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그녀의 시간표

그녀의 시간표 44 <종결>

오늘의 쉼터 2015. 6. 13. 16:35

그녀의 시간표 44

 

 

 

사흘이 지났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는 모든 것을 인정했다.

 

네가 죽인 거 맞지?

 

그러니까 여기 있겠죠.

 

네가 죽인 거 확실하지?

 

아, 답답하네. 그러니까 당신들이 날 체포했겠지!

 

이런 식으로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조서작성이 끝났다.

 

이제 검찰로 송치되는 일만 남았는데, 오후 늦게 손님이 찾아왔다.

 

쌍둥이였다.

 

“강압적인 수사나 고문, 그런 거 당한 적 있어?”

 

“너희들, 꼭 변호사 같다? 걱정 마. 너희보단 다들 착했으니까.”

 

“수많은 지문과 체모 정액을 남긴 인간이 계획살인이라니,

 

수사방식이 완전 80년대야.”

 

다른 놈이 뒷말을 이었다.

 

“홍지연을 어떻게 꼬드긴 거야?

 

홍지연은 너 때문에 모든 걸 포기했어. 대체 그 비결이 뭐야?”

 

“비결이랄 것도 없어. 예부터 남자가 여자를 얻으려면 도끼질을 해야 한다잖아.

 

그냥… 계속 찍는 거야. 어차피 사랑은 모 아니면 도거든. 참, 너희가 나 협박한 거 맞지?”

 

“직업윤리상 그건 죽을 때까지 비밀이야.”

 

“팀장하고 다른 팀원들은 왜 나한테 그런 거야? 질투인가?”

 

“고객지원팀은 일종의 감옥이자 훈련소 역할을 하는 특수부대야.

 

그들은 홍지연에게 노골적인 제스처를 취했던 사람들로,

 

사장이 사랑의 전과자들을 모아 창설했어.

 

물론 그들의 교육은 우리가 맡았지만…

 

홍지연에게 접근하거나 접근 가능성이 높은 인간들을 콕 찍어서 고객지원팀으로 보내.

 

거기서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이 이뤄지는데,

 

한두 번의 실패 경험이 있었지만 거의 성공적이었어.”

 

“고객지원팀이 특수부대? 그 녀석들 모두 지연씨에게 껄떡거렸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다니, 금사장이 실수한 거야.”

 

“아니, 오해야. 우린 하루 종일 홍지연을 감시해.

 

홍지연 있는 곳에 우리가 있지. 말했다시피 홍지연은 너 때문에 모든 걸 포기했어.

 

그래서 거처도 호텔로 옮긴 거야.

 

뒷돈은 아마 미네르바의 대표가 댔을 거야.

 

고객지원팀 사람들은 정해진 요일마다 한 사람씩 우리를 찾아와 보고하게 돼 있어.

 

금사장은 홍지연을 설득하기 위해 호텔로 갔을 뿐이야.”

 

그때 형사 한 명이 다가오더니,

 

슬그머니 유치장의 문을 열어주며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부검결과가 나왔는데… 자살이랍니다.

 

미안합니다,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다 잊어버리세요.”

 

유치장을 나서는 내게 쌍둥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쌍둥이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지연씨… 왜 자살했을까?”

 

“홍지연이가 안 죽었으면 대신 다른 사람이 죽었겠지.

 

결혼하고서도 껄떡댔던 쾌걸조처럼…”

 

다른 한 놈이 얼른 말을 이었다.

 

“이거 받아. 홍지연의 유서야.”

 

나는 그녀의 사랑을 오해했다.

 

오해해서, 그리고 사랑해서 미안해…

 

하지만 잊을 수 있을까? 이제야 러브레터를 받았는데….

 

당신이 그랬죠.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눈이 멀어 상대방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연애가 재밌는 거라고…

 

이거 아세요? 난 나보다 누군가를 더 많이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그래서 내 삶이 보이지 않고 깜깜했었나 봐요.

 

당신이 그랬죠.

 

만나면 헤어질 운명에 있고,

 

헤어지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운명을 믿지 않지만,

 

당신을 믿고 싶었어요.

 

당신과 함께 했기에,

 

그날…

 

행복했어요.

 

생각해보면,

 

난 평생 날아다녀야 하는 발 없는 새였어요.

 

이젠 쉬고 싶어요.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

 

남깁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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