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M.AURELIUS 暝想錄

해설 < 종결 >

오늘의 쉼터 2015. 5. 3. 10:46

해설

 

로마 황제의 신분으로 권력보다는 철학을 사랑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생에 대한 담담한 태도로 옷깃을 여미고 숙독하게 하는 명저이다.

삶의 내용과 가장 유리되지 않았던 철학이 로마의 스토아 철학이라고 흔히 말하거니와

명상록에는 신기루 같은 사변도 없고 틀에 마춘 것 같은 논리도 없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성실히 반성하고 또한 주위의 사물을 허심탄회하게 성찰하는

진지한 생활인의 사색이 아무런 수식없이 펼처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1천 6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펴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의 생활의

모습을 역력히 볼 수 있고 우리의 삶의 슬기를 터득할 수 있다.

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스토아 철학 일반에 대해 약간 알아둘 필요가 있다.

 

 

1. 스토아 철학에 대하여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는 제론(기원전336~264)이다.

그는 철학과 논리학을 공부하고 후에 채색된 스토아에서 반공개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제론 학파라고 일컬어졌으나 후에 강의 장소에 따라 스토아 학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후 제자 클레안테스(기원전 331~232)가 스승을 계승하고 다시 크처뤼시포스(기원전 282~206)가

계승한다.

스토아 철학은 크뤼시포스 때문에 학문으로서 남게 되었다.

이상 세 사람을 초기 스토아 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중기 스토아에 속하는 사람들은 파나이티오스(기원전 185~110)와 그의 제자

포세이도니오스(기원전135~50) 등이며 이들은 모두 로마시대 사람으로

로마의 정치가와 친교가 있던 사람들이다.

앞의 제논이나 크뤼시토스는 페니키아인이였으나 타나이티오스와포세이도니오스는

그리스계의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친숙해서

스토아 철학을 상당히 플라톤화 아리스토텔레스화 시켰다.

후기 스토아 학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스토아 철학은 정치가(세네카) 노예(에픽테토스) 황제 아우렐리우스 등

어느 누구에게나 알맞는 철학이었던 것 같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학문을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 으로 삼분한다.

셋 중 어느 것을 중요시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를 계란에 비유하여 논리학은 껍질 윤리학을 흰지 자연학을 노란자라고 본다.

그러나 대체로 윤리학을 중요시하고 있다.

곧 우리가 어디에서 안심입명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윤리의 문제를 궁극적 목적으로 보고

이를 위해 이 우주가 어떤 것인가를 연구하는 자연학이 필요하다고 하며 자연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논리학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자연학은 흔히 유물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물론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로고스로 일관되어 있다.

이 로고스는 물질이어서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일원론이다.

이 실제가  불→공기→물→땅으로 변하고 이러한 것의 혼합에 의해 여러가지가 생긴다.

따라서 만물은 정신이든 덕이든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하나의 실제가 변한 것이다.

그리고 만물은 마지막으로 다시 실제로 돌아가고 거기서 세로운 것으로 다시 만들어 진다.

이러한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오랜 시기에 걸처 주기적으로 되풀이 된다.

모든 것이 원래의 실재로 돌아가는 것을 세계 연소라고 한다.

이 연소에 의해 만물은 하나의 불 같은 것이 되고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과정을 거처

전과 동일한 만물이 생기고 이것은 다시 원래의 실재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영원히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스토아에서는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흔히 운명론

또는 숙명론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하므로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주 전체. 곧 신에 의해 결정되었으므로 섭리이기도 하다.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섭리에 따를 뿐 다른 길은 없다.

자진해서 섭리에 따르면 사명을 완수하고 운명을 사랑한 것이 된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자연(Dhysis)이라는 말이 잘 쓰인다.

보통 자연이라고 하면 산과 강과 대지와 짐승과 초목 등을 포함시켜서 생각하지만

소클라테스 이전의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535~475)의 계통을 잇는 스토아 학파에서는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오고 다시 거기로 돌아가는 근원적인 것 또는 능산적 자연을 의미한다.

또한 좁은 의미에서는 인간의 자연이라든가 포도의 자연이고 하는 경우처럼 사물의

본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광의의 자연은 종교적으로 말하는 신과 같은 것으로 그것은 우주 로고스 운명과 동일한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도 ---자연에 따른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것은 신 또는 우주의 질서에 따르고 또는 그것에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에 따른다는 것은 협의로는 각각의 본성에 따르고 그것을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예로 든다면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는 것 곧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이성을 따르고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 곧 광의의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간의 이성에 따르고 자연의 본성에 따르는 것이다.

자연이 대우주라면 인간은 그 일부분인 소우주이다.

