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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17

오늘의 쉼터 2015. 6. 7. 11:48

그녀의 시간표 17

 

 

 

소문의 위력은 대단하다.

내 과거의 기억 한 자락에서도 소문에의 위력은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다.

홀로 된 어미가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뜬금없이 화두를 던졌다.

 

“어미가 백년을 산들 누가 알아 열녀문을 세워주겠느냐?”

 

그러면서 서쪽 창가를 눈물 진득한 눈길로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쪽으로 두 동리 저편, 외모가 준수하고 경제적인 능력도 썩 괜찮은 홀아비가

고독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미는 홀아비를 사모했다.

소문은 그러했고, 동네사람들 다들 알았는데 나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즈음 내 나이 십대 후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조금만 삐끗 어긋나도 걷잡을 수 없는 민감한 시기였다.

무엇보다 가정의 안정이 중요했고, 나는 변화를 원치 않았다.

하여 서동을 벤치마킹했다.

천하의 바람둥이인 홀아비가 이 여자 저 여자 제 집 여자인 듯 넘나드네…

지극히 허황된 그저 소문일 뿐인데도 동네 남정네들은 철석같이 믿어주었다.

남정네들의 얼토당토않은 추궁에 여인네들은 질겁했고,

어느 날 저희들끼리 쏙닥거리더니 팔을 걷어붙이고 홀아비에게로 몰려갔다.

그날 이후 홀아비가 어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손끝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어미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웃기지도 않은 경험으로 나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은 소문이라는 것. 서동은 신라의 공주를 소문으로 취했다.

하물며 그녀쯤 어찌하지 못할까.

 

계획하고 일을 진행하려 해도 앞뒤 순서는 있었다.

어떤 내용의 소문을 어떻게 퍼뜨릴 것인가?

소문을 접한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당사자의 반응이다.

그녀의 반응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일은 보다 수월하게 풀릴 것이다.

 

그러자면 그녀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다.

자료를 모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범죄를 다루듯이 꼼꼼하게 분석한다면…

문득 머릿속으로 몇 개의 알파벳이 휘리릭 떠올랐다.

크리미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

옳거니, 나는 손바닥으로 무르팍을 내리쳤다.

취합한 그녀의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심리분석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그녀의 반응예측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에 대한 소문을 취합하기로 순서를 바꾸었다.

소문을 자료화하고, 다음으로 실제 확인작업도 거쳐야 한다.

소문을 취합하기에 어떤 곳이 좋을까?

궂이 머리끈을 둘러매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휴게실과 화장실, 그리고 구내식당이 적당한 장소였다.

 

남자들이 이용하는 휴게실과 화장실은 상상 이상으로 그 용도가 다양하다.

흡연과 볼일을 보는 장소 외에도 음담패설을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토론장,

때로는 은밀한 목적으로도 활용된다.

은밀하다는 측면에서 휴게실보다는 화장실 쪽이 보다 활용도가 다양하다.

때때로 화장실은 예술의 전당으로, 또는 육체적 욕구해소의 장소로도 이용된다.

앞으로는 나에 의해 한 가지 더 활용가치가 첨부될 것이다.

그녀의 소문을 모으는 곳. 나중에 그녀가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어쩜 그리 나에 대해 훤히 알아요? 도청이라도 한 거예요?”

 

즉시 행동지침을 정했다.

구내식당에서는 이왕이면 여직원 가까이에 앉아 식사한다.

휴게실에서는 사내커플로 소문난 직원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자주 화장실에 들르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버텨본다.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당장 실천으로 옮기기로 하고,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

그날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는 아주 특별한 용도로도 그곳을 활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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