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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41

오늘의 쉼터 2015. 6. 13. 16:08

그녀의 시간표 41

 

 

 

”지연에겐 남자가 많아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요.

귀찮게 하지 말고 그만 포기하세요…

여기까지가 대표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이고,

이어 내가 한마디 하겠소.

우린 당신에 대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당신 때문에 홍지연은 많은 걸 잃었죠.

더는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금사장… 야쿠자출신입디다.

당신, 다칠 수 있어요.

이쯤에서 그만 물러나는 게 어떻겠소.”

 

회사를 빠져나와 근처 사우나탕의 문을 밀고 들어가며, 으득 이를 깨물었다.

마음이 심란했다.

가운차림으로 드러누워 지배인의 말을 곱씹었다.

나 때문에 그녀가 많은 것을 잃었다?

대체 그녀가 잃은 것이 무엇이지?

그 까짓, 아무래도 좋았다.

정작 가슴을 찌르는 말은 따로 있었다.

남자가 많다…

그러니 끼어들지 말라.

그녀의 남자들… 대체 누굴까? 누구지? 소문만 무성할 뿐,

그녀의 남자들에 대해 실제로 내가 아는 것은 전무했다.

 

다음날 나는 그녀의 남자들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망원렌즈가 달린 디지털카메라와 여러 중요사항을 기록할 필기도구, 렌트한 소형차 한 대를 준비했다.

나는 혼자였고, 소문으로 떠도는 그녀의 남자 전부를 뒤쫓는 건 현실적으로 역부족이었다.

벌이 꽃을 찾아 날아드는 것이 세상의 이치, 나는 단 한 사람 그녀를 목표로 정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녀의 차가 호텔로 진입하고 얼마쯤 후 수상쩍은 은색 승용차 한 대가 꽁무니를 이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은색 승용차가 호텔을 빠져나왔다.

이후로 네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그녀의 차는 호텔에서 나오지 않았다.

 

레이더에 포착된 첫 번째 사람은 팀장이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결과, 마음은 담담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답답하고 착잡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사람만 바뀌었을 뿐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나는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 모두를 그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팀장과 차장, 다시 송과장, 박대리와 강대리, 그리고 주말에는 금사장의 순서였다.

누구의 말처럼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그녀는 ‘바람’이 주특기였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면서, 내내 기분이 참혹했다.

얼마나 이를 갈았으면 어금니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었을까.

분노가 컸던 탓에 몇 번인가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못 만나요. 지금은 쉬어야 해요”라고 내게 고백했다.

연인 혹은 애인의 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쉰다’는 말에는 일반적 의미 외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단순한 의미는 휴식(rest)이지만, 내포된 의미는 운동(exercise)인 것이다.

가령, 남자가 여자에게 ‘쉬러 갈래?’ 하고 물었는데,

여자가 ‘노’라고 답하면 남자의 표정은 순식간에 굉장히 험악하게 변한다.

‘쉰다’는 의미를 ‘휴식’이 아닌 ‘운동’으로 서로 간에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내게 참으로 솔직했다.

 

밤늦은 시각,

나는 자취방 책상머리에 앉아 그간의 조사결과를 꼼꼼하게 표로 정리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다시 시간대별로 칸을 나누었다.

남자의 이름과 옷차림, 얼굴표정 등을 꼼꼼히 칸 안에 기입했다.

표를 완성하고 보니, 어째 시간표처럼 보였다.

 

그녀의 시간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참혹한 기분은 무엇일까?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삼키기 시작했다.

라면 한 냄비에 소주 두 병, 금세 취기가 꼭지에 올랐다.

아마 자정이 훨씬 넘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꾹꾹 손가락으로 찍었다.

곧 잠에 취한 그녀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홍지연! 만나요, 우리 만납시다. 꼭 할 말이… 당장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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