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마지막 눈물-5
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건, 지금에 와서는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포식자의 거미줄에 든 작고 힘없는 곤충이 아닐까 싶다.
이제 누굴 원망하고 또 누굴 용서하고 하겠니.
내가 그때 죽었어야 하는데. 그러면 그때 깨끗하게 끝났을 텐데.”
유미가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그런 소리 하지마! 살아! 살라구!
이유진 넌 한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다시 태어났어.
보란 듯이 예술가로 끝까지 살란 말이야.
이제부터 이유진이 파리 목숨처럼 의미 없이 살면 내가 정말 너 죽여 버릴 거야.”
입에서는 앙칼진 말이 나오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유진이 휠체어를 당겨 유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유진이 유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한때는 고통에 겨워 남몰래 흘리던 눈물을 인규가 닦아 주었다.
이제 유진이 유미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다.
이 무슨 잔인한 생의 아이러니인가.
유미는 유진의 힘없는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사진을 계속 찍어. 이제부터 삶의 이유를, 목표를 예술에서 찾아.
내가 오빠를 살릴 거야. 이제부터 내가 오빠를 키울 거야.”
고개를 든 유미가 눈물을 훔치고 유진에게 말했다.
“나 이제부터 안 울 거야. 이게 마지막 눈물이야.
마지막 눈물을 왠지 오빠에게 뿌려대고 싶었어.
대신 약속해줘. 다시 일어서겠다고.”
유진은 아무 말 없이 유미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지만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유진의 집을 나오자 어느새 짙고 푸른 밤의 기운이 대기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 밤은 내일 새벽 또 다른 새날을 잉태할 것이다.
유미는 애써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새날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니엘과 며칠 지내는 동안 유미는 그와의 결혼에 대해 고민했다.
아버지뻘의 화랑재벌인 그와의 결혼은 유미에게 귀한 그림들과 막대한 부를 안겨줄 것이다.
윤 의원이 생부인 줄 믿고 있다가 아니라는 판정이 나자 유미는 허탈했다.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기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목마름은 이상하게 더 외로움을 자극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미친 척하고 다니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결혼할까?
그러나 결혼이 돈 많은 아버지와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다니엘은 결혼하면 유미가 철저하게 자신의 여자이길 원했다.
더 큰 문제는 다니엘이 유미에겐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의 조건이 뭐죠?”
“내가 눈감을 때까지 내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어야 해.
계약연애 때처럼 그런 사랑의 모험이나 장난 같은 건 용납 못해.”
“난 한국에 화랑 사업을 시작했잖아요. 아시잖아요.”
“다 접고 여기 와야지. 여기서 나와 함께해야 해.
돈 때문이라면 집에서 나만 기다리며 놀아도 그림 파는 거보다는 훨씬 더 줄 수 있어.”
“나 돈 무지 좋아해요.
하지만 내게 자유와 사랑이 없다면 그저 황금감옥에 갇힌 돼지일 뿐이에요.
다니엘, 이번에 계약연장 하고 결혼은 좀 더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내가 원하던 사업을 겨우 시작해놓고 그만둘 수는 없어요.”
“일이 그렇게 좋아? 로즈는 특별한 여자야.
종이장미 같은 여자들과는 다른 야생장미 같은 여자야.
하긴 그런 로즈의 생명력과 열정을 내가 좋아하긴 하지만.”
“다니엘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내게는 아빠고 연인이고 또 아들이에요.
하지만 결혼은 아무래도 내게는 구속이에요.
그리고 내 나라를 등지고 평생 여기 살 수 있을지 그것도 좀 생각을….”
유미의 말에 다니엘은 더욱더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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