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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22

오늘의 쉼터 2015. 6. 9. 16:09

그녀의 시간표 22 

 

 

 

 

이게 웬일이람? 청소담당 아주머니가 수고를 하기 전에 이미 광고지를 본 사람들이 여럿 있었나보다.

혹시나 하여 이메일을 열어보았는데, 이… 이럴 수가! 순간 호흡을 되삼켜야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속이란 말인가? 무려 수백 통은 됨직한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스팸메일인가 의심하여 다시 살펴봤지만, 하나같이 ‘정보제공’ 또는 ‘제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가슴이 뿌듯해지며, 싸한 희열이 순간 온몸으로 번졌다.

열정의 승리랄까, 주저하지 않고 얼른 메일을 클릭했다.

 

메일은 네 가지로 분류가 가능했다.

스팸메일, 협박메일, 소원메일, 정보메일. 스팸메일은 자신의 블로그를 홍보하거나

무조건 홍대리를 험담하고 비방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이거 사기 아니죠? 사기가 아니라면 제 블로그 방문해서 안부게시판에 글 남겨주시기 바래요.’

 

‘시력이 나쁜 분인가봐? 홍대리… 1분만 찬찬히 뜯어봐요.

어린아이라도 칼질했다는 거 금방 눈치 챌걸요.’

 

‘홍대리 입사 1년 만에 대리로 승진했어요?

이유가 뭔 줄 아세요. 그 유명한 소파승진이라고요!’

 

반면 남자들은 주로 협박이나 소원성취를 바라는 내용의 글을 보내왔다.

 

‘당신, 이런 짓을 하는 진짜 이유가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홍대리… 사랑하지 마. 그러다 제 명에 못 죽어’

 

‘홍대리, 이미 내 호적에 올라 있다. 안됐지만 포기해라’

 

‘너 우리 회사 직원인 거 다 안다… 앞으로는 뒤통수에 백미러 달고 다니는 게 좋을 거다’ ‘

 

정중하게 부탁한다. 홍대리를 귀찮게 하지 마라.

그녀의 뱃속에는 이미 내 아들이 자라고 있다. 제발… 부탁이다’

 

‘내가 늘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 명심해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분노를 먹물 삼아 참을 인 자(忍)를 수없이 휘갈기고 있다’

 

로맨티스트 어쩌고저쩌고 하는 단어가 섞인 협박글도 있었다.

 

보내온 모든 제보를 믿거나 허섭스레기로 치부하여 모조리 버릴 필요는 없었다.

단순한 루머에 불과하더라도 현재의 내게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메일들을 따로 분류했고,

직원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려 그것들을 모조리 프린트했다.

 

집에 돌아와 프린트 종이를 다시금 세세히 살폈다.

시급하게 확인을 요하는 제보들만 따로 간추리다보니,

어느새 창가로 희부옇게 새벽빛이 밝아왔다.

홍대리의 이상야릇한 과거사와 입사경위, 구체적으로 이름이 거명된 직원들과의 스캔들 등의

제보가 마지막으로 내 손아귀에 남았다.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핏발이 갈라진 눈동자로 한 움큼이나 되는 프린트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기분이 착잡했다.

스물일곱, 한 여자의 삶이 이토록 파랑(波浪) 같았다니…

 

그나저나 이제 어찌해야 하나?

내게 재력이 있다면 당장 심부름센터의 전화번호를 눌러 조사를 의뢰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가당치가 못하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라.

팀장의 말마따나 나는 팔자에도 없는 탐정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홍대리의 과거확인 작업에 먼저 착수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호기심, 그리고 제보의 구체적 언급이 선정의 이유였다.

제보에 따르면 홍대리는 한때 영화배우였다.

영화제목을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미처 그 점은 생각지 못했는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느지막이 출근을 했다.

졸며 빈둥거리며 오후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출장을 나갔다.

출장지는 고급 룸살롱 ‘미네르바’…

그녀에 대한 거의 모든 루머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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