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장
1. 이성적 영혼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곧 영혼은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바꾸고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스스로 거두며 생애의 종말이 언제 닥치든 자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무용이나 연극 등은 중단되면 그 동작 전체가 불완전해 진다.
그러나 이성적 영혼은 이와는 달라서 어디서 중단되드라도 모든 부분이 자기에 맡겨진 역활을
완전히 수행하며 따라서 나는 내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또한 이성적 영혼은
전 우주와 우주를 둘러싼 공간을 내왕하며 그 형태를 고찰하고 무한한 시간 속으로 뻗쳐나가
만물의 주기적 쇄신을 탐구하고 파악한다.또한 이성적 영혼은 후대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은 아니고 또한 전대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본 것은 아니며 오히려 40세가 되고 조금이라도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는과거에 존재했고 또 미래에 존재하게 될 만물을 .
그 지배적인 제일성 때문에 다 본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이웃과 진리와 겸손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가장 존중하는 것----
이성적 영혼의 특성이며 동시에 법칙의 특성이다.
따라서 올바른 이성과 정의의 이법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2.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당신은 즐거운 노래나 댄스나 판크라티움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화음을 개별적 소리로 분해해 놓고 과연 이 소리들이 나를 매혹시킬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한다면 당신은 음악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 소리를 매혹적이라고 자인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
댄스의 경우에도 하나하나의 동작과 자세를 분리 시킨다면 마찬가지다.
판크라티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덕과 덕에 의한 행동을 무시하면 당신은 모든 일에 있어서 개별적 부분에 전념하게 되고
이러한 분해로 말미암아 모든 일을 경멸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이 원리를 당신의 전 생애에 적용하라.
3. 어느 순간에 육신에서 분리되어 소멸하거나 게 되드라도 이에 대한 각오를 갖춘
영혼은 얼마나 훌륭한가?
이러한 각오는 인간 자신의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며 기독교도처럼 단순히 순종함으로써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각오는 신중하고 품위 있는 판단에 의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비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므로써 형성된다.
4. 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는가?
만일 기여한 바가 있다면 나는 그 보상을 이미 받았다.
이 점을 항상 명심하고 잠시도선행을 멈추지 말라.
5. 당신의 기술은 무엇인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보편적 원리들-- 어떤 것은 우주의 본성에 관한 것이고
어떤 것은 인간의 고유한 본질에 관한 것이다.
--을 무시하고 어떻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6. 처음에는 무대에서 비극이 상연되어 이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을 관객에게
상기시켜 주었고 이러한 사건은 자연에 따라 일어나는 필연적 사건이고
따라서 무대에서 보았을 때에는 당신을 즐겁게 만들던 그 사건이 보다 넓은 무대에서
일어나드라도 괴로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께워 주었다.
당신은 이러한 사건은 반드시 그러한 결말을 맺기 마련이고 .
또 오. 키타이론이여! 라고 울부짖은 사람조차도 이러한 사건들을 참고 견더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비극작가들은 좋은 말을 많이 남겨놓았는데 그중 가장 경청할 말을 예로 든다면
다음과 같다.
신께서 나와 자손을 돌보지 않으신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또한---
우리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노심초사해서는 안 된다.
또한 ---
벼가 익으면 거둬들이듯이 삶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러한 말은 얼마든지 있다.
비극 다음에는 초기의 희극이 상연되었는데 희극은 오만하게도 언론의 자유를
멋대로 행사했고매우 솔직한 표현 때문에 오만이 어떤 것인가를 일께워 주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와 같이 솔직한 태도를 취하기 위해 디오게네스도 희극작가의 형식을 본받았다.
다음은 중기의 희극작가에 대해서 이 희극들이 어떠한 것인가를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세로운 희극이 상연되었는가를 검토해 보라.
새로운 희극들은 점차로 단순한 모방적 기교로 타락하고 말았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이 작가들도 좋은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이러한 극작법의 전체적 계획은 결국 어떠한 효과를 노리고 있었던가.......
7. 철학하는 데 있어서 현재 당신이 처해 있는 생활조건보다 적절한 생활조건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명백한 사실인가?
8. 나무가지들 옆의 나무가지로부터 떼어내면 이 나무가지는 반드시 나무 전체로부터
떨어지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될 때 사회 전체로부터 격리된다.
그러나 나무가지는 나무가지 아닌 것이 베어내지만 인간은 이웃 사람을 미워하거나 배신할 때.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격리된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되면 사회 전체로부터 격리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구성시킨 제우스가 준 특권만은 남아있다.
이웃과 협력해서 다시 전체의 완성을 돕는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능력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격리가 자주 일어나면 이탈자가 다시 복귀해서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끝으로 처음부터 나무와 함께 자라나고 나무와 함께 동일한 생활을 해온 나무가지와 일단 베어낸
다음에 다시 접목시킨 나무가지는 같을 수 없다.
