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9장 색정기 3

오늘의 쉼터 2015. 5. 5. 17:39

제9장 색정기 3 

 

 

1.

 

“기회라는 건 자주 오는 게 아닌데……”


진국이 말 뒤를 얼버무렸다.

 

봉수도 인간에게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느끼며 살고 있었다.

 

봉수는 지금 ‘코지’를 그만두어야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싸워 온 삶의 전우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할 말이 뭐야?”

 

진국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았다.

 

“그렇게 정색할 것 까지는 없어. 먼저 절대로 기분 나쁘게 듣지 않겠다고 약속해.”

 

“약속할게.”

 

“두 가지 할 얘기가 있는데 한 가지는 오늘 술집에서 얻은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고 나머지 하나는……”

 

봉수가 뜸을 들였다.

 

“우리 사이에 뜸 들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얼른 얘기해 봐.”

 

봉수는 한잔 더 술을 비운 후 진국 앞으로 허리를 숙이며 다가들었다.

 

“진국아, 너가 한국에서 돌아온 후 했던 말 있잖아.”

 

“뭐?”

 

진국이 눈을 크게 떴다. 진국은 물론 봉수까지 모두 술기운이 달아난 기분이었다.

 

“누군가 우리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말 말야.”

 

“그런데?”

 

진국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이리 저리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신해수라는 그 여자가 난 마음에 걸리더라.”

 

진국이 소파 등받이에 기댔던 등을 떼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우리 소식이 너를 통해서 신해수 한테 가고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야.

 

네 말 듣고 내가 다들 자는 시간에 마평수는 물론 병달이랑 공정혜 메일까지 싹 다 뒤져봤어.

 

마평수가 쓰는 메일은 아예 개점 휴업이고 병달이나 공정혜가 쓰는 메일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전부였어.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사람은 너랑 신해수씨 밖에 없거든.”

 

진국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그러니까 해수가 이 다 망해가는 ‘코지’의 스파이라는 거야, 뭐야?”

 

진국이 화를 냈다.

 

“그러니까 화 안 내겠다고 약속하라고 말했잖아.”

 

“그래도 이건 경우가 다르잖아.”

 

“진국아, 너도 누구보다 꼼꼼하고 매사 철저하다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누구보다 여자한테 약하잖아.

 

너도 잘 알고 나도 잘 알아. 그리고 신해수씨가 스파이라는 게 아니라

 

신해수씨와 네가 주고 받는 메일을 누군가 체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단 말야.”

 

“그렇게 돌려서 말 안해도 돼. 해수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봉수는 돌려 말하려고 했지만 진국이 봉수의 정곡을 찌르며 대꾸하는 바람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은 그런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냐.”

 

“회사 사람들도 있잖아.”

 

“너 돌아온 후로는 회사에도 형식적인 메일 이외에는 보낸 게 없거든.”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뭘 해놓은 게 있냐? 노출되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

 

“미리 염려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지 않느냐는 거지.”

 

“알았어.”

 


2.


진국은 거실에서 벗어나 콘도 밖으로 나가버렸다.

 

봉수는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레 겁 먹고

 

경계를 한 건데 너무 지나치게 비약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제길!”

 

봉수는 소파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신해수와 진국이 결혼할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 여자가 ‘코지’에서 뭐하러 정보를 빼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일들이 석연치 않았다.

 

강 이사에게 당했을 때만 해도 오로지 그와 애란

 

그렇게 둘이 정보를 빼내 ‘비라’에 넘기는 바람에

 

중국 란제리 패션쇼가 엉망이 된 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할 일이 없어 지난 일들을 점검하다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던 것이다.

 

지난 해 10월 무렵 가이아의 자회사인 ‘가이아 마트’가 상해에 오픈을 했다.

