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9장 색정기 2

오늘의 쉼터 2015. 5. 5. 17:17

제9장 색정기 2 

 

 

1.

 

진국과 마평수 그리고 봉수가 남자 탈의실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가성과 왕조선 그리고 공정혜가 나왔다.

 

세 여자는 보관함에 각자의 옷을 맡기고 번호표를 받아 들었다.

 

세 여자는 팬티와 브래지어를 차림이었다.

 

이가성과 왕조선의 몸이야 늘 보아왔던 터라 세 남자의 눈길은 공정혜에게로 쏠렸다.

 

가슴이 약간 작은 듯하지만 군살 없이 잘 빠진 몸매였다.


“선배님들 아직도 옷 안 갈아입었어요?”

 

공정혜는 양손을 허리에 짚으며 당당하게 몸을 내밀며 말했다.

 

“가, 갈아 입어야죠.”

 

마평수가 얼른 탈의실로 들어갔다.

 

진국과 봉수도 덩달아 그의 뒤를 따랐다.

 

남자 탈의실로 들어가 보니 사방이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주 난감한 동네구만.”

 

마평수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옷을 갈아입기가 쑥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이런 걸 어떻게 입으라고.”

 

속옷을 빌려주는 곳에서 여자가 주는 대로 받아 들고 들어온

 

마평수가 속옷을 펼쳐 보이며 투덜거렸다.

 

엉덩이가 모두 드러나도록 되어 있는 옷이었다.

 

진국과 봉수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선배님들 것도 만만치 않을 걸요.”

 

진국이 들어 보인 속옷은 사각이었지만 아랫도리 부분이

 

툭 튀어나온 형태의 속옷이었고 봉수의 속옷은 망사였다.

 

겨우 아랫도리 부분만 진하게 처리가 되었지만 물건이

 

잘못 놓여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노출될 그런 속옷이었다.

 

“가성이랑 조선이는 이런 델 어떻게 알고 있었대.”

 

마냥 탈의실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봉수는 옷을 갈아입으며 투덜댔다.

 

여기까지 들어온 마당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세 남자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옷을 보관함에 맡기고 번호표를 받았다.

 

번호표는 사우나의 열쇠처럼 팔에 찰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남자가 탈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가보니 세 여자와 병달이 속옷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병달은 끈으로만 이루어진 속옷이었다.

 

아랫도리만 간신히 가린 형태였다.

 

세 남자가 병달의 속옷을 훑어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이고, 선배님들도 대단한데요. 그런 속옷을 다 소화하실 정도니 말입니다.”

 

병달은 악을 쓰듯 말했다.

 

그렇지 않고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 음악이 컸다.

 

병달의 말에 세 여자가 세 남자를 은근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봉수는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진국과 마평수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술은?”

 

봉수는 술에라도 취해야 자연스러워질 것 같아 병달에게 물었다.

 

“여긴 약한 술은 없대요. 고량주 아니면 데낄라라고 하는데요.”

 

“중국에 왔으니 고량주를 먹어야지.”

 

“데낄라 주문했는데요.

 

이가성씨랑 왕조선씨랑 고량주만 마셨다고 오늘은 데낄라 먹고 싶다고 해서요.”

 

“뭐 괜찮겠지.”

 

봉수와 병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낄라가 병째로 나왔다.

 

레몬과 소금 그리고 돌돌 말린 베이컨과 과일이 곁들여진 안주가 같이 나왔다.

 

“선배님들 얼른 한 잔 해요. 그래야 얼굴 빨개진 게 돌아오죠.”

 

공정혜는 장난스럽게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말했다.

 

공정혜는 남자들의 눈길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공정혜가 잔에 가득가득 술을 채웠다.

 

“에라 모르겠다.”

 

마평수가 잔을 들고 홀짝 술을 비웠다.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2.


봉수도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곁에 앉아 있던 이가성이 자신의 손 등 위에 소금을 얹어 봉수의 입으로 가져갔다.

 

봉수는 주변의 눈치를 봤다.


“선배, 오늘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내요. 내 눈치 볼 거 없어요.

 

그리고 가성이한테 미안하면 선배도 해주면 되잖아요.”

 

공정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봉수는 혀 바닥으로 이가성의 손등을 핥았다.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진국도 술잔을 털어 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정혜가 손등에 소금을 올려 진국에게 내밀었다.

 

진국은 망설이지 않고 공정혜의 손등을 핥았다.

 

“생일 맞은 사람은 난데, 나는 그냥 마시게 해 주고 말야.”

