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마지막 눈물-16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유미는 잠깐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윤동진이었다.
유미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헬로우’라고 말하며 전화를 받았다.
윤동진도 예의 정중하고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했다.
“로즈, 미술관 전시 오픈 때 뵙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서울에 오셨다고 들었는데….”
“죄송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혹시 많이 기다리셨나요?”
“물론 당연히. 계시는 동안 한번 뵙고 싶습니다.
저도 바빠서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겠지만.”
“왜 그렇게 저를 보고 싶어하시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거라면 다니엘 갤러리 측에 잘 전달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윤동진이 잠깐 망설였다.
“으음…. 솔직히 말하면 언론에도 노출되지 않은 미지의 실력자
여성분이라 개인적으로 뵙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호기심이 많으시군요.”
“미술관 같은 창의적인 사업에는 그게 필요하죠.”
“좋아요. 내일 저녁 아홉시 저녁식사는 각자 하고 잠깐 만나죠.”
“저녁 아홉시요?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건 어떠신지?”
“저녁식사는 바빠서 사양하겠어요.
공식적으로 노출되는 게 싫으니 제가 머무는 호텔의 룸으로
잠깐 들르실 수 있으면 그렇게 하시고 어려우면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호텔과 룸 넘버를 알려주시면 시간 맞춰 그리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유미는 9개월 만에 재회할 윤동진을 떠올렸다.
윤동진이 로즈를 만나려고 하는데는 복잡한 심사가 작용할 것이다.
윤조미술관의 해외거장전은 로즈갤러리 개관 다음 날 예정대로 열렸다.
그러나 모든 관심을 로즈갤러리가 하루 전에 선점해버리는 통에 김샌 전시 꼴이 되었다.
두루 구색을 갖춘 작품을 내건 윤조미술관에 비해 로즈갤러리는 몇 점이라도
가장 확실한 이슈가 될 작품만 걸었기 때문이다.
윤조미술관에서는 유미가 구매를 도와 준 데미안 허스트의 ‘나비’가 전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데미안 허스트는 로즈갤러리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할
‘신의 사랑을 위하여’란 해골바가지를 들고 로즈갤러리의 개관식에 참석했다.
그는 다음 날 윤조미술관 오픈 때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는 에릭과 함께 작품 취재를 위해 시골로 떠났고 다니엘은 유미와 함께 제주도에 있었다.
게다가 박용준의 전화에 의하면 윤조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 위작이라는
의혹이 은연중에 일고 있는 듯했다.
한 미술잡지 매체에서 조심스레 제기된 이 문제에 윤조미술관 측에서는 상당히
민감하고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재벌 미술관의 이미지 때문에 진실을 규명하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쉬쉬하고 있을 것이다.
유미는 윤동진과 처음 만났던 특급호텔에 전화를 걸어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다음 날 유미는 윤동진에게 문자로 호텔명과 룸넘버를 찍어보냈다.
약속시간이 되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유미가 영어로 말했다.
“문 열려 있어요.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윤동진의 발자국이 카펫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접실 소파에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윤동진은 소파에 앉아서 탁자에 놓인 두 개의 붉은 와인잔을 바라보며
로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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