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504)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10

오늘의 쉼터 2015. 4. 22. 17:42

(504)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10

 

 

 

 

 

유미는 엄마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유미는 그해 1월, 잔인한 달에 잉태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유미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고 있었을까?

 

유전자 테스트 결과, 윤규섭과 유병수가 자신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미에게는 그게 너무도 궁금했다.

 

일기에는 그런 진실이 나와 있지 않았다.

 

다만 일기에서는, 엄마가 유병수와 윤규섭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칼이 섰다.

 

그렇다면… 엄마는 쇼를 하고 있었던 걸까?

 

남아 있는 한 가지 진실이 유미를 혼란과 충격에 빠트렸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조두식이 아버지?

 

어떡하든 유전자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두식의 유전자 샘플과 자신의 유전자 샘플이 일치하여

 

그가 친부임을 증명하는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렸다.

 

어떤 공포 영화보다, 어떤 스릴러 소설보다 더 무서운 결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결말이기에 더 무서웠다.

 

의붓아버지 조두식이 친아버지라니.

 

유미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피가 저주스러웠다.

 

그 길로 유미는 정효 스님에게로 달려가 속세를 등지고 산속에서 살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 잉태의 비밀을 엄마가 알고 있었을까?

 

조두식은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신만이 알고 있었을까?

 

엄마의 일기는 그 부분에서 친절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 스스로는 유미가 유 의원의 아이라고 믿고 싶었던 걸까? 

 


‘1974년 2월 27일

아이의 백일 사진을 유 의원에게 보냈다.

 

작년 이맘때 총선에서도 당선된 그는 내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한다고 생각할까?

 

아이는 유 의원을 닮은 것 같다. 어쨌든 난 보란듯이 잘 키울 거다.’
 

 

‘1974년 4월 15일

부산에 땅을 사러 왔다며 윤규섭이 찾아왔다.

 

아이를 업고 나갔더니 아이를 유심히 보았다.

 

아이의 가마가 쌍가마라며 쌍가마는 집안의 내력인데,라고 중얼거렸다.’
 

‘1974년 5월 10일

윤규섭이 자투리 땅을 줄 테니

 

아이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거론하지 말라는 각서를 쓰게 했다.’
 

‘1982년 7월 25일

아이가 조두식을 너무도 싫어한다.

 

그래도 가끔은 난 그가 없는 거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조두식은 야비하지만 머리가 좋다.

 

그가 가끔 내 귀에 속삭인다. 복수란 단어를.’

글에서 단서를 찾으려 해도 엄마가 조두식을 유미의 아버지라 믿거나 언급하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조두식은 감방에서 또 얼마간 썩어야겠지만

 

유미는 이 저주스러운 천륜을 언젠가는 조두식에게 알려야 할 거라 생각한다.

 

그의 반응은 어떨까? 설마 꿈에도 유미가 자기 친딸일 줄 몰랐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끝내 그렇게 야비하고 냉정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또 다른 영상이 며칠간 유미의 뇌리에 떠올랐다.

 

언젠가 조두식이 유미 집에 와서 유미가 차려 준 고등어찌개를 먹으며

 

너 같은 딸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쓸쓸히 말한 적이 있었다.

 

헤어지면서 유미를 안고 등을 토닥여 주기까지 했었다.

 

그때 유미는 왠지 그의 손이 참 따뜻하다고, 뜬금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늙어 가는 그가 처음으로 잠깐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짐승도 아닌 인간이라면 천륜의 느낌이 있었을 텐데….

 

언젠가는 조두식에게 고백할 그럴 날이 올까?  

 

하지만 그런 날이 예상보다 빨리 왔다.

 

조두식과 면회가 가능하게 되었을 때 유미는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들고 그를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