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8장 변태기 15

오늘의 쉼터 2015. 4. 27. 23:18

제8장 변태기 15 

 

 

“회장님께서 그런 생각이 없으신 줄은 누구보다 도련님이 잘 아시잖아요.”


“어머니께서는 가진 걸 모두 사회에 환원하신다고 하셨잖아요.”

 

“맞습니다. 그렇다고 사업을 안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진국은 눈을 크게 뜨고 황녹주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사업을 하신다구요?”

 

“중국 서부대개발 투자도 그런 맥락에 있는 겁니다.”

 

진국은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어머니가 결정적으로 ‘코지’를 도와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섰다.

 

“저는 도련님을 존경합니다.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생각하니까요.

 

그렇다고 다 쓰러져 가는 기업을 꼭 도와줘야겠습니까? 도와준다고 칩시다.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회사를 도와주었다가 회생에 실패하면

 

어머니까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건 어려움에 닥친 이웃을 도와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젭니다.”

 

“누님이 보시기에도 정말 ‘코지’가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0.1% 정도? 하지만 그 0.1%의 가능성을 보고 99.9%의 위험에 투자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황녹주가 진국의 곁으로 옮겨와 앉았다.

 

그녀는 조금씩 진국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국은 그녀를 피하지 않았다.

 

“누님이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국이 황녹주를 쳐다보았다.

 

황녹주의 눈길이 뜨거웠다.

 

진국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의 일 하나가 떠올랐다.

 

황녹주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모 기업의 농간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뒤 아버지는 병으로 죽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동생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 동안 황녹주의 집안에 빌붙어 살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그들 가족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런 그녀를 신 회장이 거두었다.

 

그녀가 처음 신 회장의 집으로 들어오던 날 혼자 있는 걸 두려워했던 그녀를

 

진국은 진심으로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방에서 묵었다.

 

진국은 그날 첫 동정을 그녀에게 바쳤다.

 

그녀 역시 처녀였다.

 

황녹주의 손이 진국의 얼굴을 서서히 어루만졌다.

 

진국의 몸이 서서히 긴장이 되었다.

 

그녀의 손을 떨쳐내야 한다는 건 생각뿐이었다.

 

황녹주는 진국이 사랑해서는 안될 첫사랑이었다.

 

그 점을 황녹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진국을 유혹하고 있었다.

 

황녹주는 어머니의 충복으로 자신의 몸까지 아끼지 않고 내던진 여자였다.

 

신 회장을 위해 무수히 많은 남자들을 만나면서도 단 한번 남자와 연애를 한 적이 없던 여자였다.

 

신 회장을 위해 미인계를 쓰고 매몰차게 돌아서는 무서운 여자였다.

 

진국이 신 회장 집을 나와 있는 세월 동안에도 그녀는 변함없었다.

 

황녹주의 손이 가운을 들추고 진국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진국의 가슴에 닿은 황녹주의 손이 뜨거웠다.

 

진국은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아픈 감정들이 회오리치는 걸 느꼈다.

 

그녀도 혼자였고 진국 역시 혼자였던 몸이었다.

 

진국은 그녀의 손을 떨쳐내지 못했다.

 

황녹주 다른 한 손이 진국의 허벅지로 내려왔다.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오로지……”

 

매사 냉정하고 차갑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가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국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몇 시간 전에 헤어진 신해수의 얼굴이 떠올라 어른거렸다.

 

진국은 손을 뻗어 그녀의 원피스 위를 더듬었다.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그녀의 젖가슴이 물컹 만져졌다.

 


진국은 궁금했다.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던 황녹주가 오늘 무슨 일로 자신의 방을 찾아온 것인가 싶었다.

 

진국의 귀에 격렬하고 빠르게 뛰는 황녹주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렸다.

 

진국의 손이 가디건을 벗겨내고 그녀의 등뒤로 돌아갔다.

 

그리곤 원피스의 지퍼를 서서히 끌어내렸다.


‘어머니는 왜 이 여자를 시집도 못하게 하고 곁에 두려는 거지?’

 

진국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피스가 어깨에서 흘러내리자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진국은 그녀의 어깨 위에 입을 맞추었다.

