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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40

오늘의 쉼터 2015. 6. 13. 15:58

그녀의 시간표 40

 

 

 

“잠시 불심검문이 있겠으니, 웬만하면 나와줬으면 좋겠는디?” 
 

반 협박조의 목소리는 다행히 쌍둥이가 아닌 청소담당 아주머니였다.

 

“저 마명태예요.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대체 그 안에서 뭘 하는겨? 방금 쓱쓱거리는 소리가 났는디… 그게 낙서하는 소리제?”

 

“아… 아니예요. 이빨 가는 소리였어요.”

 

“냄새도 안 나고 소리도 없고, 분명 현범행이 맞는디 부인하네…

범인이 아니면 후딱 나오지 왜 그 안에서 버티는겨?”

 

“아주머니 때문에 놀라서 아직 볼일을 못 끝냈어요.”

 

“남들은 잘도 보더만. 젊은 사람이 어째 그리 힘을 못 쓰는겨?”

 

“알았어요. 이제 나가요, 나가.”

 

나는 매직펜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물을 내린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

아주머니가 실눈을 뜨고 찬찬히 나를 살폈다.

 

“앞쪽은 없고, 아무래도 엉덩이 좀 살펴봐야겠는디…

뒤에 감춘 거 있제? 매직펜 감췄제? 공무집행 방해 말고 후딱 돌아서봐?”

 

“자꾸 왜 이러세요?”

 

일부러 말꼬리를 조금 높였다.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아무래도 뭔가 찔리는 게 있긴 있는겨.”

 

그때 화장실로 두 사내가 들어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들은 하필이면 쌍둥이 형제였다.

그들을 발견한 아주머니가 불심검문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나는 처지가 달랐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서…”

 

한 놈의 말을 다른 한 놈이 뒤이었다.

 

“설마 남의 물건을 취득한 건 아니겠지?”

 

“혹시 이걸 잃어버리셨나요?”

 

고집부리지 않고, 매직펜을 꺼내어 공손히 두 손으로 바쳤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이거 천벌을 받아야겠는걸.”

 

역시 다른 한 놈이 얼른 뒷말을 이었다.

 

“웬수는 화장실에서 만난다더니…”

 

이미 포기했다.

절망적인 상황, 그래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었다.

으득 어금니를 깨물었고,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참으로 묘한 것은 희망은 꼭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삐죽 고개를 내민다는 사실이다.

화장실 입구, 누군가 간절하게 나를 찾았다.

 

“명태씨, 여기 있어요? 마명태씨, 안에 있죠?”

 

아아, 바로 그녀였다.

두 놈이 동시에 내게 덤벼들며 손으로 입을 막으려고 시도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내가 조금 빨랐다.

 

“네, 홍대리님! 여기 이 안에 있습니다!”

 

“얼른 나오세요. 팀장님이 커피 뽑아 오래요.”

 

“몇 잔이오? 커피자판기를 통째로 가져갈까요?”

 

나는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두 덩치가 사나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다행히 앞을 막거나 붙잡지는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보이지

 

“어? 지배인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출장서비스 왔습니다. 어때요? 내 성대묘사 괜찮았어요?”

 

성대묘사? …아, 그랬구나. 지배인에게 이런 기막힌 개인기가 있었구나.

그나저나 누가 출장서비스를 신청한 걸까?

 

“대표님이오. 홍지연의 청을 내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오.”

 

아아, 나의 수호천사! 나를 위해 보디가드까지 고용하다니…

감격한 탓에 찔끔 눈물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지배인이 덧붙인 뒷말에 눈물은 곧 한숨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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