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30장 반전(反轉) [2]
(619) 30장 반전(反轉)-3
국가정보원장 박기출이 회의실에 앉은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오후 5시 반, 회의실 분위기는 무겁다.
회의 주제는 ‘대마도 폭발사건’, 간부들은 제각기 분야별 대책을 준비해 왔지만 문제는 딱 하나다.
‘누가 폭파했느냐’는 것이다.
박기출이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서 누구를 보는 것도 아니다.
“누가 그런 거야?”
아침부터 일본 언론은 폭파범이 한국군 특공대라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일본 측은 한국과 대마도의 거리가 49㎞밖에 안 된다는 것을 한 번도 강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모든 언론이 ‘그것’을 입에 ‘달고’ 있다.
고속정으로 30분 거리라는 것이다.
특공대가 폭파하고 소형 보트로 돌아가면 위성에서도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외국 언론도 마찬가지다.
CNN은 대놓고 ‘한국군 특공대’라고 방송했다가
한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특공대’로만 불렀는데 이미 엎어진 물그릇이다.
이러니 한국민들도 슬슬 그것을 믿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느 종편에서 인터뷰 장면을 방영했는데 ‘대전의 시민’이 ‘우리 특공대’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속이 다 시원하다는 것이다.
이제 북한군이 3000척의 배로 대마도를 덮치는 일만 남았다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때 제1차장 신현기가 입을 열었다.
“일본의 자작극입니다.”
둘러앉은 10여 명의 간부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오전부터 한국군과 정보기관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기출이 시선만 준 것은 그렇다면 그 증거를 내놓아 보라는 표시다.
신현기가 말을 이었다.
“폭파범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글쎄, 그것이.”
박기출이 입맛 다시는 소리를 냈다.
“그거, 철학적인 이야기인데.”
다른 때 같으면 그 말에 웃음을 띨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
박기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증거를 내놔 봐! 증거를! 우리가 안 했다는 증거를 말이야!
흔적이 없다는 것이 일본 측 자작극이라고? 그게 말이 돼?”
모두 어깨를 늘어뜨렸지만 말은 된다.
폭파범은 CCTV를 교묘하게 피해서 폭발장소 근처의 CCTV에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았다.
일본 정부에서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일본 측은 그것이 한국군 특공대의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이라고 보도했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대공국장 이영섭이 머뭇대다가 말했다.
“히다카쓰 해상보안서 소속의 다나카라는 자가 폭발 당시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가
나중에 밖에 있었던 것이 밝혀져 가족들이 안도했다는 보도가 났습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이영섭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55세의 이영섭은 국정원 근무 27년이다.
대부분 동기는 퇴직했고 이영섭도 내년에 명퇴하고 신의주로 갈 예정이다.
“다나카는 숙직자로 알려졌거든요.
그런데 일본 언론은 이후 일절 다나카에 대한 보도가 없습니다.”
박기출이 머리를 끄덕여 보인 것은 계속하라는 표시다.
이영섭이 말을 이었다.
“대마도의 요원에게 다나카가 왜 밖에 있었는지를 알아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렇지.”
어깨를 편 박기출이 정색하고 이영섭을 보았다.
“귀신이 아닌 이상 밤에도 그림자는 있어.”
이건 박기출이 지어낸 말이다.
(620) 30장 반전(反轉)-4
“일본을 지키라!”
TV에는 일본 시위대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다.
도쿄에 이어서 오사카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대다.
“한국에 복수를!”
메가폰을 입에 댄 사내가 외치자 뒤를 따르는 수백 명이 복창한다.
대부분이 머리띠를 둘렀고 흰 머리띠 중심에 붉은색 일장기 모형이 찍혀 있다.
욱일승천기가 뒤에서 펄럭인다.
시위대는 늘어나는 추세다.
오후 6시, 서울역 대합실은 붐비고 있다.
대형 TV 앞에 모여 선 수백 명은 대부분 시선만 주었으나 가끔 짧은 욕설이 터져 나온다.
모두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더니 대통령 한대성이 나타났다.
이제 한국도 대통령 성명이다.
한일 양국의 지도자가 각각 성명전을 하는 셈이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세계 각국의 시청자 여러분.”
한대성이 그렇게 운을 뗐다.
차분한 표정이다.
“두 시간 전, 저는 북한 김동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대마도 폭발사건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것을 믿습니다.”
한대성이 똑바로 시청자들을 보았다.
이 성명은 지금 전 세계로 방영되고 있다.
“이로써 대마도 폭발사건은 일본 측의 자작극이라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증거가 치밀하게 은폐되었지만 곧 드러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그리고 해외 시청자 여러분.”
한대성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몇 시간 전에 김동일 위원장이 저에게 지난 역사를 말해 주면서
이번 일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습성이 되풀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한대성이 1923년 9월 1일의 간토대지진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자경단의 잔학무도한 조선인 학살을 말하면서도 차분했다.
그래서 서울역 대합실의 시청자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어느덧 대합실 TV 앞에는 천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이윽고 말을 마친 한대성이 가라앉은 시선으로 시민들을 보았다.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우리는 대마도 폭발사건을 접하고 일제강점기의
간토대지진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남북한 국민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세계의 시청자 여러분. 이것은 일본의 자작극입니다.”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한 한대성이 인사를 하고 화면이 다시 도쿄의 반한(反韓) 시위장으로 옮아갔다.
“에잇, 개새끼들.”
갑자기 누군가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TV 앞을 떠나는 대부분 시민은 눈빛이 강했고 표정이 굳었다.
당장에라도 누군가를 후려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잘하셨습니다.”
청와대 집무실에서 함께 TV를 보던 비서실장 양용식이 한대성에게 말했다.
“간토대지진 사건을 세계 각국에 재조명시킨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본 것입니다.”
“아베가 군국주의 시대로 돌아갈수록 우리도 지난 상처를 끄집어내서 세계 각국에 선전할 테니까.”
그리고 이제는 남북한 연합시대인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일본과 공동 대응하던 시기가 아니다.
그때 한대성이 화면에 그림만 나오는 일본 시위대를 보면서 혼잣소리를 했다.
“저 사람들이 지금 히틀러 같은 망상론자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하지만 히틀러도 당시에는 독일 국민의 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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