정원사는 접목시킨 나무가지는 나무와 함께 여생을 보내지만 나무와 똑같은 마음을 갖지는 못한다고
말하거니와 이 말은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9. 당신이 올바른 이성에 따라 행동할 때 당신을 방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건전한
목적으로부터 빗나가게 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로 말미암아 그들에 대한 관대한 감정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오히려 두 가지 문제 곧 확고한 판단과 행동 그리고 당신을 방해하거나 그밖의 일로
괴롭히는 자들에 대한 부드러운 태도를 잃지 않도록 하라.
그들의 방해 때문에 괴로와하는 것은 두려운 나머지 당신의 행동방향을 빗나가게 하고.
물러서는 것과 같이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공포 때문에 자기 자리에서 이탈하는 자나
본성적으로 동포요 친구인 자들을 꺼리는 자나 모두 도망자라는 점에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0. 자연은 결코 인간의 기술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기술은 사물의 본성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완전하며 모든 본성을 포섭하는 자연은 재주나 기술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모든 기술은 강자를 위해서 약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본성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상 여기에 정의의 근원이 있고 다른 덕은 정의를 토대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중성적 사물(선 악과 관계가 없는 사물)을 다루거나 쉽게 기만하고 경솔하고
마음이 들떠 있거나 할 때에는 정의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 사물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고 이러한 사물의 추구 또는 회피로 말미암아 당신의 마음이
흩으려지면 당신 스스로 사물에 다가가라.
그리고 이 사물에 대한 일체의 판단을 삼가하라.
그러면 사물도 조용히 머물러 있으리라.
또한 당신이 추구하고 회피하는 태도도 남의 눈에 띄지 않으리라.
12. 영혼이 대상을 향해 뻗어나가거나 안으로 위축되거나 흩어지거나 가라앉지 않고
빛을 통해 진리 ---만물의 진리와 영혼 자체의 진리---를 보고 밝힐 때.
영혼의 원형은 그 형태를 유지한다.
13. 어떤 사람이 나를 경멸했다고 가정하자.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나는 경멸받을 만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어떤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면 상관하지 말기로 하자.
나는 모든 사람을 온화하고 관대한 태도로 대하고 그들의 잘못을 일께워 주면 된다.
그러나 비난하거나 나의 참을성을 뽐내는 태도를 나타내지 말고 포키온처럼---
그가 위선자가 아니였다는 전제 밑에서 하는 말이다.
우아하고 정직한 태도로 잘못을 일께워 주어야 한다.
인간의 열등한 부분은 이와 같이 되어야 하며 신에게 불만이나 불평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본성에 알맞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당신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성취되어야 할 일을 하도록 현재의 위치에 배치된 인간이므로 이 순간에도
우주의 본성에 따라 일어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면 당신이 아째서 해를 입겠는가?
14. 사람들은 서로 비웃으면서 서로 아첨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기 뛰어나려고 노력하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겸양의 덕을 보인다.
15. 나는 공정한 태도로 당신을 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가?
인간이여...
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앞에서 말한 것은 주의를 환기할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닌가?
저절로 밝혀질 사실인 것이다.
이런 태도는 이마에 분명히 적혀 있다.
마치 애인은 애인의 눈에서 모든 것을 판독하듯이 자기의 마음가짐을 즉시 눈에나타나는 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이다.
정직하고 착한 사람은 강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과 같아서 그의 옆으로 가까이 오는 사람은
싫든 좋든 이 냄새를 맡기 마련이다.
그러나 순박한체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늑대의 우정(거짓 우정)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러한 우정을 피하라.
착하고 순박하고 관대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마음가짐을 눈에 나타내며
여기에는 조그마한 착오도 있을 수 없다.
16. 당신의 영혼이 선과 악의 관계 없는 사물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가장 훌륭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은 당신의 영혼 속에 간직되어 있다.
영혼이 선과 악의 관계 없는 사물들을 개별적으로 보든 총괄적으로 보든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한다면 무관심한 태도를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물들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이 사물들에 대한 의견을 형성시키지 못하고
이 사물들은 부동의 상태에 머물어 있을 뿐이며 이사물들에 대한 판단을 형성하는 자는
우리 자신으로 말하자면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판단을 내리고
마음 속에 기록해 놓았어도 이를 지워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대로 기록에 남겨두고
있는 자는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또한 잠시 동안만 이러한 주의를 기울이면 되며 삶은 곧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러한 태도를 취한다면 번거롭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사물들이 자연에 따르는 것이면 이를 즐겨라.
그러면 마음이 편안 하리라.
그러나 자연에 어긋나거든 당신의 본성에 맞는 일을 찾아라.
비록 그것이 명성을 얻게 하는 일은 아니드라도 노력을 기울여라.
