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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39

오늘의 쉼터 2015. 6. 13. 15:50

그녀의 시간표 39

 

 

 

그녀는 집으로 나는 곧장 회사로 출근했다.

후줄근하고 추레한 모습, 그래도 내 차림새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점심때쯤 사우나에라도 다녀와야 할 듯싶었다.

밤새도록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탓에 여느 때와 달리 눈꺼풀이 몹시 무거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지개를 켰고, 다음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두 통의 이상한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제발, 엉뚱한 짓거리 좀 그만하고 살아라.

너 때문에 내가 제 명까지 못 살 것 같다.’

 

자주 듣던 대사였다.

저세상의 어미가 내게 메일을 보냈구나, 잠시지만 착각했다.

다른 메일은 거의 협박조였다.

 

‘니놈이 밤새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이 처죽일 놈아!’

 

살의를 분명하게 드러낸 협박편지. 그래도 나는 히죽 웃어 넘겼다.

그녀와의 키스, 그 여진이 아직 내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냥 웃고 넘길 일은 아니지 싶었다.

필요한 물건을 꺼내기 위해 서랍을 열었는데,

거기에 밀봉된 편지봉투가 들어 있었다.

겉봉에는 ‘협박편지’라고 큼지막이 씌어 있었고,

편지지에는 ‘너, 아무래도 제명에 못 죽을 것 같다!

오늘부터 뒤통수 조심해!’라고 매직펜으로 적혀 있었다.

 

어미가 아니고도 어느 누군가에게 참 많이 듣던 대사였다.

범인들의 몽타주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렇다면 쌍둥이가 협박범? 하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헌법 제27조 4항에는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또렷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른바 무죄 추정의 원칙, 판결이 있기 전까지 쌍둥이는 무죄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놈들이 범인일 것이라고 나는 일백 퍼센트 확신하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그들은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것일까?

바람을 쐴 겸 담배도 피울 겸하여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데, 어쩐 일로 오늘은 평소와 달리 디스플레이가 매우 색달랐다.

복도 양편으로 ‘난 네가 한 짓거리를 알고 있다!’라고 적힌 A4용지가 연이어 붙어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일일이 확인했는데 두 사람의 필체였다.

이로써 범인의 윤곽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범인을 확신해도 체포는커녕 이름을 밝힐 수도 없는 것을.

 

한숨을 내쉬며 휴게실의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아니, 문이 열리기 일보 직전에 손을 떼며 부리나케 뒷걸음질을 쳤다.

아, 이놈의 건망증!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곧바로 목적지를 화장실로 바꿨다.

화장실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안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까놓고 단단히 문을 잠갔다.

거기에도 눈높이에 맞춰 협박글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물건을 나는 거기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두루마리 휴지걸이 위쪽에 간당간당 놓여 있었는데,

다름 아닌 범행도구인 매직펜이었다.

아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왜 이것이 하필이면 이곳에 있는 걸까?

어쨌거나 이렇게 된 바에야 상대방에게 한마디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넌, 누구냐? 대체 뭘 알고 있다는 거냐? 정체를 밝혀…’

 

쓱쓱쓱 일필휘지로 휘갈기는데,

쾅쾅쾅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문에 주먹질을 했다.

나는 점잖게 헛기침으로 대응하여 주었는데, 소용없는 짓이었다.

다시 거침없는 발길질이 문에 충격을 가해왔다.

그 순간 쌍둥이의 몽타주가 또다시 머릿속에 들어찼다.

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으로 다시 돌아온다더니…

갑자기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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