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색정기 4
1.
"치, 손으로요?”
이가성이 봉수의 팔에 매달렸다. 차마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봉수는 말을 더듬었다.
한 장소에서 같이 근무하는 여자와 섹스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부딪혀야 하는데 그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깨겠어요.”
“오늘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술들을 마시고 잠 들었으니까.”
이가성은 봉수의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세웠다.
“이가성씨가 그럴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전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거짓말 마세요.
그리고 섹스만큼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다는 걸 저처럼 어린 나이의 여자도 잘 알고 있어요.
저 역시 스트레스 받았을 때 땀 흠씬 흘리고 섹스를 하고 나면 그렇게 좋을 수 없거든요.”
봉수는 어찌해할 지를 몰랐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봉수는 이가성을 조금 밀어냈다.
이가성은 다시 그만큼 봉수에게 다가들었다.
“사랑하게 되면 더 골치가 아파져요. 더군다나 이런 좁은 공간에서는 말이죠.”
듣고 보니 이가성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볼까 고민이 되어서 그렇죠?”
“그런 거 아닙니다. 난 다만 이래서는 안될 거 같아요.
그리고 난 섹스 말고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들이 많아요.”
“뭐가 있는데요?”
이가성의 얼굴이 봉수의 턱 아래로 바짝 다가왔다.
거부할 수 없는 향기가 봉수의 코를 찔렀다.
“팀장님, 저를 헤픈 여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나이에 남자를 만났으면 얼마나 만났겠어요,
집밖에 나와 사는 것도 이게 처음인데요.
저도 모르게 제 마음이 이렇게 시키는 거예요.”
봉수는 더 이상 눈길을 돌릴 곳이 없어 이가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이 보였다.
그녀의 눈은 어렸을 때 집 뒤의 동산에 누워서 올려다 본 밤하늘 같았다.
그녀의 숨결은 동쪽 바다를 훑고 올라온 부드러운 미풍이었다.
“이가성씨 뜻은 충분히 알았어요.
하지만 이럴 수는 없어요.
제게 잘 보일 필요도 없어요.
이가성씨는 이미 훌륭한 모델이기 때문이에요.”
봉수는 이가성에 소파에 앉혔다.
봉수는 그녀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날 왕조선과 이가성이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이가성의 행동은 계산된 것인지도 몰랐다.
“이가성씨는 레즈비언이 아니었던가요?”
봉수는 그녀를 떼어낼 방법을 찾지 못해 기어이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아셨어요? 하지만 전 레즈비언은 아니에요.
양성애자라고 하면 맞을 거예요.
예쁜 여자도 좋아하고 남자도 좋아하는.”
봉수는 난감했다. 이가성은 더더욱 봉수를 조여왔다.
그녀가 봉수의 손을 벌거벗은 자신의 몸 중심으로 잡아끌었다.
까칠하고 매끈한 느낌이 동시에 손가락에 전해졌다.
봉수는 다시 한번 사방을 둘러보았다.
고요했다.
이가성의 숨소리와 봉수의 심장소리만 들렸다.
“섹스를 하면 제 판단이 흐려져요.”
이가성의 다른 한 손이 봉수의 아랫도리를 더듬고 있었다.
본능은 늘 이성을 배반하기 마련이다.
봉수의 아랫도리는 훌륭하게 발기를 하고 있었다.
2.
"판단이 흐려지다뇨?”
“일하는데 객관적인 의식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에이, 섹스 한번 했다고 그러겠어요. 어머!”
이가성이 느닷없이 놀라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봉수에게서 몸을 떨어트린 후 봉수의 아랫도리 쪽을 쳐다보았다.
봉수의 바지 앞이 부풀어오를 대로 올라 산처럼 솟아 있었다.
“팀장님은 정말 커요.”
이가성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갔다.
봉수는 그녀의 손을 떼어내고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가성씨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이가성이 다시 바짝 다가왔다.
봉수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준다는 데 그냥……’
봉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봉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중에, 우리가 정말로 성공했다 싶으면 아니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그땐 가성씨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우리 식구 중 누구라도 섹스를 하고 나면 그 긴장이 풀어져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요.
내 심정 좀 이해해 줘요.”
그제야 이가성이 봉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럼, 한번만 더 보여줘요.”