 

가이아 백화점에는 ‘코지’의 하와이안 시리즈가 꾸준히 납품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가이아 마트’와도 중국 진출 브랜드에 대해서도 계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판단을 했었는데 전혀 말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진국은 아는 지 모르겠지만 ‘가이아’ 쪽에서도 더 이상 ‘코지’의 제품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박춘만으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더욱이 ‘가이아’에 납품했던 하와이안 시리즈는 상해에 오픈한

 

‘가이아 마트’에는 진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신해수 혼자의 힘만으로 ‘코지’의 ‘가이아 마트’ 진출을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저간의 사정쯤은 충분히 알려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신해수는 구매담당 실장이었다.

 

봉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진국이 그런 사실을 일체 몰랐다는 게 이상했다.

 

“그럼 진국이가?”

 

봉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놀라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진국의 입장에서는 신해수의 입장을 배려해 ‘가이아’와 ‘코지’와의

 

관계된 일에 대해 일체 묻거나 청탁 따위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봉수는 신해수가 마음에 걸렸다.

 

봉수는 콘도 밖을 살핀 후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에 접속을 한 뒤 신수정에게 메일을 보냈다.

 

오랫동안 망설이던 일이었다.

 

‘……신해수, 가이아 백화점 구매 담당 실장. 전반적인 조사를 부탁함.’

 

봉수는 메일을 보낸 뒤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았다.

 

진국은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신수정이나 신해수나 둘 다 신씨구나.

 

내가 괜한 헛짓거리나 하는 게 아닌 지 모르겠다.’

 

진국이 문을 왈칵 열고 들어왔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 네 말 심각하게 생각해볼게.”

 

“심각하게 생각해 보라고 한 말은 아냐. 서로 조심하자는 거지.”

 

봉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면 손사래를 쳤다.

 

진국까지 의심했던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나 먼저 잔다. 내일 아침 10시에 푸동 공항으로 나가야 하는 거 잊지 마라.”

 

“알았어. 기분 상했으면 잊어버려라.”

 

“기분 상할 게 뭐 있겠냐. 조심하자는 건데.”

 

진국은 방으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직도 기분이 상해 있다는 증거였다.

 

봉수가 보기에 진국은 분명 대범한 놈이었다.

 

그런데 어느 땐 속좁은 노랭이처럼 굴 때도 간혹 있었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

 

봉수가 술잔을 들고 주방의 개수대로 향할 때 이가성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3.


“아직 안 잤어요?”


“술을 어설프게 마셨더니 잠이 안 와서요.”

 

봉수는 주방 쪽으로 걸어오는 이가성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럿이 있을 때에도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생활했던 여자라

 

그녀의 옷차림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가성은 흰색 반팔 셔츠 한 장만을 걸치고 있었다.

 

브래지어도 하지 않았고 아랫도리 부근에는 거뭇거뭇한 색깔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었다.

 

팬티도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호색한’에서 홀딱 벗은 경험까지 있던 터라

 

아예 다 내놓고 살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이가성이 봉수 뒤로 바짝 다가왔다.

 

“술 드셨어요?”

 

풋풋한 복숭아 냄새가 봉수의 등뒤에서 풍겼다.

 

“저도 잠이 잘 안 와서.”

 

“그럼, 우리 한잔 더 할까요? 한국 소주 정말 좋던데……”

 

“뭐, 그럽시다.”

 

봉수는 냉장고에 집어넣으려던 소주와 잔을 다시 준비했다.

 

그리고 고성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말린 오징어와 마요네즈도

 

함께 준비해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사람은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의심하게 되는 건데. 내가 괜한 짓을 한 모양이다.’

 

봉수는 소파에 앉으며 진국에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코지’가 패션쇼를 실패한 것은 어디까지나 강 이사와 애란의 배신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그들이 정보를 빼내는 데에 진국의 약혼자가 된 신해수가 무슨 역할을 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봉수는 신해수를 생각하면 할수록 왜 그런지 자꾸 미심쩍었다.

 

‘괜한 노파심일까.’

 

봉수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이가성이 봉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녀가 술잔에 술을 따랐다.

