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 도약 17
인규가 저지를 일이 현실이 아니길 바랐다.
사실 유미는 연락이 되지 않은 인규에게 메일을 보냈었다.
혹시라도 그가 메일을 열어 본다면 이유진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
하지만 수신 확인이 안 된 상태였다.
문자의 내용으로 봐도 인규가 메일을 읽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차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수익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굳어 있는 유미의 얼굴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운전에 몰두했다.
유미의 직감이 맞다면 인규는 ‘베네치아’ 분점을 내려고 했던 강가에 있을 것이다.
조금씩 이성을 찾게 되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완에게 연락해야 할까? 하지만 인규가 보낸 문자를 뭐라 핑계댈 것인가.
아니면 내가 먼저 인규를 찾은 다음에 연락을 할까.
인규는 자신이 모든 것을 떠안고 떠나겠다고 했다.
평소 인규의 불같은 성격이라면 어쩌면 인규는 이미 물귀신이 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규가 아직도 강가를 서성거리며 망설이고 있다면….
그렇다면 유미는 인규를 홀로 만나고 싶다. 지완에게 끝까지 탄로나지 말아야 한다.
인규도 그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인규의 목숨이 달려 있는 비상사태다.
유미가 갈등하다가 지완에게 전화를 할 결심을 했을 때 마침 지완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 지완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유미야, 애들 아빠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좀 전에야 봤지 뭐니.
유서 같은 문자야. 애들 잘 부탁하고 또 행복하라며….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싶다나 어쩐다나.
지금 경찰에 연락해 놓고 양평으로 달려가고 있어.
어쩌면 좋으니, 유미야.”
“그래? 별일 없을지도 모르잖아. 지완아, 일단 침착해.
나도 갈게. 거기 정확한 주소를 대 봐.”
유미는 전화를 끊고 방금 전에 인규에게서 온 문자를 지웠다.
유미는 전에 인규와 한 번 온 적이 있는 강변을 떠올렸다.
인규는 땅을 샀다며 베네치아의 꿈에 대해 유미에게 자랑 삼아 얘기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지완의 차와 경찰 차가 보였다.
지완은 강변에서 경찰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미는 차를 세운 뒤 고수익에게 차에서 기다리라 그러고 지완에게 다가갔다.
“인규씨는 어떻게 됐니?”
“몰라. 모르겠어. 나도 좀 전에 왔어.
경찰이 마신 지 얼마 안 되는 소주병을 찾았대. 담배꽁초도.”
“너무 걱정마. 그게 인규씨 거라는 증거가 있어?”
유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우선 지완을 위로하고 보았다.
“그러게…. 결정적인 증거야 시신을 찾아내는 거겠지.
그런데 인규씨가 꼭 장난을 친 거 같아. 믿을 수가 없어.
다들 속았지, 그러며 웃으면서 나타날 거 같아.”
유미도 예전에 장난을 잘 치던 인규가 그렇게 나타나길 바랐다.
여름 햇살에 흘러가는 강물의 물비늘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저걸 인규가 한 시간여 전에 보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강물도 햇빛도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유미의 뇌리에는 인규와 함께 바라보던 베네치아의 물빛이 순간 어른댔다.
‘인규씨,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무구한 얼굴로 웃으며 돌아와.’
수익은 차에 앉아 강변의 두 여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유미는 강변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는 유미의 오르내리는 등이 깊은 한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유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수익은 사태를 짐작할 수 있을 거 같다.
황인규. 한때는 그가 쫓던 남자였다.
유진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그를 추적해 왔었다.
수익은 이곳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난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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