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7
두 남자가 이번에는 유미에게 돌아섰다.
유미는 저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남자가 유미에게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왔다.
“바로 처리하긴 아까운데?”
유미가 겨우 비명을 지르자
남자가 유미의 턱을 손으로 잡고 들어올리며 윽박질렀다.
“조용히 못해! 입에다 뭘 물려줄까?”
남자가 느물거리며 바지 지퍼를 내리는 기색이자 유미가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유미의 뺨을 때리며 식탁 위에 있던 재갈을 유미 입에 물렸다.
그리고 헝겊으로 눈을 가렸다.
칼을 든 남자가 다가와 유미의 목에 칼을 댔다.
섬뜩하고 날카로운 촉감이 목에 선연하게 느껴졌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유미는 눈을 감아버렸다.
한순간 유미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짧은 순간, 아등바등 살아왔던 인생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르고 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듯 파국을 향한 체념과 허무감이 밀려왔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편안해질까?
갑자기 병 속의 새 한 마리가 떠올랐다.
병을 깨뜨리지도 못하고,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도 없는 인생이 죽음을 통과하면
한없이 자유로워질 것도 같았다.
유미는 병 속의 흰새 한 마리가 병의 입구를 빠져나가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모습을
눈을 감고 그려보았다.
그러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뺨으로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희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때 갑자기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꼼짝마라! 경찰이다!”
분명히 누군가 그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순간, 살았다란 생각이 들고 유미는 잠시 정신을 놓았다.
잠깐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어느새 사태는 정리가 되었는지 주위는 좀 조용해졌다.
누군가가 다가와 묶인 몸을 풀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재갈과 눈의 헝겊을 벗겨 내주었다.
실내는 모든 집기가 무너진 채 엉망이었지만 사태는 이미 평정이 되었는지 조용했다.
유미는 눈이 부신듯, 멍하니 꿈속 같은 현실로 돌아와 실내를 바라보았다.
경찰로 보이는 낯선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눈앞에 수익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유미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웃고 있었다.
수익의 그 미소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환하고 고마워서 유미는
저도 모르게 수익의 품으로 무너졌다.
유미의 떨리는 몸을 수익이 꼭 껴안고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이제 괜찮아.”
유미의 몸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빠져나오듯 속울음이 빠져나오려 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큰일 날 뻔했어요. 차로 가시죠.”
경찰인 듯한 사내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유미가 겨우 말문을 열어 물었다.
“오랫동안 추적이 쉽지 않았던 마약밀매와 청부폭력 조직을 검거했어요.
여죄를 더 추궁해야겠지만, 새끼들 질이 안 좋아요.”
사내가 말했다. 수익이 유미를 부축했다.
“어떻게 된 거야? 수익씨는 괜찮은 거야?”
수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가 수익의 귀에 속삭였다.
“고마워. 날 구해줘서.”
“유미씨, 이제 걱정마.”
수익이 다시 유미의 어깨를 감쌌다.
유미가 떨리는 발걸음을 떼려 하는데 무언가 발길에 툭 차였다.
그건 엄마의 낡은 일기장이었다.
조두식이 건네주었지만 겨우 첫 페이지만 읽었던…
유미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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