“네?”
“그거 말이에요.”
“뭘?”
봉수는 빤히 알면서도 능청을 떨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물건은 정말 훌륭했어요. 한번도 그런 물건을 본 적이 없거든요.”
술기운과 ‘호색한’에서 느꼈던 분위기,
그리고 밤이 주는 묘한 은밀함이 그녀를 부추긴 듯했다.
“그럼, 물러나는 겁니까?”
“네.”
봉수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절대로 만지면 안돼요.”
“네.”
이가성이 명랑하게 말했다.
난감한 이 상황을 모면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먼저 옷 좀 입어요.”
이가성이 고분고분 봉수의 말을 들었다.
그녀가 조금 더 떨어져 앉았다. 봉수는 망설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자신의 아랫도리를 구경하겠다고 했던 여자가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었다.
봉수가 바지 지퍼를 막 열려고 할 때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봉수는 황급히 지퍼를 채우고 소파에 앉았다.
반면 이가성은 느긋하게 앉은 채 술잔을 들었다.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왕조선이었다.
“너 뭐해?”
왕조선이 하품을 하며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잠이 안 와서.”
“나도 자다가 깼어.”
왕조선은 봉수의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어, 분위기가 수상한데.”
이가성이 피식 웃었다.
3.
왕조선이 영문도 모른 채 오징어를 씹으며 덩달아 웃었다.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봉수가 손을 내저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데요.”
왕조선은 이가성의 옷차림을 보고 대충 짐작을 하는 듯했다.
왕조선의 옷차림 역시 이가성과 비슷했다.
봉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실은 팀장님 거시기 한번 보여달라고 그랬어.”
“정말?”
이가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고 왕조선 역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왕조선의 눈이 번득였다.
잠결에 나온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너도 보고 싶지?”
이가성이 왕조선에게 물었다.
“보고는 싶지만 그러면 안되겠죠?”
봉수는 얼굴이 뜨거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봉수는 눈앞에 보이는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장난이에요.”
왕조선의 말에 봉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성이는 나랑 달리 대담하죠?”
“그렇네요.”
두 여자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또 방문이 열렸고 이번에는 공정혜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안 주무셨어요?”
“웃음소리 때문에 깼죠.”
공정혜는 그래도 비교적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냉장고를 뒤져 물병을 꺼냈다.
“술 더 마시는 거예요? 내일 한국에서 누가 온다면서요?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죠.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자겠습니다.”
봉수는 서둘러 소파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진국이 몸을 모로 튼 채 잠들어 있었다.
봉수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소파에서 섹스를 벌였다면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수는 진국의 곁에 조용히 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이가성의 몸이 아른거렸다.
‘미친 척하고 한번 할 걸.’
봉수는 적잖이 후회가 되었다.
‘아냐. 잘한 거야. 내 말대로 긴장을 흐트러트릴 수 없어. 지금은 말이지.’
봉수는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었다.
아직도 팽팽하게 발기되어 있었다. 봉수는 방에 딸린 화장실로 조용히 향했다.
호천수 회장이 마련한 이 콘도에는 방마다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봉수는 소리나지 않게 화장실 문을 닫은 뒤 바지를 내렸다.
봉수의 아랫도리가 툭 튀어나왔다.
자신이 보기에도 훌륭해 보였다.
‘내가 일만 아니었으면 그냥 죽여주는 건데.’
봉수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봉수는 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거머쥐었다.
이가성의 유혹을 이긴 건 잘한 짓이었다.
봉수는 그녀의 벗은 알몸을, 중심의 짙은 숲을 떠올렸다.
4.
눈을 찌르는 햇살 때문에 봉수는 눈을 떴다.
진국은 언제 일어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봉수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깨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에 이가성과 왕조선도 보였다.
봉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선배님, 어떻게 얼굴이 팅팅 부었네요.”
병달이 봉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어제 여기서 한 잔 더 해서 그런가봐.”
봉수는 고개를 돌리다가 우연히 이가성과 눈이 마주쳤다.
이가성이 엷게 미소를 지었다. 봉수도 짧게 미소를 지었다.
아침을 먹고 각자의 책상 앞으로 흩어졌다.
그 동안 봉수는 이가성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제 섹스를 했으면 얼굴도 못 들었겠지.’
