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31장 후계자 [2]
(641) 31장 후계자-3
자리로 돌아와 앉은 이태영에게 김창수가 다가와 섰다.
김창수는 영업1부장, 이태영의 직속상관으로 3년 선배다.
“회장 만났어?”
책상에 두 손을 짚은 김창수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김창수하고 부가 달라서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가
이곳 중국 본사로 옮겨왔을 때 같은 부 소속이 되었다.
중국밥 먹은 연수로는 김창수가 3년, 이태영이 2년인데
둘 다 자원해서 중국으로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은 현장에서 가깝고 그만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든 이태영이 빙긋 웃었다.
“예, 만났습니다.”
그 순간 김창수의 입술 끝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이태영이 보았다.
그러나 곧 눈웃음을 치면서 다시 묻는다.
“뭐래?”
“우즈베키스탄 상황이 어떠냐고 묻던데요. 그래서 대충 말씀드렸지요.”
“무슨 일 있나?”
다시 김창수의 입술 끝이 떨렸다.
시기다. 절차대로 한다면 팀장보다 부장을 부르는 것이 맞다.
부장이 실무팀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서실장이 팀장을 불렀으니 어쩌랴?
다른 때 같으면 제 책상으로 이태영을 불러 물었을 것을 제가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태영이 머리를 기울였다.
“글쎄요.”
“다른 말 없고?”
“없습니다.”
어깨를 편 이태영이 다시 김창수를 보았다.
말대가리 같은 김창수의 얼굴을 본 순간 이태영의 머릿속으로 만감(萬感)이 교차했다.
문득 당분간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회장이며 신의주 장관인 서동수와 독대를 한 번 한 것만으로도 잘하면
몇 년을 우려먹을 수가 있을 것이었다.
사주와 밀접한 사이라고 소문이 나면 다들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이다.
별일이 없는 한 진급 순위는 항상 영순위로 올라간다.
사주는 한 번 만나고 잊어먹었는데도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이다.
사주는 사주대로 진급예정자 명단을 보고 ‘아, 이놈. 일 잘하는 모양이네?’ 하면서
사인을 해버리는 바람에 대리 때 회장 면담을 한 번 하고 나서
전무까지 고속승진을 했다는 ‘전설의 고향’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순간에 이태영의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상념이다.
그때 김창수가 말했다.
“곽 전무한테서 전화가 왔어. 무슨 일로 회장실에 불려갔느냐는 거야.”
“부장님이 말해 주시죠.”
이태영이 웃어 보였지만 눈에 힘이 들어갔다.
가소로움을 참고 있는 것이다.
곽 전무는 하버드 박사학위 소지자로 영업본부장이다.
곽 전무도 회장실에 불려간 이태영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김창수의 시선을 받은 이태영이 마침내 한마디했다.
“저한테 직접 물어보기엔 체면이 깎이는 모양이죠?”
“그런 모양이야.”
쓴웃음을 지은 김창수가 허리를 폈다.
“우즈베키스탄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고 말해 줘야겠군.”
“아유, 바빠 죽겠는데 이게 웬.”
입맛을 다신 이태영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김창수를 보았다.
“회장실에 갔더니 장관 비서실장도 있더라구요.
이것저것 물어보는 통에 진땀이 다 났습니다.”
“뭔데?”
다시 김창수가 책상에 두 손을 짚었을 때 이태영은 또 입맛을 다셨다.
“그냥 회사 분위기 같은 거요.”
이태영은 이것으로 분위기는 굳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642) 31장 후계자-4
신의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서동수가 자료를 읽는다.
이태영은 지방대 출신으로 겨우 입사했지만 팀장이 됐으니 실력은 인정받았다.
입사 7년 차이며 33세, 작년에 팀장으로 승진했는데 영업에서 발군의 실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미혼이며 적극적인 성격, 리더로서 팀원의 신망을 받는 편. 이는 팀원들이 팀장을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상사들의 평가는 전혀 달랐다. 행정 절차가 미숙하며 월권, 근태 불량, 과도한 음주,
사생활 문란까지 적혀 있다.
이쯤 되면 치명적이다.
이태영의 전(前) 상사 네 명과 현(現) 상사 두 명의 평가가 거의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부하들의 신망만 가지고는 조직사회에서 출세하지 못한다.
차라리 부하들로부터 더러운 평가를 받더라도 상사들의 평가가 좋으면 대부분 진급한다.
서동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월권, 근태 불량, 사생활 문란까지 자신의 옛날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청공장에서 리베이트를 먹은 것이 들통 나는 바람에 전자팀장에서
칭다오 계열공장의 총무과장으로 전출됐지 않은가?
그것이 지금의 서동수를 만든 계기가 됐다.
그러나 누가 지금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서류를 내려놓은 서동수가 앞쪽에 앉은 유병선을 보았다.
“젊은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후회하느냐 안 하느냐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측량할 수 있어.”
영문을 모르는 유병선이 눈만 깜박였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후회하지 않는 인간의 성공 가능성이 많다고 확신해.”
유병선이 머리를 끄덕였지만 건성인 것이 실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서동수가 눈으로 앞에 놓인 이태영의 서류를 가리켰다.
“이 친구 서류를 보니 능력은 뛰어난데 윗사람과의 관계와 생활에 문제가 많은 것 같군.”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만, 진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다.
이태영이 예전의 자신과 비슷하다고 했다면 유병선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직장 생활에서 상관들의 불신임과 견제를 받는다면 치명적입니다.
이태영은 회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긴 그렇군.”
이태영의 전 상관 중 아무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태영이 지금까지 버텨 온 이유는 단 하나, 빼어난 능력 덕분이다.
입사 4년 만에 러시아에서 1억 불 가까운 전자오더를 획득한 것은
동성전자 영업본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래서 팀장으로 승진됐지만 그 후로 앞이 막혔다.
평소의 행실 때문이다. 직장인 중 능력 외의 사생활, 대인관계,
특히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제동이 걸려 주저앉은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머리를 기울였던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내가 우즈베키스탄 상황 때문에 문제아를 하나 발견한 것 같아.”
뒷말이 궁금한 유병선이 숨을 죽였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놈은 자생력이 있어. 두고 보라고.”
“자생력이라면 뭘 말씀하십니까?”
유병선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이놈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지 내 눈에 선해.”
“…….”
“만일 내 예상대로라면 이 서류에 적힌 내용을 엎어 버릴 수 있을 거야.”
“어떻게 말씀입니까?”
유병선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다시 웃었다.
“가만 두고 보라고. 재미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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