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31장 후계자 [3]
(643) 31장 후계자-5
“이제 신의주도 궤도에 올랐으니 본업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서동수가 정중하게 말하자 수화기에서 먼저 한숨 소리부터 들렸다.
“아, 정말 그런 말씀 들으니까 서운합니다. 아주 이별하는 것 같아요.”
청와대 비서실장 양용식이다.
“장관님, 몇 년쯤 더 계셔도 되지 않습니까?
대통령께서 남북연방 체제를 발족시키실 때까지라도 말씀입니다.”
그때까지는 최소한 4∼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대성 대통령의 연임 기간 말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바로 독선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 정도면 제 분수 이상의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이제 물러나야지요.”
“그건 장관의 겸손하신 말씀이고.”
“대통령께 정식으로 말씀드리기 전에 실장께서 보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후임자만 결정하시면 제가 김동일 위원장께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아, 후임자는 장관께서 말씀해 주셔야지요. 그래야 김 위원장께서도….”
“어쨌든 대통령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한 서동수가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간곡하게 만류하니까 서운해지는군.”
그러자 앞에 서 있던 유병선이 따라서 긴 숨을 뱉었다.
“저도 몸 반쪽을 떼어놓는 심정인데 장관께선 오죽하시겠습니까?”
“내가 신의주 장관으로 일했던 4년 동안 동성의 성장이 15%밖에 되지 않았어.”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전까지는 연평균 35%씩 성장을 했는데 말이야.”
“여러 요인이 있었습니다만 최고경영자가 결정할 일이 미뤄지거나 아예 만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자네가 기조실 사장을 맡아줘야겠어.”
“알겠습니다.”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유병선이 바로 대답했다.
기업 인사는 파격이 드물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처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파격 승진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난데없는 인사는 곧 망사(亡社)의 시작이 된다.
유병선은 동성의 비서실장 출신이고 신의주 장관의 비서실장까지 한 인물이다.
그러니 그 경력을 감안하면 동성의 기조실 사장이 안성맞춤일 것이다.
그때 유병선이 수첩을 펴고 말했다.
“오후 7시에 이하영 씨하고 저녁 약속이 있으십니다.”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으므로 유병선이 외면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이하영 씨에 대해서 북한 측이 눈치채고 있지는 않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병선이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현재 이하영 씨가 취업 희망자들로부터 받은 취업비는 22억5000만 원이 되었습니다.
모두 경력직이어서 과장급은 2000만 원, 부장급이 5000만 원, 실장급 7000만 원,
중역은 1억에서 3억 원까지를 받았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이니만치 앞으로 몇 배가 늘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며칠 전보다 더 늘어났군.”
혼잣소리로 말한 서동수가 긴 숨을 뱉었다.
이하영은 조선항공·자동차의 경력직 사원 공급 계약을 맺은 후에 희망자로부터
취업비를 받아 챙기고 있다.
(644) 31장 후계자-6
서동수가 들어서자 이하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웃음 띤 얼굴이 환했다.
아름답다.
반짝이는 눈과 반쯤 벌어진 입술을 보면서 서동수는 이하영의 쾌락에 젖은 얼굴을 떠올린다.
이하영의 모습을 본 순간 강한 성적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비음이 섞인 목소리도 자극적이다.
서동수도 따라 웃으며 앞쪽 자리에 앉았다.
아베와의 ‘대마도 전쟁’ 때문에 한 달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 이하영은 김동일이 투자한 조선자동차, 조선항공의 인력공급업체로 선정되었다.
수천 명의 행정직, 기술직 경력 사원이 필요한 터라 한 달도 안 되어서 22억5000만 원을 벌었으니
취업자로부터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챙길 것은 분명했다.
이하영은 조선자동차, 조선항공과는 계약서상의 수수료도 수십억 원을 받게 돼 있다.
신의주의 유흥구에 위치한 ‘서울식당’의 방 안이다.
주문한 한정식 요리가 놓였고 식사를 하는 동안 이하영이 밝은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었다.
인력공급의 어려운 점, 외국에서 우수 기술인력을 빼 올 때의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펼쳐졌다.
식사와 함께 소주를 마셨는데 소주병이 두 병째 비워졌을 때 이하영이 상기된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곧 동성으로 복귀하신다면서요?”
“아, 그래요.”
소주잔을 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이하영을 보았다.
“조선자동차와 조선항공 경영까지 맡게 될 테니 지금보다 더 바쁘겠지.”
“장관직에 계시면서도 경영하실 수 있을 텐데요.”
“장관 하면서 동성 성장률이 낮아졌어요.”
한 모금에 소주를 삼킨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동성이 제2의 도약을 해야 살아남게 될 거요.”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장관님.”
이하영의 시선이 은근해졌다.
진홍빛 루주를 바른 입술이 조금 벌어져 있는 것이 색정적이다.
오늘 만남은 어젯밤에 서동수가 만나자고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오늘 오전에 신의주에 와 있던 이하영의 정부(情夫) 김창무가 돌아갔다.
대준상사 전무 김창무가 신의주에 머무는 사흘 동안 매일 밤 이하영의 방에서 잤다.
이하영과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길게 숨을 뱉은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김창무란 사람 알아요? 대준상사 전무라고 하던데.”
그 순간 이하영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졌고 입을 벌렸지만 말은 뱉어지지 않는다.
순발력이 뛰어나더라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오전에 공항에서 체포되었는데 이하영 씨하고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는군.”
“…….”
“이하영 씨가 인력을 공급하면서 취업자들로부터 취업비 명목으로 막대한 수수료를 받았다는 것이
사정 당국에 적발된 거요. 이건 북한으로 송환될 사안인 것 같은데.”
서동수가 잔에 소주를 따르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만나자고 한 건 이것 때문이요.”
잔을 든 서동수가 한 모금에 술을 삼키고는 외면했다.
“북한 당국은 그런 부정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두 분을 고사총으로 처형할 것 같은데.”
말을 멈춘 서동수가 벽시계를 보았다.
오후 8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그때 문득 포장마차가 떠올랐다.
최정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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