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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표 14

오늘의 쉼터 2015. 6. 6. 16:04

그녀의 시간표 14

 

 

 

느지막한 오후,

정체 모를 문자메시지가 그녀를 사무실 밖으로 호출했다.

하루에 서너 번씩 그녀는 꼬박꼬박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그때마다 그녀는 긴장된 얼굴로 서둘러 외출을 했다.

 


누구로부터의 문자메시지였는지,

왜 그녀가 그토록 긴장해야 하는지,

서둘러 외출을 해야만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나로서는 여간 불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의 미심쩍은 외출은 나를 속상하게 했고, 의심에 매달리게 했고,

내가 내 자신을 의처증 환자로 믿게끔 만들었다.

 


의문은 또 있었다.

 


그녀의 외출에 대한 팀원들의 희한한 반응 역시 내게는 미스터리였다.

팀장은 왜 그녀의 무단외출을 문제 삼지 않고 방관만 하는가?

아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외출할 때,

팀원들은 일부러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해 주었고,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으며,

그녀가 사라지고 한동안은 약속이나 한 듯 깊은 시름에 사로잡혀 있었다.

시름은 곧 침묵을 동반한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시간을 한껏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외출은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게 소중한 휴식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저들이 보여주는 이 기묘한 현상은 무엇일까?

이러한 현상은 어찌하여 연출되는 것일까?

호기심이 발동했고 심혈을 기울여 연구를 해보았다.

그 결과, 일종의 집단패닉현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전의 상실이 주요한 원인이지 않겠는가,

나름대로 분석이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바람도 쐬고 담배도 피울 겸하여 의자를 뒤로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팀장의 매서운 눈초리가 나를 쏘아보았다.

 


“담배 좀…”

 


변명을 둘러대는데도 삐질삐질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오늘따라 팀장의 분위기는 왠지 으스스하다.

다행이라면 그의 얼굴에 나를 향한 그 어떤 심술궂은 의도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

 에라, 모르겠다… 도망치듯 사무실에서 나왔다.

 


오십에 가까운 나이,

그래도 젊은 여자에게 집착하는 팀장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가 떠오른다.

카피라이터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지 못해도 꼭 한 번 만나봤으면 싶다.

만나면…

내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면상에 힘껏 주먹을 찔러주고 싶다.

가정을 지켜야 할 유부남을 충동질한 죄,

이는 이 나라를 불순한 사회로 만들려는 의도가 분명하고,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허나 카피쟁이가 구속됐다는 기사는 흐릿하게라도 기억에 전혀 없다.

뭔가… 잘못됐다.

 


…그렇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녀는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

퇴근시간이 다돼 가는데, 어째 통 연락이 감감한 것일까.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러다 구두코로 기억된 사내가 불쑥 머릿속에 떠올랐다.

발소리를 죽이며 계단참으로 가보았다.

귀를 기울였지만 사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어딜까? 그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옥상 라운지로 올라갔다.

도심 속의 자연, 인공으로 조성된 작은 숲 한쪽에 동상처럼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냈고, 뒷모습의 사내는 어깨 너머로 담배연기를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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