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 도약 15
유미는 열려진 병실 안으로 유 의원이 누워 있는 걸 보고 있다.
곁에는 아마도 간병인인지 늙수그레한 여인이 앉아서 물수건으로 그의 손을 닦아 주고 있었다.
유 의원은 어린 아기처럼 무력하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약간 수척하고 눈자위는 퀭했으나 혈색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유미가 다가가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간병인이신가 본데….”
“그런데 누구세요?”
“예, 저는 이 분이 친딸처럼 예뻐해 주셨던 유 의원 따님인 지완이 친구인데요.
아버님이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는 얘기 듣고 지나다가 잠깐 문병 왔어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아, 그러세요? 이제 좀 웬만하시니까 요즘엔 식구들이 매일 들르지도 않으셔요.
내일이나 오시려나. 그나저나 알아보시려나? 영감님!”
유 의원이 눈을 떴다.
“아버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유미예요.”
그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떠올랐다.
“말을 못하세요. 어쩌다 버벅거리긴 해도.”
“제가 누구인지 아시면 고개를 끄덕여 보세요. 아니면 눈을 깜빡이시든가요.”
유미가 유 의원의 손을 잡았다. 나무 등걸 같은 힘없는 손이 잡혔다.
“얼른 일어나셔서 제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셔야죠.”
아빠, 네가 바로 평생 그리워했던 내 딸이다, 이렇게 말이죠.
이 말이 입속에 맴돌았다.
유 의원이 힘들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눈을 힘겹게 깜박였다.
그 통에 그의 한쪽 눈에서만 힘없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순간 유미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옆에 간병인이 아니라면 유 의원을 흔들며 소리를 치고 따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유미는 냉정을 되찾았다.
“아버님, 저를 딸처럼 사랑하셨잖아요.
저는 아빠를 그리면서 엄마랑 얼마나 외롭게 살았는지 몰라요.
전 옛날부터 아버님이 꼭 우리 아빠 같았어요. 정말요.”
유미의 목소리가 축축해지자 유 의원의 눈빛도 슬픔에 잠기는 듯했다.
그가 뭐라고 입술을 달싹였으나 말이 되지는 못하고 힘없는 바람처럼
가늘게 공기를 흔들고 지나갔다.
간병인도 있고 감정이 격해지려고 해서 유미는 일단 병실을 나왔다.
병원의 식당가로 내려와서 아침으로 설렁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한 숟갈 떠 삼켰다.
목이 메고 아팠다.
눈물을 꾹 참으려니 대신 콧물이 나왔다.
유미는 휴지로 코를 닦아 가며 설렁탕을 억지로 먹었다.
유 의원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이나 눈빛은 말보다 정확한 의중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병인이 마실 주스를 사 가지고 다시 병실로 올라가니 여자가 아는 체했다.
“방금 잠드셨어요. 근데 아빠를 일찍 여의었나 봐요.
영감님을 아빠처럼 따르니….
나도 딸이 두 살 때 과부가 돼 그 심정 알아요.
우리 딸도 맘씨 좋은 아저씨는 다 자기 아빠라 그랬어요.”
“그러셨어요? 이 분 얼굴만 봐도 아빠 생각이 나요.
이거 애쓰시는데 드시고 혹시 볼일 있으면 저 잠깐 있을 테니 보고 오세요.”
주스 상자를 안기니 간병인이 히죽 웃으며, 그럼 그럴까 했다.
“안 그래도 은행 가서 일을 좀 봐야 되는데….”
간병인이 나가자 유미는 유 의원의 자는 모습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머리칼 몇 올을 채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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