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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33

오늘의 쉼터 2015. 6. 13. 13:26

그녀의 시간표 33 

 

 

 

"어이, 마른명태씨."

 

분명 나를 호칭하는 소리였다.

눈앞을 제대로 분간키 힘든 악조건이었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신경세포를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속수무책 당해야만 했다.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로 우직한 손아귀 하나가 뻗쳐오더니

순식간에 내 멱살을 움켜잡고 만 것이다.

 

“어어? 왜 이러세요?”

 

몸부림치며 버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아귀가 가볍게 내 몸을 허공으로 띄웠고,

나는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담배연기 저편의 세계로 내동댕이쳐졌다.

신기하게도 이쪽 세계는 담배연기가 전혀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하지만 지금은 날씨 따위에 현혹당해선 안되는 분위기였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눈앞의 두 사내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내들, 아니 두 덩치는 일란성 쌍둥이이거나 복제인간처럼 외양이 꼭 닮아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얕잡아 볼 수 없는 무림고수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내공의 수준이야 가늠할 길이 없다지만, 온몸이 울퉁불퉁 불규칙적인 게 외공 고수라는 건

단박에 짐작이 갔다.

 

“내 목소리, 기억합니까?”

 

한 사내가 느닷없이 내게 한 손을 내밀며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액션이나 말 품새로 보아 적의는 없었다.

적의가 없다는 건, 고작 악수 한 번으로 예전의 악감정 따위 깨끗이 잊자,

뭐 이런 의도였는데, 때린 인간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쳐도 죽다가 간신히 살아난 놈에게 어디 그게 가당키나 한 수작이겠는가?

나는 사내가 내민 손을 툭 내쳐버릴 생각을 했다.

내 의도는 분명 그랬는데, 중간에 손이라는 부속품이 내 의지를 배신했다.

내 두 손은 공손했고, 머리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그나저나 멱살을 잡혔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사내의 손은 거짓말 조금 보태어 솥뚜껑처럼 큼지막했다.

저런 손에 얻어터졌는데 살아남았다니,

나는 내 스스로가 대견하고 신기하고 놀라웠다.

 

“역시 우릴 잊지 않고 있었군요. 그렇죠?”

 

다른 덩치가 내게 재차 확인을 해왔지만 나로서는 선뜻 대답이 어려웠다.

여하튼 내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아하, 예전에 복날 개잡듯이 두들겨 팼던 바로 그분들이셨군요,

하고 대꾸할 순 없지 않겠는가.

나는 도리질을 치며 시치미를 뗐고, 덧붙여 초면임을 강조했다.

 

“기억을 못하다니, 아쉽군요.

하긴 그런 정신없는 상황에서 기억을 한다는 게 쉽진 않았을 겝니다.”

 

이해심의 발현, 혹은 점잖은 욕설? 덩치의 말을 다른 덩치가 얼른 이어받았다.

 

“사실 우리와 형씨는 구면인데… 우리 관리과에 있습니다.”

 

소문은 들었다.

사장이 해결사 노릇을 하는 쌍둥이 덩치를 거느리고 있다고.

쌍둥이는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활약했는데, 당시 별칭이 반칙왕이었다고 한다.

큼큼. 헛기침을 뿌려놓고 은근하게 쌍둥이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쌍둥이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저기요… 홍대리님이 사장님의 거시기라고 하던데, 그게…”

 

채 질문이 끝나지 않았는데, 쌍둥이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놈이 히뜩 고개를 치켜들었고, 다른 한 놈이 아주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더니,

거의 동시에 두 놈이 스테레오로 내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 친구 이거… 아직 덜 맞았군.

내 눈에는 죽여 달라고 안달하는 인간처럼 보이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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