 

황녹주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진국의 허벅지에 머물러 있던 그녀의 손이 진국의 아랫도리를 더듬더듬 찾아 쥐었다.

 

신해수와 한바탕 섹스를 벌이고 들어온 길이었지만 진국의 아랫도리는 새 생명처럼 불끈 일어섰다.

 

진국은 그녀의 양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아직도 처녀의 가슴처럼 팽팽한 그녀의 젖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남자의 손길도 지나가지 않은 흔적처럼 그녀의 가슴은 성스럽고 깨끗해 보였다.

 

진국은 그녀의 가슴에 입술을 들이댔다.

 

황녹주의 전신이 떨렸다.

 

그녀의 유두는 어느새 딱딱해졌다.

 

가슴은 더욱 단단해졌다.

 

진국의 머리와 아랫도리를 쥐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국은 원피스를 끌어내렸다.

 

속옷도 걸치지 않은 몸이었다.

 

뱀의 껍질처럼 차갑던 그녀의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진국은 그녀를 뒤로 밀어 소파에 넘어트렸다.

 

진국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순간 황녹주는 진국을 세차게 밀어냈다.

 

“도련님, 우리 이러면 안되는 거죠. 죄송해요.”

 

황녹주가 황급히 원피스를 주워 입고 다시 가디건을 걸쳤다.

 

“제가 정말 도련님을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모로 틀고 눈물을 훔쳤다.

 

진국은 가운을 여몄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진국은 캔 맥주를 들어 그녀의 술잔과 부딪혔다.

 

진국은 타 들어가는 듯한 목에 맥주를 들이부었다.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미안해요.”

 

“도련님이 뭐가 미안해요. 넘봐서는 안될 사람을 넘본 제가 잘못입니다.”

 

황녹주는 천천히 술잔을 들어 비웠다.

 

“언제까지 그렇게 저한테 존댓말을 할 겁니까?”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였어요.

 

부모님 잃고 동생 병원에 있고…….

 

회장님께서 나를 거둬주셔서 지금 이만큼 성장할 수 있게 된 것까지

 

나는 내 운명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어요.

 

나는 회장님의 비서로서의 삶에 만족해요.

 

그런 분의 아드님을 막 대할 수는 없는 일이죠.”

 

“누님도 알겠지만 나 역시 입양된 아들일 뿐입니다.”

 

“그래도 회장님의 유일한 적자세요.

 

이런 위계는 분명해야 해요.

 

내가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도련님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겁니다.”

 

오래 전부터 이 이야기는 가끔 나누었다.

 

그때마다 황녹주는 같은 대답을 했다.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진국은 황녹주에게 물었다.

 

오늘 그녀의 행동은 그저 단순한 유혹만은 아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의 손길에는 외로움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다.

 

“회장님도 모르시는데…….”

 

황녹주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실은 며칠 전에 병원에 있던 동생이 잠깐 제 정신으로 돌아왔는데,

 

요양원 앞 호수에 뛰어 들었대요.”

 

진국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떻게 됐는데요?”


황녹주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저께 실은 동생 유골 뿌리러 금강에 내려갔다 왔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혈혈단신의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외로움을 털어 버리고 싶어 진국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외로움과 슬픔을 털어 버릴 수 있다면 진국은 얼마든지

 

그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신 회장님도 요즘 머리나 마음이 많이 복잡하시거든요.

 

저 같은 년 동생이 자살한 걸 말씀 드려서 심려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누님이 어때서 저 같은 년이라고 말씀하세요?”

 

황녹주가 고개를 떨구었다.

 

진국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황녹주는 진국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품에 안겼다.

 

그리곤 소리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는 처지의 여자였다.

 

진국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진국의 황녹주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입술로 닦아주었다.

 

황녹주가 눈을 감았다.

 

입술도 닦아주고 턱에 고인 눈물로 핥아주었다.

 

꼭 여몄던 가디건을 끌어내리고 다시 원피스의 지퍼도 풀었다.

 

황녹주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벌거벗은 황녹주는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진국은 그녀를 안아 침대로 옮겼다.

 

진국은 정성스럽게 그녀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픔을 씻어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혀로 닦아주었다.

 

가슴을, 배를, 허벅지를 그리고 그녀의 중심을. 황녹주는 울음을 삼켰다.