 

여럿이 있을 때는 그녀가 섹시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옷차림의 이가성과 단 둘이 마주 앉아 있다보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봉수는 이가성을 빤히 쳐다보고 있기가 민망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방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고 오로지 거실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평수가 가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방밖으로 흘러나왔다.

 

“박 팀장님, 박 팀장님!”

 

이가성이 술잔을 들고 봉수를 불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우리 건배해요.”

 

봉수도 서둘러 술잔을 들고 그녀의 잔에 부딪혔다.

 

술잔 속의 술이 흔들렸다.

 

이가성이 왼쪽 다리를 들고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후 술잔의 술을 비웠다.

 

봉수는 찔끔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가성이 다리를 올리는 바람에 그녀의 검은 숲이 눈에 들어온 때문이었다.

 

“가성씨는 고향이 어딥니까?”

 

봉수는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서둘러 질문을 했다.

 

이가성이 소파에서 일어나자 봉수는 긴장했다.

 

그녀는 봉수의 곁에 와 철썩 앉았다.

 

그녀의 가슴에 달라붙어 흔들리는 젖가슴이 느껴졌다.

 

봉수는 그대로 얼어버린 듯했다.

 

봉수는 왕조선이나 이가성이 너무 개방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킬 지도 몰랐다.

 

자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병달이나 마평수 그리고 진국 역시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었다.

 

이가성은 자신의 잔과 봉수의 잔에 술을 채웠다.

 

‘호색한’에서 마신 술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4.


“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셨죠?”


봉수는 언젠가 그녀가 고향에 대해 말한 기억이 났다.

 

하지만 관심있게 듣지 않아 까마득했다.

 

“미안해요. 들은 거 같은데.”

 

“원래 그렇죠, 뭘. 조선이는 북경이고 난 난징이에요.”

 

“그럼 여기서 가깝네요.”

 

봉수는 대꾸를 하다가 그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그녀는 창 밖의 어둔 바다를 내다보고 있었다.

 

“가깝죠. 우리 집에서도 바다가 보여요.”

 

봉수는 그제야 이가성이 자신의 곁으로 와서 앉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괜히 긴장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박 팀장님, 난징 학살이라는 얘기 들어 보셨어요?”

 

이가성이 느닷없는 말을 꺼냈다.

 

“난징대학살이라고 하지 않나요?”

 

“맞아요.”

 

이가성이 고개를 봉수 쪽으로 홱 돌렸다.

 

봉수는 그녀가 너무 가까이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안도 그 학살의 피해자예요.

 

일본인들은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말이에요.

 

우리 할머니는 말이에요.

 

그때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떨어요.

 

그때 가족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할머니 뿐이랬어요.

 

지금 난징은 여느 도시처럼 변화하고 있어요.

 

할머니는 그게 슬프대요.

 

예전의 아픈 역사를 요즘 사람들이 자꾸 잊어가는 게 슬프대요.

 

일본군인들이 목베기 시합 삼아 중국인들을 죽이기도 했고

 

임산부 배를 칼로 가르고 태아인 아이를 꺼내 들고 웃고 그랬대요.

 

할아버지가 독립 운동하다가 난징에 정착을 했는데 대학살이 끝난 후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만났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태어났고 그리고 내가 태어났죠.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자전거 타고 행상을 나가다가 벤츠 차에 치어 돌아가셨죠.”

 

봉수는 괜히 고향 이야기를 물었다고 생각했다.

 

이가성이 자신의 뿌리와 과거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히 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괜히 물었군요.”

 

“그래서 저는 꼭 성공을 해야만 해요.

 

엄마는 나를 무척 귀여워했어요.

 

언젠가 유명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하곤 했죠.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꼭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엄마 무덤에 꽃을 가져다 달라고 하셨어요.”

 

이가성이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반팔 셔츠가 위로 조금 올라가며 아랫도리가 보일락말락했다.

 

봉수는 못 본 척 눈길을 뗐다.

 

봉수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아픈 과거를 듣고 있는 와중에 그녀의 몸이나 감상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징 사람들 그런 아픔 하나 쯤은 다 가지고 있어요.