각자에게는 각자의 선을 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17. 만물은 어디서 생기고 무엇으로 구성되었으며 무엇으로 변하고
변한 다음에는 어떤 것이 되는가를 생각하라.
또한 이러한 사물들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명심하라.
18. 화기 났을 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
첫째. 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그리고 우리는 서로 돕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또한 다른 관점에거 본다면 양떼는 숫놈이 감독하고 소떼는 황소가 감독하듯이.
나는 그들을 감독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만물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면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자는 자연이다.
그렇다면 약자는 강자를 위해 존재하고 강자끼리는 서로돕기 마련이다 라면 제1원리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고찰하라.
둘째. 식탁에 앉아 있거나 잠자리에 들어있거나 할 때.
그들은 어떤 인간들인가를 생각해 보라.
특히 그들의 의견은 어떠한 강요에 의해 형성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들이 어떤 자만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조라.
세째. 그들이 해야 할 올바른 일을 한 것이라면 우리는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올바른 행동이 아닌 경우에는 그들은 억지로 또는 무지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영혼은 억지로 진리를 빼앗기는 것처럼 각자가 그 나름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도 억지로
빼앗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부정하다든가 감사할 줄 모른다든가 탐욕스럽다든가.
한 마디로 이웃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 고통을 느낀다.
네째. 당신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다른 사람과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말라.
가령 당신은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없다하드라도 비겁하거나 명성에 대한 관심 그밖의
이와 비섯한 동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 하드라도 당신에게는 아직도 잘못을 저지른
경향성은 남아있다.
다섯째. 당신은 그들이 정말로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럴지 않은지를 잘 모르고 있다.
대체로 무슨 일이든 환경과의 관련 밑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섯째. 몹시 괴롭거나 슬플 때에는 인간의 생애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고 잠시 후에는
우리 모두 땅 속에 뭍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라.
일곱째.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의 지배적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의견이 우리들을 괴롭힌다.
따라서 이러한 의견을 버리고 그러한 행동을 극악한 것으로 여기는 당신의 판단을 삼가할 결심을 하라
그러면 분노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이러한 의견을 버릴 수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치가 악이 아니었더라면 당신도 반드시 많은 잘못을 저지렀을 것이고 강도도 되고 그밖의 것도
되었을 테니까.
여덟째. 우리가 화를 내거나 귀찬아 하는 행동 자체보다도이러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분노나괴로움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말라.
아홉째. 착한 마음은 거짓 미소나 연기가 아니고 순수한 것이라면 무적의 것임을 명심하라.
당신에게 해를 입히려는 사람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용히 타이르고
당신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면 여보시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해를 입지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이 해를 입게 됩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의 잘못을 침착하게 발잡아 준다면.
가장 난폭한 사람도 당신에게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부드럽고 재치있게 보편적 원리에 의해 앞에서 한 말이 사실이며.
꿀벌이나그밖의 군거하는 본성을 가진 짐승들도 그와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고 타일러라.
그러나 빈정되거나 나무라지 말고 아무 원한도 품지 않은 정다운 태도로 타일러야 한다.
또한 마치 훈계하거나 동석한 사람들의 칭찬을 의식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타일러야 한다......
이상의 아홉가지 원칙은 뮤우즈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있는 동안은
참된 인간이 되려고 끝까지 노력하라.
그러나 사람들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을 귀찮아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태도는 비사회적 태도이고 결국은 화를 자초하기 때문이다.
격렬한 분노로 흥분한 순간에도 정념에 흔들리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며 온화하고 관대한 태도는
인간의 본성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인 동시에 남자답기도 하다는 이 진리를 명심하라.
그리고 이러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힘과 강인성과 용기를 갖고 있으나 정념과 불만의 변덕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의 마음은 정념으로부터 해방되면 그럴수록 더욱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고통감이 무력감을 나타내듯이 분노도 무력감을 나타낸다.
고통에 굴복하는 자나 분노에 굴복하는 자는 상처입은 자요 항복한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이 원한다면 뮤우즈의 지도자의 열번째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열번째 선물은 다음과 같다.
나쁜 사람들에 대해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갖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광인이다.
그는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쁜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방관하면서 당신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이고 폭군적인 태도다.
19. 당신이 끊임없이 조심해야 할 탁월한 능력의 네가지 중요한 일탈현상이 있다.
이러한 일탈현상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를 제거하고 그때마다 이렇게 말하라.
이 현상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 사상은 자칫하면 사회적 단결을 파괴하기 쉽다.
이 사상은 내가 진정한 사상이라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사상을 말하지 않는 것은 가장 불합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번째 일탈현상은 당신이 어떤 일로해서 당신 자신을 비난할 때 야기된다.