 

병달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 여자가 각자의 손등에 소금을 올려놓고 병달에게 내밀었다.

 

병달은 연거푸 세 잔을 마시고 여자들의 손등을 핥았다.

 

봉수는 데낄라가 세 잔쯤 뱃속으로 들어가자

 

저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술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도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어깨를 움츠리고 앉아 있던 마평수도 어깨를 활짝 펴고

 

약간 늘어진 배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소파 등받이에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우리 나가요.”

 

여자들이 남자들을 손을 잡아끌었다.

 

중앙 무대로 나가 춤을 추자는 것이었다.

 

속옷 차림으로 앉아 술을 마시는 것도 난감한 판국에 춤까지 추라니.

 

봉수는 손을 내저었다.

 

“선배, 늙은이 티 낼 거예요?”

 

공정혜가 봉수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앉아 서도 볼 건 다 보는데 뭘.”

 

봉수는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이가성과 왕조선까지 합세를 해서 봉수를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공정혜와 이가성의 가슴이 봉수의 어깨에 닿기도 했다.

 

“그대로 눌러 앉아 있으면 확 덮칠 거예요.”

 

술기운이 도는 지 공정혜가 거침없이 말했다.

 

“나나 덮치지.”

 

병달의 투덜거리는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세 여자가 끌고 남자들은 앉으려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일곱 사람은 무대 중앙에 서게 되었다.

 

무대는 광란의 몸짓 그 자체였다.

 

남자건 여자건 땀을 흘려 몸이 번들거렸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여자들의 가슴은 음악에 맞추어 격렬하게 흔들렸다.

 

어떤 여자는 ‘T’ 팬티를 입고 춤을 추는데 여성의 중심이 몸을 비틀 때마다

 

보일 듯 말 듯 해 봉수는 물론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술기운에 폭발적인 음악까지 무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만들어갔다.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봉수는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며 홀 안을 둘러보았다.

 

손님들 중 여자들이 70%를 넘는 듯했다.

 

봉수는 진국과 마평수 그리고 병달을 훔쳐보았다.

 

그들은 각자 여자들의 몸과 속옷을 구경하느라

 

봉수가 훔쳐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건 이가성이나 왕조선 그리고 공정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잔 더하고 나와요.”

 

공정혜가 남자들을 몰아 테이블로 돌아갔다.

 

“코지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일곱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술을 들이켰다.

 

손등에 소금을 올려놓고 서로 엇갈려가며 입 쪽으로 가져다 주었다.

 


3.


봉수는 다시 무대로 나가는 일이 쑥스럽지 않았다.

 

술기운이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을 완전히 몰아갔다.

 

밤이 깊어질수록 무대는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봉수는 춤을 추면서 여자들이 입고 있는 팬티만 살폈다.


“누가 속옷 디자이너 아니랄까봐 그래요.”

 

공정혜가 봉수의 귀에 대고 말했다. 봉수의 눈길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놀기도 하고 취향도 보고 좋잖아.”

 

“하긴 나도 여기서 쓸만한 물건들 몇 개 봤어요. 여기 정말 기막힌 곳이죠?”

 

“그러게.”

 

봉수는 눈에 들어온 팬티는 머릿속에 기억하려고 애썼다.

 

‘골반에 걸치는 끈이 얇고 느낌은 새틴 같은 느낌이다,

 

앞은 꽉 조이는 반면에 항문 쪽은 헐렁한 스타일?

 

저것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엉덩이가 예쁜 여자들은 아무래도 T자 팬티가 제격이다.’

 

봉수는 그 동안 막혀 있던 물꼬가 터진 듯한 느낌이었다.

 

“팀장님, 너무 덥죠?”

 

봉수 곁에서 격렬하게 몸을 흔들고 있던 이가성이 봉수에게 물었다.

 

“술도 마셨고 춤까지 춰대니 그러겠지.”

 

“그렇죠?”

 

이가성은 스스럼없이 브래지어를 벗었다.

 

왕조선도 덩달아 브래지어를 벗어버렸다.

 

공정혜도 두 여자의 눈치를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역시 브래지어를 벗어버렸다.

 

진국과 마평수 병달 그리고 봉수의 눈이 일제히 공정혜의 가슴으로 쏠렸다.

 

가슴은 손안에 들어와 약간 넘칠만한 크기였다.

 

처지지 않았고 조명 탓인지 유두는 매우 붉어 보였다.

 

게다가 그녀의 붉은 유두는 도발적으로 톡 튀어 올라와 있었다.

