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8장 변태기 14

오늘의 쉼터 2015. 4. 25. 10:55

제8장 변태기 14 

 

 

“어제도 어머니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서요?”


조수석에 앉은 신해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진국은 말없이 운전에만 몰두했다.

 

“신 회장님께서는 한번 거절하시면 번복하시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저라도 좀 알아볼까요?”

 

“해수씨까지 그럴 필요 없어. 해수씨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신해수는 기어 위에 올려져 있던 진국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어쨌든 혹시라도 시간이 나면 당신 오피스텔로 찾아갈게.”

 

“신 회장님이 들어주시지 않아도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신해수는 차에서 내리기 전 진국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진국은 북촌으로 차를 몰았다.

 

어머니를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코지’의 일로 어머니를 찾아가게 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차 사장이나 박춘만 과장 등 어느 누구도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오성 회장이 모든 자금줄을 막고 있었고 은행은 아예 씨알이 먹히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진국은 신 회장 집 앞에 차를 멈추었다.

 

골목 초소에 있던 사설 경비원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당신 뭡니까?”

 

경비원은 차와 진국을 번갈아 보았다.

 

이런 골목에 들어올 차가 아니라는 눈치였다.

 

“이 집에 볼일이 있어서요.”

 

진국은 대수롭지 않게 경비원 앞을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경비원이 진국의 팔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일단 신원을 밝혀야겠습니다.”

 

경비원의 손은 두꺼웠다.

 

진국보다 키도 훨씬 컸고 덩치 또한 씨름 선수 같았다.

 

그런 정도의 남자라면 간단하게 제압할 수도 있었다.

 

기분도 우울한 터라 여차하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괜한 문제로 신 회장 눈밖에 나고 싶지 않았다.

 

“저 이 집 아들입니다.”

 

“아들?”

 

경비원은 다시 진국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아들 좋아하고 있네.”

 

경비원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정말 왜 이러십니까?”

 

“며칠 전에 이 근방에서 살인 사건이 나서 그러니까 얼른 주민번호하고 이름 대!”

 

숫제 반말이었다.

 

눈에 보여지는 것만 믿는 세상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진국은 순순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댔다.

 

경비원은 무전기로 확인을 했다.

 

아마 경찰들과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곳에서 경비를 설 게 아니라 정작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곳에서

 

경비를 서거나 경찰을 배치해야 옳은 게 아닌가.

 

“너 이 새끼! 사기 칠래? 이 집 신 회장님한테는 아들이 없어!”

 

진국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에게 잡힌 손목을 안으로 돌려 빼낸 후 그의 손목을 잡았다.

 

바위도 부술 만한 악력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뒤로 꺾었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초소에서 누군가 또 뛰어나오고 있었다.

 

‘이거 정말 귀찮게 됐네.’

 


진국은 경비원의 팔을 꺾은 채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또 다른 경비원은 충정봉을 빼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저, 진국입니다.”

 

“어머, 도련님 회장님께서 한참 기다리셨는데. 얼른 들어오세요.”

 

대문이 철컹 열렸다. 진국은 그제야 경비원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이 새끼 뭐야!”

 

달려오던 경비원이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충정봉으로 진국을 내려칠 기세였다.

 

그러자 팔목을 잡혀 있던 경비원이 그의 앞을 황급히 막아섰다.

 

“야, 야! 신, 신 회장님 아드님이셔!”

 

두 사람의 몸이 갑자기 군인들처럼 차렷 자세를 했다.

 

“죄송합니다. 몰라 뵙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진국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딱딱하게 내뱉었다.

 

“니미럴! 이런 똥차를 끌고 다니는 데 내가 신 회장 아들인지 서방인지 알게 뭐냐?”

 

“야 임마! 말조심해, 사방에 CCTV 천지야. 이 골목에는 감청 장치도 있다는 소문이더라.”

 

대문 밖에서 들려오던 소리들이 일순간 사라졌다.

 

진국은 터덜터덜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을 열자 문 앞에 황녹주가 서 있었다.

 

신 회장의 오른팔이자 집의 여 집사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안 계시더니.”

 

“그러게요. 지난번에 도련님 오셨을 때는 제가 중국에 잠깐 나가 있었습니다.

 

그때 못 ??으니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30대 중후반쯤의 나이로 알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얼굴과 몸을 가진 여자였다.

 

가슴과 엉덩이는 20대 초반 여자 못지 않게 탄력적이기까지 했다.

 

그녀가 다가와 진국의 손을 잡았다.

 

샤넬 No5. 그윽한 향기가 진국의 코 안을 스며들었다.

 

‘여자 둘이 살면서 향수는……’

 

진국은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빼냈다.

 

“이리 오세요.”

 

진국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어쩐 일인지 황녹주는 사랑채 쪽으로 향했다.

 

북한산이 올려다 보이는 별채 개념의 방이었다.