당신이 자기 자신을 비난한다는 것은 당신 마음 속의 신성한 부분이 가장 불명예스럽고
사멸하기 마련인 부분 곧 육체와 그 야비한 탐욕에 압도 당하고 굴복했다는 역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20. 당신의 기식. 그리고 당신 체내에 흩어저 있는 원소들은 원래 상승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지만 우주의 배치에 순종하며 여기 복합적 조직속에 갇혀 있다.
또한 당신 체내에 있는 원소나 물의 원소는 모두 낙하하는 성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위로 올라가서 본래의 성질에 어긋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러가지 원소들은 보편적 본성에 순종하고 있다.
이 원소들은 어떤 장소에 일단 강제로 배치되면 보편적 본성이 다시 분해의 신호를 울릴 때까지는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성적 부분만이 반항하고 자신의 위치에 불만을 말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지성적 부분에는 어떠한 강제도 가해지지 않고 당신의 지성의
본성에 맞는 일만이 일어난다.
그런데도 이 부분은 순종하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나간다.
부정 무절제 분노 비통 공포 등을 지향하는 움직임은 바로 자연으로부터 일탈하는 자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배적 부분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불만을 느낄 때 자기 위치에서 이탈한다.
원래 지배적 부분은 신과 정의를 경애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품은 사물의 본성애 대한 총체적 만족에 포섭되는 것이고 사실상 정의로운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21. 생의 목적이 항상 동일하지 못한 사람은 생애를 통해서 한결같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보충 설명하지 않는다면
앞에서 한 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견일치를 볼 수 없으나
다만 한 가지 일 다시 말하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공통되는 정치적 목표를 우리 자신에게 제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노력을 이러한 목적에 기울리는 사람은 그 행동이 한결같고 따라서 자신도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2. 시골 쥐와 서울 쥐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서울 쥐의 경계심과 공포를 생각해 보라
23. 소크라테스는 대중의 의견을 라미아 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라미아는 어린애들이
무서워하는 도께비다.
24. 라케다이몬 사람들은 공식행사 때 외국 손님의 자리를 그늘에 마련하고.
그들 자신은 아무데나 앉았다.
25. 소크라테스는 페르디카스의 초대를 받았을 때
나는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는 구실로 거절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은혜를 받고 보답하지 못할 바에는 처음부터 은전을 거절하겠다는 것이다.
26. 에페소스 사람들의 저술에는 덕을 실천한 선인중의 한 사람을 항상 생각하라는 교훈이 있다.
27. 피타고라스는 학파에는 아침마다 하늘을 바라보라는 규칙이 있다.
영원히 동일한 상태로 동일한 방식에 따라 운동하는 저 천체들을 상기하고
또한 그 순결성과 적나라한 모습을 상기하기 위하여서다.
별을 가리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28.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의 망토를 갖고 나갔을 때 소크라테스가 양가죽을 입고 나온
모양을 상상해 보라.
또한 친구들이 그의 옷차림을 보고 부끄러워서 달아났을 때 그가 친구들에게 한 말을...
29.읽고 쓰는 데 대해서는 당신 자신이 숙달되기 전에는 남을 가르치지 말라.
인생에 대해서 이 말은 훨씬 더 타당하다.
30. 당신은 노예다.
따라서 자유로운 언론은 당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31. - 그리고내 마음은 몰래 웃었다.
32. 그는 거친 말로써 덕을 저주하개 되리라.
33. 겨울에 무화과를 찾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아이를 낳지 못할 나이가 되었으면서 아이를 바란다면 그 사람도 역시미친 사람이다.
34. 어린애와 입을 맞출 때에는 아마도 내일은 죽을 거야 라고 중얼거려라 ---
에픽테토스의 말 그러나 이 말은 불길한 말이 아닌가.
자연의 작용을 표현하는 말에는 불길한 말이 없다.
만일 이런 말이 불길하다면 벼이삭이 익었다고 하는 말도 불길한 말이다.
역시 에픽테토스의 말.
35. 덜 익은 포도 무르익은 포도송이 건포도---이러한 모든 것은 변화다.
그러나 무르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없던 새로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36. 아무도 우리의 자유 의지를 뺏지 못한다.
37. 사람은 동의하는 기술을 발견해야 한다.
또한 욕구에 대해서는 환경을 고려하고 사회적 관심과 일치하고 대상이 갖는 가치를
지실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감각적 욕망에 대해서는 이를 전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또한 거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이러한 태도를 표시해서는 안 된다...
에픽테토스의 말.
38. 이 논쟁은 공통된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쳤는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데 대한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말.
39. 소클라테스는 늘 이런 대화를 했다.
다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성적 인간의 영혼인가.
이성적 인간의 영혼 이니다.
이성적 이간중의 어떤 인간인가?
건전한 인간? 또는 불건전한 인간?
건전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그러한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미 그러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싸우고 말다툼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