이러한 스토아의 사상이 코스모폴리타니즘 세계종교 세계법 등의 사상적 모태임을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

육체라는 점에서는 동물과 공통되고 영혼이라는 점에서는 신과 공통된다.

스토아에는 영혼은 혈액에서 증발된 것이라고 하는 견해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우주의 로고스의 한 조각이 인간에게 깃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성이 깃들어 있는 이상 인간은 다 같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별 계급 피부 색깔 국적을 불문하고 동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스토아의 코스모폴리즘이 성립한다.

그런데 이성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지만 그 작용에는 여러가지 측면이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인식론적으로는 이론이성 도덕적으로는 실천이성으로 가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가끔 이성을 헤에게모니콘(지도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종교적 윤리적 색채가 농후한 후기 스토아에서는 본심 또는 양심이라고 하느 것이다.

이것은 온갖 욕망을 통제하고 지도하는 능력으로 스토아 철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외계는 모두 결정되어 있어서 불변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숙면적인 필연이다.

따라서 스토아 학파에서는 필연을 필연으로 인정하고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뿐

외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외계는 우리의 의지 밖에 있었서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 우리들의 생각 뿐이다.

그러나 일단 철저하게 마음과 생각을 바꾸면 외계가 변한 것과 동일한 대전환이 이루어 진다.

이러한 마음의 전환은 행복을 위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죽음을 육체와 영혼이 분리라고 생각한다.

혹은 원소에서 해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나 결국은 원래의 것으로 복귀를 의미한다.

따라서 죽음은 조금도 무서운 것이 아니다.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념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공상을 제거한다면 죽음은 자연의 작용이다.

해체를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이 무서운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자연의 필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러한 전환을 이루면 죽음은 고통스럽거나 무서운 것이아니라

평범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스토아 철학은 불멸을 말하지 않는다.

영혼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원소로 해체된다고 한다.

한편 스토아에서는 자살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죽음을 자연의 필연적 과정으로 보는 스토아 철학으로서는 이상할 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는 것이 신의 명령이라면 죽는 것도 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는 것이다.

그러나 예컨데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완수하고 육체적으로 남의 폐를 끼칠만큼

노쇠했거나 병에 걸리면 이 세상에서 떠나가라는 신의 신호로 알고 자살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자살은 제멋대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야 말로

우주의 질서 신의 뜻에 합치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죽는 것이다.

또한 아타테이아 또는 아타락시아라는 말을 스토아 철학에서는 쓰고 있는데 .

전자는 부동심 무정념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평정이라는 뜻이다.

외계의 사물은 본래 우주의 질서에 따라 변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외물을 뒤쫓고 있는 한 대해의 조각배처럼 번농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마음에 아무런 욕망도 갖지 않고 어떠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내 마음의 평화는 교란되지 않는다.

이 마음의 평화가 바로 인간의 행복인 것이다.

원래 악이나 선은 외계의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토아 철학은 난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안심입명의 철학.

현실 도피의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믿바닥에 깔린 달관은 결코 소흘히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스토아 철학을 간단하게 설명했거니와 이러한 스토아 철학을 배경으로 해서

명상록을 읽으면 그 참뜻을 좀더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울렐리우스의 생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는

원래의 이름이 마르쿠스 아니우스 웨르스 갈틸리우스 세웨르스로

서기 121년 4월 26일. 아니우스 웨르스와 도미티아 루키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니우스 웨르스는 로마의 두번째 왕인 누마(재위: 기원전 715~673)의 후손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집정관의 지위에 있었으나 마르쿠스가 아홉살 때 죽었다.

어머니는 로마의 유복한 여자 상속인의 한 사람으로 두 번이나 집정관을 지낸

루키우스 카틸리우스 세웨르스의 손녀였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 마르쿠스는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도 역시 집정과 또는 원로였던 사람이 였다.

마르쿠스는 어릴적부터하도리아누스 황제의 귀여움을 받았다.

성인식을 올린후마르쿠스는 하도리아누스의 명령으로 당시 집정관이였던

명문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콘모도우스의 딸 케이오니아 파비아와 약혼을 했다.

하도리아누스 황제가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한 안토니우스 피우스는

마르쿠스와 파비아의 약혼을 파기하고 자기딸인 아니아 가델리아 파우스티나와 약혼시키고

이듬해 140년에는 재정관. 다음해에는 집정관으로 임명하고 145년에는 결혼을 시켰다.

마르쿠스는 열살 때부터 스토아적 교양을 쌓기 시작했고 열한살 때에는 짚으로 만든

침대에서 모피를 사용하여 간소한 생활을 했다.

