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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18

오늘의 쉼터 2015. 6. 7. 11:53

그녀의 시간표 18

 

 

 

어슬렁거리며 휴게실로 들어갔다.

매캐한 담배연기로 가득 찬 휴게실은 짙은 안개가 낀 듯 한치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멀쩡한 시력을 가진 사람도 장님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

적당한 공간을 찾기 위해 두 손을 휘휘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물컹 무엇인가 손안에 만져졌다.

 

“어이, 뭐하는 짓이야? 왜 남의 가슴은 더듬거려?”

 

걸걸한 목소리는 남자였고 시비조였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방이 만만찮은 덩치라는 것을 직감했다.

 

“죄송합니다… 눈이 침침해놔서…”

 

게슴츠레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살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흐르는 안개처럼 담배연기가 지나고 나서야

거무스름한 윤곽이 서서히 시야에 잡혀왔다.

 

“어라? 이 인간… 그 인간 맞지?”

 

“맞는 것 같은데...”

 

“겁도 없이 호랑이굴로 제 발로 찾아들다니, 간뎅이가 엄청 부었어.”

 

요즘 호랑이는 휴게실에서 사나?

하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도 있으니,

호랑이도 흡연하려면 휴게실을 이용하겠지.

그나저나 이자들… 대체 무슨 수작인 게야? 곧 이유가 밝혀졌다.

 

“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홍대리에게 다이빙하는 놈.”

 

“이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실히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겠어.”

 

“그보다 예절교육이 먼저야.”

 

“이봐… 오늘 억세게 운 좋은 줄 알아.

우리가 직접 교육하는 경우는 웬만해선 없어. 다 자네니까 특별히 시간 내는 거야.”

 

말하는 품새로 보아선 두 사람인 것 같은데, 어째 목소리가 흡사하여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한 녀석이 두 녀석인 척 모노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인지도…

의심쩍은 마음에 녀석들의 정체를 확인할 요량으로 미간을 좁혀 눈씨를 돋웠다.

그 순간 어떤 기이한 물체가 굉음을 내며 담배연기를 뚫고 나오더니,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로 나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왔다.

 

…뭐…뭐야?

 

어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해야 대중이 이해할지 나로서도 막막하지만,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 순간보다 어금니를 깨문 순간이 현저하게 빨랐다.

이제껏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엄청난 충격과 고통이 턱을 진앙으로 순식간에

온몸 구석구석으로 번졌다.

핵폭탄이 터진 것 같았고, 순간 느즈러져 있던 세포들이 일제히 비명을 토해냈다.

 

후폭풍은 더욱 끔직했다.

폭탄이 터지면서 진작부터 머릿속에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지진이라도 난 건가? 다행하게도 지진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누군가 침입하여 이곳저곳 마구잡이로 굴착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독한 고통! 때때로 인생은 아이러니컬하다.

고통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피어났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 하여튼 법보다 주먹이 더 우위라는 이 말,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주먹으로 흥한 자 주먹으로 망한다는 말은 이제 전설에 불과하다.

해결책이 있는가, 한참 고심한 끝에 깨달음이 있었다.

인정할 건 순순하게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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