 

저도 그 아픔이나 슬픔이 내 몸에 흐르고 있다는 걸 가끔 느껴요.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연기가 전공이에요.

 

유명한 배우가 되어서 꼭 그 시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주연을 하고 싶어요.

 

저는 글쓰는 재주는 없지만 제 이야기를 듣고 글을 써 줄 사람을 만날 순 있지 않겠어요?”

 

그녀의 꿈이 구체적이고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봉수는 순간 한국에 두고 온 자신의 그림들을 떠올려 보았다.

 

사는 게 말처럼 이루어지면 무엇인들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이가성은 젊었다.

 

봉수는 그녀의 순수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5.


“그런데 제겐 지금이 그 첫 번째 기회라고 생각해요.”


봉수가 슬그머니 이가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번 프로젝트가 잘 되어야 우리도 잘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이가성은 순진하고 착했다.

 

봉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코지’의 모델이 되어서 유명해질 수 있을까 싶었다.

 

봉수는 사실을 말해야하지 않을까 갈등을 일었다.

 

“가성씨, 미안하지만 우리는 정말 작은 회사예요.

 

우리 분위기 봐서 알겠지만 한국에 있는 본사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구요.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를 통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봉수는 말을 끝내고 술을 마셨다.

 

‘호색한’에서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었다지만 아직은 안개와 같은 생각들뿐이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들어온 황금망사 속옷의 여자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각해보니 진국은 자신이 생각했던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려다가 말고

 

방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모든 게 봉수 자신의 불찰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신해수를 의심한 때문이었다.

 

이런 판국이라 자금 지원이 된다고 해도 ‘코지’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팀장님, 제가 여기 오려고 할 때 다른 영화사랑 텔레비전 제작사가 저를 캐스팅하려고 했어요.

 

물론 작은 역이고 비중있는 배역이 아니긴 했지만 제가 공부하는 학원에서는 대단한 경사였지요.

 

그런데 저는 그 제안을 뿌리치고 여기로 왔어요. 왠 줄 아세요?”

 

이가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봉수로서도 의외였다.

 

봉수는 고개를 저었다.

 

“호천수 회장님을 믿기 때문이에요.

 

호 회장님이 우리 학원에 오셔서 우리들 모르게 우리들을 관찰하셨대요.

 

그래서 제가 호 회장님에게 뽑힌 거구요.

 

그때 제가 이런 저런 상황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랬더니 선택은 나보고 하라고 그러셨어요.

 

하지만 당신의 안목을 믿는다면 따라오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지금 이 초라한 콘도에서 일하는 ‘코지’ 사람들이 머잖아 중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킬 거라고 믿어요.

 

그건 호 회장님도 그렇구요.”

 

봉수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호천수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코지’의 중국팀 직원들을 신뢰한단 말인가.

 

“이 오징어 맛있네요.”

 

이가성이 오징어를 찢어 마요네즈를 찍었다.

 

그런 후 봉수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 고향에서 나는 오징업니다. 그곳이 오징어가 유명하거든요.”

 

이가성이 몸을 봉수 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셔츠의 목 라운드가 늘어졌다.

 

라운드 안으로 늘 보았던 이가성의 젖가슴이 보였다.

 

내놓고 볼 때와 달리 은밀하게 보고 있자니 묘하게 흥분이 되었다.

 

“남자들은 오랫동안 그걸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요?”

 

이가성이 뚱딴지 같은 말을 했다.

 

“조선이나 저는 박 팀장님이나 조 팀장님이 스트레스를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도 잘 될 테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가성이 반팔 셔츠를 훌렁 벗어버렸다.

 

아름다운 나신이 봉수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가성이 모델이 아니라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봉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가성이 덩달아 일어났다.

 

긴 다리와 곱슬한 체모가 봉수의 눈에 들어왔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길이 저절로 이가성의 아랫도리 쪽으로 향했다.

 

“섹스를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섹스를 못해도 다 해결하는 방법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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