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마지막 눈물-4
인규는 유미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하다고 속삭였다.
그러며 ‘돌아오라 소렌토’를 불렀다.
유미는 집들 사이의 운하 같은 바다를 곤돌라를 타고 빠져나가며,
인규씨 살아서 다행이야, 라고 말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돌아오라’가 계속 늘어지게 반복되고 있을 때
언뜻 휴대폰 벨소리를 들었다.
인규의 익사체를 강에서 건져 올렸다는 지완의 떨리는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인규의 자살로 지완은 생각보다 큰 충격에 빠져 내내 울었지만,
유미는 그 앞에서 울지도 못했다.
결국 인규를 죽음으로 내몬 게 자신이라는 자책에 남몰래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다는 건, 모두가 익사의 운명에 처해 있는 것 아닐까?
유미는 도저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닥친 자신만의 인생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부단히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인규의 장례식을 마치고는 사업진행상 파리로 날아가야 했다.
다만 유미가 남몰래 할 수 있었던 일은 정효 스님을 찾아가 인규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사십구재를 부탁한 것이었다.
정효를 만나서 처음으로 유미는 통곡을 쏟아 내었다.
에릭의 집에서 잔 다음 날 유미는 경매가가 너무 높게 올라간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포기했다.
대신에 에릭의 소개로 데미안과 통화해서
그가 다른 작품을 적정가에 주겠다는 약속을 전화로 받아냈다.
유미가 원하는 대로 일은 착착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유미는 내내 우울했다.
파리에 도착하자 유미는 다니엘의 집으로 가는 대신에 이유진의 아파트로 갔다.
왠지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향했다.
유진은 집에 있었다.
현관에 서 있는 유미를 보자 유진은 말없이 휠체어를 옆으로 이동해서 유미를 들어오게 했다.
집 안에 이자벨은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으라고 권한 유진은 휠체어를 굴려 부엌의 낮은 식탁으로 가서 커피를 만들어 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솜씨 좋은 유진의 커피를 마시자 유미의 눈이 촉촉해졌다.
“커피 맛있다. 옛날처럼.”
“그래, 옛날처럼.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유미가 유진의 말을 따라 했다.
“오빠.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어디쯤으로 돌리고 싶어?”
“글쎄. 너를 만나기 전으로…?”
“그래. 우리, 악연이지?”
“넌?”
“난 탄생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어.
처음부터 거미줄에 걸려서 허우적대며 살 바에는.
나를 옭아매고 있는 운명이란 것이 이제는 무서워.”
유진이 어두운 안경 너머로 유미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수익이한테서 전화 받았다.”
인규의 얘기라는 걸 알자 유미의 눈에서 이슬처럼 맺혔던 눈물이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그 사람, 오빠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죽진 않았을 텐데….
내가 죽어야 하는데.”
“자책하지 말아라.”
“오빠의 사랑이 식은 줄 알고 그 사람을 이용했던 것도 나고,
사건에 끼어들게 만들어 결국 그 사람 죽게 만든 것도 나고.
그 사람, 내가 오빠를 죽이고 나서 두려움과 공황상태에서 한없이 울던
내 눈물을 닦아주던 사람인데.
난 그 일을 겪고,
살인의 피를 묻히고 나서 오히려 더 강하고 대담하게 살자고 이를 악물었어.
하지만 이제 왠지 삶의 전의를 다 잃은 느낌이야.”
“그 사람 일은 정말 안됐어.”
“그 사람 그렇게 되니까 속이 시원해?”
유미가 눈을 들어 원망의 빛을 담아 물었다.
“차라리 그 사람 대신에 내게 테러를 하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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