 

진국의 아랫도리가 그녀의 중심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황녹주는 진국의 어깨를 잡고 이빨을 물며 슬픔을 참았다.

 

진국은 10년전의 청년으로 되돌아가 그녀를 가슴 깊이 안았다.

 

“누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납골당이라도 쓰지 그러셨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납골당에 계시지만 동생한테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얼른 훨훨 날아가서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라고 빌고 싶었어요.”

 

진국은 황녹주의 몸을 쓰다듬었다.

 

외로움이 돋아난 듯 팔과 다리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나랑 어머니가 있으니까 힘내세요.”

 

황녹주가 진국의 품을 파고들었다.

 

“미안해요, 도련님. 제가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만 도련님을 받아 들였네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진국은 욕실 타월을 뜨거운 물에 적셔 들고 나왔다.

 

그리곤 그녀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도대체 오성 회장은 왜 ‘코지’를 밟아버리지 못해 안달이 난 거죠?

 

저도 대충은 알지만.”

 

“도련님께서 알고 있다는 게 뭐죠?

 

오성 회장님이 실수로 하룻밤 잔 여자가 낳은 아들이 ‘코지’ 사장이라는 정도겠죠.

 

그 여자가 자살을 했고 그 사건으로 오성의 중요한 계약 하나가 파기가 됐다는 정도겠죠?”

 

“코지 사장이 미국에 어린 시절을 보낼 때

 

그 어머니가 소송을 걸어 자신의 아들이 오성 회장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죠.

 

하지만 소문일 뿐이잖아요. 사실인지도 모르고.”

 

진국은 그녀의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렸다.

 


황녹주가 진국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뭔가 갈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이에요. 그런 소송이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코지’ 사장의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사실도 여러 언론사에서 알게 되었죠.

 

오성 그룹 회장이라면 그런 정도의 소문은 돈으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그렇죠. 한 명이라도 의식이 있는 기자가 있었을 거 아닙니까?”

 

“도련님, 도련님은 어느 때 보면 너무 순진해요.

 

언론사 주요 간부나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 등 그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겠죠.

 

하지만 그 뇌물의 액수가 한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액수가 되면 그건 뇌물이 아니라

 

명령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건 소문으로만 남을 뿐 기사화 되지 못했죠.”

 

“그럼, 파기되었다는 계약은 뭐죠?”

 

“자살하신 그 분이 오성과 계약을 하기로 되어 있던 미국의 업체에다가 편지를 보낸 겁니다.

 

비도덕적인 기업이니까 계약을 맺을 시 같이 연루되어 곤욕을 치르게 될 거라고 말이에요.

 

물론 그 분이 돌아가신 후 소문이 잠잠해진 다음엔 다시 계약 이루어졌죠.

 

대신 오성의 손해가 막심했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뭐 하러 차 사장에게 ‘코지’를 차려준 겁니까?”

 

“약속이죠. 두 번 다시 어머니나 자신의 문제를 언론에 까발리지 않겠다는 거랑

 

문제화시키지 않겠다는 약속.”

 

황녹주는 이제 안정을 찾은 듯했다.

 

그녀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죽이려고 하죠?”

 

“차 사장이 의도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곳 큰 아드님의 따님과 문제가 생겼어요.

 

차 사장이 형식상의 출장으로 미국에 있을 때 오성 큰아들의 딸과 만나게 된 거죠

 

어쩌면 차 사장이나 그 딸 역시 둘 다 자신들이 어떤 관계인지 몰랐을 거예요.

 

오성 회장은 차 사장을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가족은 거의 만나질 못했을 거예요.

 

누가 조카인지 누가 형수가 되는 지도 몰랐을 거예요.

 

‘코지’가 잠깐 차 사장 없이 운영이 되었잖아요?”

 

진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큰아들의 딸과 차 사장이 만나 동거를 하게 된 겁니다.”

 

“그럼, 삼촌하고 조카가 서로에 대해 몰라서 그런 일이……”

 

놀랄 일이었다.

 

“하지만 차 사장은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짓을 벌였을 수도 있지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말 사람의 속은 모르는 거니까요.