 

공정혜는 남자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흔들어댔다.

 

병달은 그녀의 가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봉수는 온 몸이 달아올라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방이 광란의 모습이었다.

 

홀의 은밀하고 구석진 곳에는 서로 몸을 비벼대거나

 

아예 달라붙어 섹스를 하는 듯한 커플들도 보였다.

 

감시와 통제가 심했던 사회주의 국가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홀은 여자들이 내뿜은 열기과 남자들이 발산한 열기로 폭발할 듯했다.

 

그런데 한 순간 음악이 꺼졌다.

 

갑자기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뮤직박스를 쳐다보았다.

 

“우리 호색한의 하이라이트! 블랙 타임!”

 

DJ가 괴성을 지르자 춤을 추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봉수는 어리둥절해 곁에 서 있던 이가성의 팔을 슬며시 잡아끌어 당겼다.

 

그녀가 비틀거리는 바람에 땀으로 젖어 있던 그녀의 젖가슴이 봉수의 갈비뼈 부근에 와 닿았다.

 

물컹 기분 좋은 느낌이 봉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블랙 타임이 뭐야?”

 

진국과 마평수도 이가성을 쳐다보았다.

 

“조금 있으면 전등이 모두 나갈 거거든요. 그때 모두 홀딱 벗는 거예요.”

 

“정말?”

 

“정말이에요.”

 

“매일 이래?”

 

“아뇨. 어쩌다 한번! DJ 기분 내킬 때면 하는 거예요. 홀 분위기 봐서. 일단 들어보세요.”

 

이가성이 손으로 뮤직 박스를 가리켰다.

 


4.


"여기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불이 꺼지면 하나도 남김없이 벗어야 합니다.

 

잠깐 다시 불이 들어옵니다.

 

그때 옷을 입고 계신 분들은 호색한의 규칙상 오늘 술값을 모두 내야하는 겁니다.

 

아셨죠? 블랙 타임!”


마음의 준비도 못한 상황인데 느닷없이 불이 꺼져버렸다.

 

눈앞이 깜깜했다.

 

그냥 장난으로 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봉수는 곁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슥슥거리며 하나 남은 속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마평수와 진국도 팬티를 벗고 있는 게 느껴졌다.

 

봉수는 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출장 경비가 바닥인 지금,

 

괜한 일로 엉뚱한 봉변을 당할 수는 없다는 심정이 역력했다.

 

‘설마 정말로 술값을 다 내라고 하겠어.’

 

봉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슬금슬금 속옷을 벗었다.

 

까만 어둠 속에서 ‘I Might Be Crying’ 이라는 타니타 티카란의 노래가 깔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음악이 끝나면 불이 켜집니다.

 

아직도 마지막 남은 옷을 벗지 못하신 분은 없으시겠죠.

 

음악이 길다면 그 동안 맘껏 이 은밀함을 즐기십시오.”

 

음악이 흐르는 사이 DJ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음악이 끝나자 마자 한꺼번에 홀 안의 불이 밝혀졌다.

 

눈이 부셨다.

 

봉수는 창피함도 잊은 채 먼저 일행을 둘러보았다.

 

이가성이나 왕조선은 물론 공정혜까지 모두 속옷을 벗은 모습이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공정혜는 도발적인 자세로 중심을 손으로 가리지도 않은 채 서서 빤히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숲은 곱슬곱슬했다.

 

봉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나신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이가성과 왕조선 그리고 공정혜의 눈이 어느 순간 봉수의 아랫도리로 꽂혀 있었다.

 

진국과 병달의 눈도 봉수에게로 향했다.

 

봉수의 물건은 훌륭했다.

 

주변의 남자들과는 월등한 차이를 보였다.

 

여자들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났다.

 

봉수는 슬그머니 몸을 틀었다.

 

몸을 트는 대로 여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보지마!”

 

“선배님도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해요.”

 

공정혜가 깔깔거렸다.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까지 봉수의 물건을 쳐다보게 되었다.

 

“호색한의 팬이시군요. 오늘도 성공했습니다.

 

모든 분께 비루 한병 씩 무료로 돌리겠습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비릿한 살내음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역하지 않았다.

 

“자. 다시 옷을 입겠습니다.”

 

불이 꺼졌다.

 

봉수는 서둘러 팬티를 입었다.

 

낯바닥이 뜨거웠다. 다시 불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대로 벗은 채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호색한은 ‘나체바’인 셈이었다.

 

봉수와 일행은 자리로 돌아왔다.