봉수는 다시 한번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팀원들이 골몰하게 일하는 사이 진국과 봉수는 콘도에서 나왔다.
주해원을 맞이하러 푸동 공항에 가야했다.
“진국아, 어제 나한테 얘기하려던 거 뭐였냐?”
봉수는 차에 오른 후 진국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했잖아.”
진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봉수는 차를 출발 시켰다.
“아, 그거.”
진국이 미소를 지었다.
신해수를 의심한 일 때문에 마음이 상하진 않은 듯했다.
“그 전에 해수씨 의심한 건 내가 미안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나도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좀 있으니까 아무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진국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너 어제 ‘호색한’에서 본 여자 생각나지?”
“우리가 나올 무렵에 홀로 들어왔던 여자?”
“맞아!”
“그런데?”
“그 여자 보면서 우리 컨셉이 떠올랐어.”
“그래, 나도 그 여자 보면서 뭔가 나오겠다 싶었지.”
“우린 필이 비슷해. 그지?”
진국이 운전을 하는 봉수의 어깨를 쳤다.
“그래, 말해봐.”
“전에 네가 나한테 보냈던 샘플 있잖아.”
“경면주사와 황금?”
“그래.”
“그걸 그대로 밀고 나가는 거야.”
“그야 어렵지 않지만 우리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거잖아.”
“봉수야,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말야.
그러니까 황 사장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꿈을 꿨거든.”
“꿈?”
“그래, 황 사장이 우리를 받아들이기로 한 그 전날 저녁에 꿈을 꿨어.”
“그런데?”
봉수는 귀를 활짝 열고 진국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5.
진국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봉수가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호천수 회장이 황금 속옷을 입고 나타났단 말야?”
“그렇다니까.”
“묘한 일이네. 이게 징조 아닐까?”
“나도 어제야 그 생각이 들더라고. 황금과 경면주사를 연결하는 거야.
그러니까 색으로 치면 붉은 색과 황금색을 말이지.”
“경면주사를 정말로 쓰고?”
“그게 가능하다면.”
“경면주사가 금보다 비싸다고 하던데.”
봉수는 경면주사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안 후로는 그 아이디어에 대해 시들해져 있었다.
“나도 실은 가격 때문에 걱정을 하긴 했는데 경면주사를 소량 쓰면 별 문제가 없을 듯하거든.”
“그야 그렇지만.”
봉수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떠올려 보았다.
붉은 기운이 도는 황금 옷을 입은 이가성. 참을 수 없는 유혹의 그림이었다.
“오스트리아하고 평양에서도 경면주사가 나긴 하지만 사천성께 최고라고 하더라.”
진국은 정면을 보고 운전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재미난 게 두 가지 있는데 말야……”
진국이 히죽 웃었다.
“언제 경면주사에 대해 알아 봤어?”
“답답해서. 사람들이야 부적 쓰는 데만 사용하는 줄 알지만 알고 보니까 약으로도 쓰더라.
눈도 밝게 하고 피를 잘 돌게 하고 말야.
그런데 내가 재미나게 생각하는 건 경면주사가 늙지 않게 하고 음기를 극도로 응축 시켜준다는 거야.”
“늙지 않게 하고 음기를 극도로 응축시켜준다고?”
봉수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러니까 경면주사로 만든 속옷은……”
진국과 봉수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여자들 속옷을 남자가 사도록 만든다?”
봉수의 입에서 툭 그 말을 튀어 나왔다.
“그렇지! 자신의 여자가 바람 피는 걸 막기 위한 심리가 이 중국 땅에서 먹힐 지 모르겠지만 말야.”
“중국 땅에서 안 먹히면 어때? 중국에서 생산하고 한국에서 판매를 해도 되잖아.”
“지금 한국에서 누가 ‘코지’ 물건을 받아 주겠냐?”
“허긴.”
“아무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진국이 모는 차는 어느새 푸동 공항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차를 파킹시킨 후 두 사람은 공항 로비로 향했다.
“그럼, 메인 타이틀을 뭐라고 하지?”
“레드!”
봉수의 질문에 진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레드?”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진국이 봉수의 어깨를 쳤다.
“중국 사람들이 빨간 색을 좋아하긴 하지만……”
봉수는 너무 뻔한 공략이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