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505)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11

오늘의 쉼터 2015. 4. 22. 17:45

(505)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11

 

 

 

 

 

구치소 면회실에서 조두식을 만났을 때 그는 초췌해 보였다.

 

흰머리가 섞인 장발과 수염이 제멋대로 자란 늙고 초라한 사내.

 

유미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조두식은 멋쩍어서인지 히죽거리며 입가에 웃음을 물고 있었다.

“뭐 하러 오냐? 쪽팔리게.”

“왜 그러신 거예요? 제게 왜 그러신 거예요?”

뜬금없이 유미의 첫마디가 그렇게 나오자

 

그는 유미에게서 눈길을 거두더니 말했다.

“미안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유미가 결심한 듯 물었다.

“정말로 모르셨어요? 짐승도 아니고 정말로 모르셨던 거예요?”

유미가 재차 묻자 조두식이 눈을 들어 무슨 뜻이냐고 묻는 듯했다.

“내가 당신 딸이라는 거 정말 몰랐냐고요!”

“무슨 소리냐?”

유미가 핸드백에서 서류를 꺼내 펼치며 이를 갈며 물었다.

“믿을 수는 없지만 당신이 내 친아버지라는 거….”

유미는 눈물이 터질 거 같아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순식간에 조두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난 당신을 아버지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용서할 수 없어. 아버지라 부르지 않을 거야.”

유미가 고개를 흔들며 완강히 말했다.

 

조두식의 눈이 점점 커졌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짐승처럼 포효하며 날뛰었다.

 

그가 끌려 나가고, 면회는 중단되고 유미는 면회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틀 후 유미는 조두식이 구치소 내에서 자살을 기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지만 유미에게 남긴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조두식이 남긴 유서를 보았을 때,

 

유미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에게.

짐승만도 못한 아비를 용서해라.

 

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출세와 체면 때문에 유병수와 윤규섭이 공모해서 네 엄마를 짓밟았다는 걸

 

너에게 말했을 거다. 실제로 나는 그들의 하수인이었다.

 

그들은 나를 돈을 주고 매수해서 네 엄마를 세상에 못 나오도록 처리하라 했지만

 

난 네 엄마를 좋아했었다.

 

다만 네 엄마는 아이가 정말로 유 의원의 아이라 믿는 듯했고

 

나 또한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네 엄마는 나를 이용해 윤규섭과 유병수를 간혹 괴롭히며 모종의 복수를 했다.

 

어찌 보면 나는 네 엄마의 복수극에 놀아났고 배신당한 희생자인지도 모른다.

 

내가 끝까지 비밀에 부쳤던 사실, 내게 강간당하고 짓밟혔던 일이

 

 유 의원이 고의로 계획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네 엄마가 목숨을 끊은 것 같다.

 

그 또한 내 잘못도 있지만 우리 두 사람 간의 죄는 공모와 배신을 주고받으며

 

서로 상쇄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어리석은 아비로서 평생 너를 괴롭힌 이 저주받은 운명과 죄는 너무 무겁구나.

 

너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죽음으로나마 사죄하고 싶구나.

 

세상은 내게도 참 잔인한 세상이었다.

 

나 또한 인간답게 살고 싶었으나 짐승보다 못한 한 생을 살다가는구나.

 

이 노구를 감옥의 찬 바닥에 부리며 천수를 누리고 싶지 않다.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나를 용서해라.’

‘어찌 보면 나는 네 엄마의 복수극에 놀아났고 배신당한 희생자인지도 모른다.’

 

유미는 이 부분의 글에서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의 초라한 변명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