 

공정혜가 은근한 눈으로 봉수를 쳐다보았다.

 

“선배 정말 대단해요.”

 

공정혜가 노골적으로 말했다.

 

술기운 탓일 터였다.

 

“아냐, 병달이랑 진국이도 쓸만한테 뭘. 마평수 선배도 훌륭하고.”

 

“우리끼리 이런 얘기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평수가 중재에 나서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봉수의 물건을 두고 말할 기세였다.

 

봉수와 진국이 눈 둘 곳을 몰라 고개를 돌릴 때 동시에 탈의실에서 나오는 한 여자를 보았다.

 


5.


진국이 먼저 입을 벌렸고 봉수 역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탈의실에서 막 나온 여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채였다.

 

포르노 잡지에서나 볼 법한 풍성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가슴 때문에 눈이 번쩍 뜨인 게 아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속옷이 두 남자의 눈길을 잡았다.

 

바탕은 얇은 망사로 되어 있었고 점점이 황금빛의 점이 박혀 있었다.

 

중요한 중심 부위를 강하게 처리하지 않아 점점이 박힌 부분을 제외하고는 안이 훤히 보였다.

 

홀딱 벗고 있는 여자들도 있는 판국에 대수일까 싶지만 그녀의 속옷은 홀딱 벗고 있는

 

여자들의 맨 몸보다 더 섹시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진국과 봉수가 동시에 쳐다보았다.

 

봉수는 진국의 눈빛이 빛나는 걸 보았다.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갑시다. 내일 또 힘차게 일해야죠.”

 

마평수가 자리를 정리했다.

 

세 여자는 아쉬운 듯 일어났고 네 남자는 부리나케 일어났다.

 

그래도 모두들 몽롱한 무언가를 얻은 얼굴들이었다.

 

이제 그 몽롱한 무언가를 구체화시키는 일이 남아 있었다.

 

반면 진국과 봉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짓는 미소의 의미는 남달랐다.

 

상해의 깊은 밤거리는 상쾌했다.

 

일행은 각자의 몽상에 빠진 듯 말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이가성과 왕조선이 한방에서 잠을 잤다.

 

공정혜가 한 방 그리고 마평수와 병달이 한 방을 썼다.

 

남은 방 하나는 진국과 봉수의 몫이었다.

 

다섯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 뒤 진국과 봉수는 콘도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봉수는 냉장고를 뒤져 국산 팩 소주와 라면을 꺼내왔다.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술을 마셔도 말이지,

 

이렇게 소주에다가 우리 나라 라면을 안주 삼아 먹는 술맛만은 못한 거 같아.”

 

봉수는 소주의 뚜껑을 열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한국에서 요즘 나오는 소주는 21도다.”

 

“그렇게 약해졌냐? 이건 23도일 거야.”

 

“먹기는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독한 향수 같은 게 빠진 느낌이야.”

 

“그야 우리가 예전의 소주에 중독이 되어서 그런 거겠지.”

 

“그런가. 그나저나 나한테 할 말 있다며?”

 

“너도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냐?”

 

진국이 배갈이나 따라 마시던 술잔에 채운 술을 비웠다.

 

“가성이랑 조선이는 그런 술집을 어떻게 알았대?”

 

“나도 오늘 처음 가보는 거야.

 

서울에서 장사하면 죽이겠다.

 

‘코지’ 망하믄 서울에서 ‘호색한’ 분점이나 해야겠다.”

 

“그나저나 주해원이 오면 어디서 재우냐?”

 

“우리가 호텔 잡아 줄 능력이 없다는 건 더 잘 알 거 아냐.

 

그러니까 알아서 호텔 잡아서 자겠지.

 

여기서 생활하겠다면 뭐 우리가 거실에서 생활하면 되지 뭐.”

 

“우리 일 진행되는 거 보러 오는 게 뻔한데……”

 

“주해원이 오면 우리 호색한에 한번 더 가볼까?”

 

봉수가 잔을 들고 홀짝 술을 비웠다.

 

“실없긴. 그런데 너 년말에 전시회 하기로 했던 거 어떻게 된 거냐?”

 

“어쩔 수 없지, 뭐. 강 이사 마누라가 하는 화랑이라 게름칙하기도 하고 말야.

 

그래도 계약이니까 언젠가는 전시회를 열긴 열어야 돼.”

 

“여기 일 잡히면 그때 여기서라도 작업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렇게만 되면 좋겠지.”

 

봉수는 ‘코지’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어쩌면 일생 일대의 기회를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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