 

결국 한 달만에 그 사실이 오성가에 알려진 겁니다.

 

당연히 난리가 났겠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그렇다고 문제를 내놓고 해결할 수도 없는 거예요.

 

차 사장 역시 문제를 터트리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조카를 사랑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오성으로서는 더 이상 차 사장을 봐줄 수 없는 거죠.”

 

비극이었다.

 

진국은 황녹주를 품에 품은 채 맥주를 마셨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안돼요.

 

그냥 단순하게 오성 회장이 차 사장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는 줄만 알고들 있죠.”

 

진국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아직도 태우시네요.”

 

“가끔은 담배만큼 훌륭한 친구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진국은 뽀얗게 흘러나오는 담배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황녹주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오성은 아주 철저하게 ‘코지’를 짓밟을 터였다.

 

신 회장은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부하 직원들이 그 비극의 희생양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말 ‘코지’가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세요?”


“오성은 이제 더 이상 ‘코지’를 건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쥐도 막다른 골목에서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요.

 

스스로 자멸하게끔만 만들어 놓은 거죠.”

 

진국은 속옷을 입었다.

 

황녹주는 진국의 가운을 걸쳤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달빛에 젖은 북한산을 바라보았다.

 

“누님이 말한 0.1%의 가능성은 뭐죠?”

 

“그 가능성은……”

 

황녹주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머리가 진국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진국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회장님께서 도와주시는 거예요.”

 

아이러니한 대답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이미 손을 놓으셨잖아요.”

 

“제가 있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진국이 그녀를 바로 앉히고 양손으로 어깨를 잡았다.

 

“제게 최소한 5개월 정도는 막아드릴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있어요.

 

하지만 딱 5개월뿐이죠.

 

어머니께서도 알고는 계시지만 말씀을 안 하신 거예요.

 

5개월 안에 승부가 날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 하셨으니까요.

 

샘플 만들고 패션쇼하고 제품 생산하고 광고하고 유통시키는 데에만도 1년은 걸릴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 5개월을 막아줄 수 있는 자금이라는 게 어머니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세요.

 

그러니까 이 자금은 제가 운용을 할 수는 있지만 어떤 계약서도 쓰지 못하는

 

그야말로 위험한 자금이죠.

 

‘코지’가 망하면 단 한푼도 건질 수 없다는 말이에요.

 

어머니께서 공식적으로 도와드리면 ‘코지’가 망한 후에 몇 푼이라도 건질 수는 있겠지만

 

제가 운용해 드릴 수 있는 자금은 그대로 휴지가 되고 마는 거죠.

 

제게도 도박이라는 거죠.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저도 회장님 곁을 떠나야하고 도련님 역시 맘 편히 지내실 수는 없는

 

그런 돈이에요. 그래도 도움을 바라세요?”

 

갈등이 일었다.

 

‘코지’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와 황녹주의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황녹주의 어깨를 잡고 있던 진국의 손이 맥없이 흘러내렸다.

 

“다, 다른 방법은요?”

 

“총판과 대리점을 설득하는 거죠?”

 

총판과 대리점? 대부분의 대리점과 총판이 올해를 끝으로 ‘코지’와의 계약을 끝내겠다고

 

공식적으로 통보를 해온 상태였다.

 

‘비라’가 이미 계약 위반의 손해까지 지불을 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

 

그들의 마음을 돌린다는 게 더 어려운 일처럼 여겨졌다.

 

“그들이 계약을 연장해주면 자금의 여유가 생겨요.

 

그리고 은행에서도 대리점이나 총판의 계약 연장 비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줄 수도 있구요.

 

하지만 그것도 몇 달 동안이겠죠.

 

자금이 필요한 건데, 신 회장님은 어렵고 은행돈은 쓸 수가 없고

 

그렇다면 남은 건 사채업자들 뿐인데 그들 역시 오성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저 역시 답답하네요.”

 

진국은 황녹주가 한 말을 속으로 읊조렸다.

 

“올해가 가려면 이제 겨우 4일 남았어요.

 

총판이나 대리점을 설득하는 일도 4일밖에 없다는 거네요.

 

그게 가능할까요?”

 

진국은 조용히 일어났다.

 

“그러게요, 이제 4일 밖에 안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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