 

그곳에도 방과 거실이 따로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훈훈한 온기가 진국을 휘어 감았다.

 

“어서 와라.”

 

소파에 앉아 있던 신 회장이 일어나 진국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는 짧은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허벅지 안쪽이 훤히 보였다.

 

진국은 얼른 눈길을 돌렸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맑은 병이 하나 놓여져 있었고

 

그 곁에 안주 접시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안주 접시 위에는 여러 가지 전과 너비아비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 회장이 소파에 앉자 진국도 맞은 편에 앉았다.

 

신 회장의 뒤쪽에 황녹주가 섰다.

 

“자네도 앉아.”

 

“네, 회장님.”

 

황녹주는 신 회장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냐?”


신 회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머니 저는 어쨌든 ‘코지’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신 회장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느긋하게 기댔다.

 

“다시 한번 고려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네가 가져온 프로젝트 다시 한번 살펴봤다.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기획했다는 것도 감안해서 살펴봤지.

 

그런데 그걸로는 ‘코지’가 회생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어머니, 어머니는 늘 제게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포기를 하란 말입니까?

 

일단 먼저 ‘코지’를 살리고 시간의 여유를 가지면서 프로젝트를 다시 기획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지금 ‘코지’는 중국 팀원들밖에 없습니다.

 

한번만 살펴 주세요.”

 

신 회장이 낮게 신음 소리를 냈다.

 

황녹주는 진국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네가 ‘코지’의 사장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그리고 내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 건 될 법한 일들에 국한된 거지

 

침몰하고 있는 배를 어떻게 막겠다고 날뛰는 거냐?

 

어제도 말했지만 내 말대로 중국에서 네가 독립한다면 그건 내가 지원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코지’를 살리는 일은 안돼! 살릴 수도 없어.”

 

진국은 고개를 떨구었다.

 

신 회장의 말이 하나 그르지 않았다.

 

이미 침몰하고 있는 배는 오르지 않는 법이다.

 

쥐새끼들도 짐을 싸서 떠날 판인 것이다.

 

“회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신 회장이 술잔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련님, 어머니께서 ‘코지’를 도와주시면 오성하고 적이 되는 겁니다.

 

오성하고만 적이 되면 다행인데 다른 회장님들하고도 적이 될 수 있습니다.

 

‘비라’가 오성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거 알고 계셨습니까?”

 

진국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황녹주가 안쓰러운 눈길로 진국을 쳐다보았다.

 

“사실입니다. 오성은 아주 철저하게 ‘코지’를 매장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그런 줄 아셨으면서 왜 제게 호천수 회장을 소개 시켜 주신 겁니까?”

 

진국은 신 회장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따지듯 물었다.

 

“회장님께서도 그 사실까지는 모르시고 계셨습니다.

 

최근에야 ‘비라’의 지분이 상당수 오성 회장님과 ‘코지’에서 나온

 

강일환 사장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진국은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코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코지’를 돕는 건 곧 독불장군이 되시겠다는 전쟁선포와 마찬가지의 일이 되는 겁니다.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중국 서부대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중국에 다녀온 것도 그 일 때문입니다.”

 

황녹주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신 회장의 입장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중국의 ‘링링’을 가지고 있는 북두칠성 그룹이 사실상 서부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링링’과 오성은 또한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으니까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서부대개발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공무원들의 부패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신 회장님께서도 북두칠성을 통해 어쩔 수 없이 그곳 고위 공직자에게…….

 

오성에서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만하지.”

 

“어머니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제가 괜한 부탁을 드린 꼴이 되었군요. 저 혼자 어떻게든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건 결국 모두 훗날 너를 위한 것이야.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라.”

 


진국은 마음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서서히 삭혔다.

 

신 회장의 입장에서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자신의 한심스러웠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큰손이니 언제나 돈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쓰러져 가는

 

기업 하나쯤은 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오묘하고 더럽고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 대기업과 큰손, 외국의 장사치들과 부패한 공무원들.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실감하기는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번 일로 어머니께 심려 끼쳐 드려 정말로 죄송합니다.”

 

진국은 고개를 숙였다.

 

“내가 미안하다. 지금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구나.”

 

“진국 도련님은 섭섭해하지 않으실 겁니다.

 

오래 전부터 회장님에 대한 생각이 매우 남달랐으니까요.”

 

진국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자고 가라. 귀국해서 하루라도 내가 해주는 밥이라도 먹고 가야하지 않겠니.”

 

신 회장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진국이 홀로 되어 외로웠던 시절,

 

그를 돌봐주고 먹여주고 키워준 이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진국의 아버지를 사랑해서 자신을 키워준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하경제의 큰손이 되기 전 고아원을 운영하던 따뜻한 여자였다.

 

하지만 신 회장이 사채업자가 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다.

 

“주무세요. 그리고 밤늦게 혼자 술 드시지 마시구요.”

 

“알았다.”

 

“진국 도련님은 효자시라니까요.”

