기온이 해안지방은 영하 28도, 내륙은 영하 50도가 된다.
7월에 겨우 2도, 19도가 될 뿐이다.
“이봐, 마르첸코. 보드카 하겠나?”
푸틴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묻자 마르첸코의 눈이 가늘어졌다.
잔뜩 경계하는 표정이다.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오늘 술 안 마셨지?”
“예, 각하.”
푸틴이 보드카 병을 들더니 잔 두 개에 술을 따랐다.
그러고는 마르첸코 앞에 잔 하나를 내려놓고 지그시 시선을 주었다.
“마르첸코, 동성의 서 라는 놈은 위험한 놈이야.
아마 5년쯤 후에는 하바롭스크 장관이나 사하공화국 대통령을 제 하인으로 부릴 놈이야.”
푸틴이 한 모금에 보드카를 삼켰다.
“나흘 후에 그놈을 만나기로 했네.”
(664) 32장 시베리아-6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외교부장 양만철이 김동일에게 말했다.
양만철은 소련대사를 역임한 원로다. 푸틴과도 여러 번 만난 인물이어서 러시아통이다.
김동일은 머리만 끄덕였고 양만철이 말을 이었다.
“시베리아 지역은 벌목과 광물, 가스를 채굴하는 것 외에는 서구 투자자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동남아나 중국, 인도 등이 투자 조건이 더 좋았지요.”
서동수는 잠자코 김동일의 옆에 앉아 듣는다.
오전 11시 반, 김동일을 방문했더니 러시아통 양만철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함께 시베리아 투자 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양만철이 충혈된 눈으로 김동일을 보았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하바롭스크 지역의 외국 투자도 몇억 불에 그쳤고 대부분이 단기 이익을 위한
목재나 광물 채굴이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 한반도에서 시베리아는 유라시아가 펼쳐지는 대륙의 전진기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시베리아를 개발할 인력, 즉 동족이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시베리아를 고향으로 삼을 수 있는 고려인, 조선족, 북한인이 바로 그들이다.
시베리아를 통로로 만들어야 한다.
그때 김동일이 머리를 돌려 서동수를 보았다.
“이미 우리 공화국에서는 시베리아 삼림 벌채로 수만 명이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시베리아 개발은 우리가 적임입니다.”
이제 북한 지도자의 허락까지 받아놓은 것이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푸틴과 사흘 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제 위원장님의 허락을 받았으니 북남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얻게 되었다고
말씀 드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부탁하지 않으셔도 그쪽에서 끌어당길 것입니다.”
김동일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러시아도 손해일 테니까요.”
남북한의 호흡이 맞으면 한민족의 미래는 이렇게 열리는 것이다.
감동한 서동수는 그날 점심때부터 김동일과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취했다.
김동일이 즐겨 마시는 포도주를 계속 마셨더니 취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숙소인 초대소 방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벽시계가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도 안 되었다.
방안에 커튼이 쳐진데다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갈증이 났으므로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는 자신이 잠옷 차림인 것을 보았다.
냉장고로 다가간 서동수가 생수병을 꺼내 병째로 물을 들이켜고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었다.
그러자 어둠에 덮인 잔디밭이 드러났다.
저녁이다.
베란다의 유리문을 열자 이층 방안으로 시원한 밤공기가 몰려 들어왔다.
베란다로 나온 서동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잔디밭은 잘 다듬어졌고 끝쪽에 등이 나란히 켜져 있어서 초대소의 전경이 드러났다.
대동강변의 초대소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으므로 서동수는 몸을 돌렸다.
여자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 서동수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내원 하성숙입니다.”
긴 머리는 뒤로 묶어 올렸고 흰 셔츠에 검은색 스커트를 입었는데 목소리가 밝고 높다.
다가온 여자가 맑은 눈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이목구비가 섬세한 미인이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시라고 모시러 왔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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