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마지막 눈물-14
사양이 비친 탓인지 바다는 은빛이었다.
뜨거운 욕조의 물 탓인지 와인 탓인지 온몸이 이완되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갤러리 개관에 쏟아부은 열정과 긴장이 다 풀려 나가는 것 같다.
손끝 발끝의 말초 신경까지 피돌기가 느껴지며 몸이 따스해졌다.
유미는 저절로 가는 신음을 흘리며 다니엘에게 온몸을 기대었다.
다니엘의 몸 또한 따스해졌다.
유미를 등 뒤에서 안은 다니엘이 유미의 귓불에 키스했다.
그의 뜨거운 입술을 느끼며 유미는 눈을 감았다.
다니엘의 손이 유미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생각 같아서는 마구 흥분이 될 거 같은데 이상하게 다니엘의 손길에는
흥분이 잘되지 않는다.
다니엘이 유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로즈, 우리 결혼하면 이곳으로 밀월여행을 다시 올까?”
“전 오늘 우리가 꼭 밀월여행 온 기분인 걸요.”
그의 심벌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유미는 해 지는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한 쌍의 물고기처럼 누군가와 욕조에서
물을 튀기며 격렬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잠깐만.”
다니엘이 일어서려 했다.
“그냥 있으세요. 전 괜찮아요.”
유미는 모르는 척했지만 다니엘이 비아그라를 복용하려는 걸 알고 있다.
다니엘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유미는 다니엘에게 키스했다.
“저를 그냥 꼭 안아 줄래요? 따스하게….”
다니엘이 유미를 품 안에 두 팔로 꼭 안고 유미의 긴 머리칼에 코를 박았다.
유미는 차갑게 번들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다니엘에게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 따스해. 다니엘, 저는 늘 추웠어요.”
다니엘이 더욱더 유미를 꼭 껴안았다.
“당신은 정말 따스한 남자예요. 우린 서로 아주 많이 닮았어요.”
“그래? 우린 머리칼도 눈 색깔도 다른데?”
“우린 참 닮은 소울메이트예요.
요즘 깨달은 건데 나도 당신을 참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껴요.”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린데?”
“다니엘과 나는 가슴에 큰 구멍이 하나씩 있는 사람들이에요.
다니엘이 엄마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정말 다니엘을 엄마처럼 가슴으로 안아 주고 싶었죠.
다니엘, 내게는 아버지가 없어요. 물론 나를 잉태시킨 남자가 분명 있겠지요.
난 예전부터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이 든 남자를 보면 혹시 내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답니다.
언젠가 해외 뉴스를 보는데 어떤 남자가 젊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그 여자가 바로 수십 년 만에 만난 딸이었대요.
부녀지간에는 유난히 생물학적으로나 성적으로 끌리는 DNA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대요.
저는 오히려 거꾸로 나를 사랑하는 나이 든 남자를 보면 늘 미지의 아버지를 상상한답니다.
내 아버지도 이렇게 매력적이고 멋진 남자일 거야.”
“내가 유미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절대 아닐 테고.
그 말의 의도는 내가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다니엘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오오,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에요,
다니엘. 내게 있어 상상 속의 아버지란 얼마나 멋진가를 이야기하려 했던 거였어요.
내가 다니엘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유미는 진심으로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진심으로 말한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처음엔 다니엘을 이용하기 위해 유혹을 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다니엘을 또는 자신을 속일 필요가 있을까.
요즘 유미는 유혹이 종착역인 삶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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