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474)마지막 눈물-1

오늘의 쉼터 2015. 4. 22. 16:25

(474)마지막 눈물-1 

 

 

 

 

 

 

에릭이 차갑게 칠링한 샴페인을 따서 잔에 따랐다.

“축해해요, 로즈!”

“고마워요. 다 에릭 덕분이에요.”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을 그 가격에 낙찰받을 수 있었던 건 대단한 행운이에요.”

“내일 데미안 허스트가 잘돼야 할 텐데….”

“최후의 방법도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에릭이 잔을 부딪쳐 오며 살짝 윙크를 건넸다. 가슴이 짜르르, 했다.

 

샴페인의 자극적인 기포 탓일까. 하이드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 지역의

 

고급아파트에 여름밤의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오늘 에릭은 시내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 유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손에 넣고 싶었던 작품의 경매 일정에 맞춰 1박 2일로 런던에 온 유미를 밤에 호텔이 아닌

 

자신의 집으로 부른 게 유미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에릭은 늘 절제된 감정과 다정한 매너로 유미를 대해 왔었다.

 

지금껏 만나왔던 어떤 상대보다도 고수로 보이는 이 남자와 보낼 오늘 밤이 살짝 긴장되었다.

 

음악조차도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틀어놓은 이 남자.

 

샴페인은 의외로 빨리 취하고 기분을 업시키는 술이다.

 

서로 조용히 말없이 바라보고 있지만 볼레로 음악처럼 점점 숨 가쁘게 감정이 고조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침묵을 깨고 에릭이 물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세요?”

“글쎄요….”

유미가 여운을 남기며 대답했다. 대신에 에릭의 눈을 바라보았다.

 

에릭은 샴페인을 한 모금 머금은 입술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미는 며칠 전에 다니엘의 파리 집으로 돌아왔다.

 

다니엘은 오랜만의 해후에 예상외로 외로운 강아지가 주인을 반기듯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얼굴도 왠지 기운 없고 수척해 보였다.

 

족보 좋은 비싼 강아지도 주인의 사랑을 못 받으면 털부터 추레해지는 걸까?

“다니엘, 그동안 어떻게 지냈길래, 얼굴이 좀 수척해졌네요.”

“로즈, 당신이 없으니까 입맛도 없고 살맛도 안 나더라고. 당신이 없는 동안 난 확실히 깨달았어.”

“뭐를요?”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걸… 나, 당신이 없으면 안 되겠어.”

그러며 다니엘은 유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 아이처럼 왜 그래요. 필요할 때면 당신 곁에 제가 있잖아요. 계약 연장하면 되죠.”

다니엘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유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로즈, 우리 결혼하자.”

“네? 계약약혼은 어쩌고요? 재계약하자고 오라 그랬잖아요.”

“로즈가 없는 동안에 깊이 생각해 봤는데, 나 로즈와 결혼하고 싶어.

 

내 인생 이제 얼마나 남았다고 이리저리 재겠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끌리는 대로 살고 싶어.”

“저는 이대로도 좋은데. 다니엘이야말로 결혼 싫어하잖아요.

 

자유로운 관계에, 필요할 때엔 사업파트너도 되고 이대로도 좋잖아요.”

 

“그랬었지. 하지만 로즈가 좋다면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고 싶어.”

“글쎄요… 저도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하겠죠.”

유미는 파격적인 다니엘의 제안에 신중하게 대처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다니엘이 유미를 안았지만 그의 남성은 내내 소심하고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유미의 ‘립서비스’에 만족한 다니엘이 유미의 품에서 아이처럼 잠들자

 

유미는 가만히 한숨을 지었다.

 

어머니의 충격적인 죽음을 보고 이홉 살에서 성장을 멈춘 아이 같은 남자….



다니엘의 생각에 빠진 유미에게 에릭이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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