그의 신체는 섬세하고 건강하지 않았으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스포츠에 뛰어나 복싱 레슬링 달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가정생활을 사랑하고 아내나 자식을 사랑했으며 어머니를 사랑했다.

어릴 적에는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의 젊은 시대의 경건함을 중년에 이르러서는 깊은 종교적 정열이 됫거니와

이것은 어머니의 감화 때문이었다.

그와 아내 파우스티나 사이에는 13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쌍둥이도 몇 쌍 있었다.

아내는 정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죽음이 가까와지자 요인들을 불러놓고 마르쿠스를

정식으로 후계자로 지명했다.

161년 3월 7일 파우스 황제가 죽고 마르쿠스가 즉위했다.

황제로 즉위한 후의 마르쿠스의 생활은 다난했다.

몇 번의 전쟁을 치루었다.

그는 철학자가 지배하든가 지배자가 철학을 하든가 해야만 나라가 번영하다는

프라톤의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있었다.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의 철인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근본적인 사상은 어디까지나 스토아 철학이었고 스토아적 세계 시민 스토아적 박애였다.

그러나 로마는 대국이기는 했지만 한 나라임에는 틀림없었고 그는 현실적으로는 로마라는

한 나라의 왕이였다결국 스토아적인 것은 그의 이상 그의 위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번민하면서도 스토아적 정신에 바탕을 두고.

바르게 처신하고 간소한 생활을 했으며 공공의 일을 위해 사재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180년 마르쿠스 황제는 북방의 전투에서 돌아오는 중에 페스트에 걸려 엿세를 앓고

3월 17일 로마에서 먼 지금의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서와 사상---

마르쿠스의 저서로는 명상록이 남아 있는데 이 명상록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수기이다.

그밖에 연설 원로원에 전한 말 유언 명언 편지 등이 약간 남아있다.

명상록은 그가 정무를 보는 틈을 타서 또는 싸움터에서 틈을 내어 쓴 것으로 12권으로 되어있다.

각 권의 각 장은 모두 짤고 어느 것에나 체험이 스며 있다.

그러나 제1권을 제외하고는 개인적 기록은 아니다.

또한 12권으로 나누었어도 체계적인 것은 아니며 쓰다 보니까 12권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의 사상은 후기 스토아의 특색대로 매우 종교적이고 윤리적이다.

명상록을 읽어면 그가 자연계의 사물 하나하나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것을 예술품 못지 않게

훌륭하다고 찬양하면서도 그 기조는 애수어린 무상과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생성했다 소멸하기 마련이다.

장군도 의사도 부자도 황제도 생사를 초월했다는 철학자도 죽고 도시는 폐허가 되고 동상은 부서진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는 이러한운명 앞에서 체념하고 쫒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결국 그의 근본 사상도 마음이 전부라는 사상으로 집약되는 것이다.

내면으로 타고 들어 가라.--- 샘은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우주의 로고스의 분신이고 우주와 상통하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코스모폴리탄적 입장에서 박애와 인류애를 강조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토아 철학은 인간 중심의 사상이라는 일면을 갖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우 이 박애는 더욱 현저하다.

죄인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기독교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만 결코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받은 교육은 전적으로 그리스적이었고 스토아적이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교의 박애자였다. 

그의 인류애 박애는 기독교와는 근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사상은 플라톤과 차이가 있다.

플라톤에게는 인류애나 세계시민이나 박애의 사상은 없었다.

풀라톤으 단지 한 나라를 강하게 하고 잘 다스리는 것이 문제였지적을 사랑한다든가

박애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무사계급이 있고 따라서 국방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의 입장에서는 국방이나 군인은 있을 수 없다.

스토아 철학은 사해동포 세계시민을 강조하며 따라서 마르쿠스의 경우에는

적조차도 동포처럼 사랑하려는 일면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철하가 아우렐리우스는 적을 사랑하고 세계시민을 마할 수 있어도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국경을 지키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구정과 철학을 계모와 실모에 비교한 바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이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과 이상의 틈에 끼여 고뇌하는 인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우리는 명상록에서 이러한 그의육성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명상록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틈을 내어 쓴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가 철저하게 연구한 스토아 철학이 담겨 있고

또한 어릴 적부터 익힌 수사학의 솜씨도 만만치 않다.

비록 짧은 명언 같은 장으로 이루어지고 앞뒤의 체계가 정연하지는 않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진실이 넘처 흐르고 깊은 맛이 숨겨져 있다.

이책은 소리내어 읽고 닫아 버릴 책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의 배후까지도 읽어나가야 할 책이다.

철저한 자기 반성의 책이므로 독자도 고요한 마음으로 씹고 또 씹어 보아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책이다.

 

 

 

< 종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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