 

“아침에 뵐게요.”

 

황녹주가 진국을 안내했다.

 

“그 동안 분위기 좀 바꾸느라 내부 인테리어 좀 했어요.

 

방 위치도 바꾸고 그래서 예전에 쓰시던 방이 바뀌었습니다.”

 

황녹주가 안채 쪽의 맨 끝 방으로 안내를 했다.

 

“어머니께서 도련님 오시면 이 방을 쓰게 하시라고 특별하게 신경 쓰셨어요.”

 

방의 불을 밝혔다. 별채에서처럼 북한산이 올려다 보였다.

 

북한산 마루에 걸린 달이 훤히 보였다.

 

방안에는 작은 미니 바도 있었고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저랑 술 한잔 더 하실래요?”

 

황녹주가 방을 나서기 전 진국에게 제안을 했다.

 

“도련님 뵙는 것도 오랜만이고 반갑고 해서 말이에요.”

 

“네, 그러죠.”

 

“그럼, 침모가 회장님 잘 보필하는 지 확인만 하고 오겠습니다.”

 

침모. 신 회장과 황 녹주와 진국 자신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또 사람들이 있었다니.

 

신 회장은 늘 조용히 움직였다.

 

그래서 조용한 사람들을 골라 썼다.

 

집안 어딘가에 사람들이 있다고 느낄 때면 가끔 소름 끼치곤 했다.

 

진국이 집을 나간 이유에 그런 점도 없지 않았다.

 

진국은 일단 신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못 갈 거 같아. 어머니께서 하루라도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해서 말야.”

 

“전 괜찮아요. 요즘 어머님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애교라도 좀 부리고 그러세요.”

 

진국은 통화를 끝낸 후 욕실로 향했다.

 

속옷까지 모두 벗어 소파 등받이에 걸쳐 놓은 후 욕실로 들어갔다.

 


진국은 샤워기 꼭지 아래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곤 찬물을 틀었다. 차가웠지만 참을 만했다.

 

이제 어떤 방법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간단 말인가.

 

진국은 눈을 감았다.

 

찬물은 가슴을 지나 배를 훑고 허벅지 아래로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저 정도라면 호천수 회장 역시 우리에게서 손을 떼겠다고 하겠네.’

 

머리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차 사장이 사옥을 이사한 비용에서 떼어줄 돈으로는 6개월 정도의 체류 경비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코지’가 없다면 결국 중국 팀원들은 독립을 하거나 일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코지’에 남아 중국 팀원들이 성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진국은 머리를 저었다.

 

찬물로 샤워를 하느라 정신과 몸은 맑아졌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어머니 말대로 그냥 이쯤에서 포기해야 옳은 일일까?’

 

진국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새 속옷입니다.”

 

진국은 깜짝 놀랬다. 욕실 앞에 황녹주가 속옷을 들고 서 있었다.

 

황녹주의 눈길이 진국의 아랫도리로 향했다.

 

진국이 황급히 수건으로 아랫도리를 가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진국이 속옷을 챙겨 입고 가운을 걸친 채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황녹주는 진국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술과 안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노크라도 하고 들어오시지요.”

 

“늘 비어 있던 방이라 깜빡했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주무세요?”

 

“잠자리에 드시긴 하셨는데 잠을 이루실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도련님, 회장님 말씀에 따르세요.”

 

“누님도 제 성질 아시잖아요. 저는 결코 포기 못합니다.”

 

“누님이라는 소리도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황녹주가 술잔에 술을 따르며 미소를 지었다. 삼 냄새가 났다.

 

“인삼주예요.”

 

“이런 거 말고 맥주는 없습니까?”

 

진국이 소파에서 일어나 냉장고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칸은 맥주 캔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진국은 캔 맥주 두 개를 꺼냈다.

 

“도련님도 이제 몸 생각하셔서 좋은 술 드셔야죠.”

 

“아직 서른도 안 넘었는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해야겠어요.”

 

“우리 나라 100대 CEO의 평균 기상 시간이 몇 시인 줄 아십니까?”

 

진국은 고개를 저었다. 캔 맥주의 뚜껑을 딴 후 두어 모금 들이켰다.

 

“새벽 5시 30분입니다.

 

그리고 주량은 맥주 두 잔 정도, 하루 취침량은 6시간, 운동은 2시간……”

 

진국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쉬폰 소재의 원피스 위에 겨자 빛의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쉬폰 소재가 두껍지 않고 힘이 없다보니 옷이 그녀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1년 동안 못 본 탓인지 아니면 그녀가 새롭게 변한 것인지

 

이제는 그녀가 가족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 말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활을 관리해야 그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도련님도 이제 서서히 생활을 관리하셔야 해요.”

 

“왜요?”

 

“회장님 뒤를 이으셔야죠.”

 

“그럼, 저 보고 돈놀이나 하라는 말씀입니까?”

 

황녹주가 술잔을 들며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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