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 도약 4
우승주의 도움으로 인사동 요지에 건물을 빌리고 화랑을 열 실무적인 준비를 진행시켰다.
화랑의 이름은 일단 ‘로즈 갤러리’로 정하기로 했다.
사실 다니엘 화랑의 지점 격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실무적이고 행정적인 문제들이 좀 복잡했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다니엘과 에릭과의 묘한 삼각관계식 협업과 동업으로 알짜배기 작품들을
취급할 수 있다.
실력 면에서도 유미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국내파 갤러리스트 우승주의 도움과 박용준이 빼돌린 고급 컬렉터들의 상세정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야흐로 제 2의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바쁜 중에도 유미는 유 의원이 입원해있는 병원에 문병을 갔다.
중환자라 가족들에게 엄격한 면회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지완네 가족들과 함께
면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유 의원은 링거와 온갖 기기들로 둘러싸인 채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뛰었다.
유 의원은 노인이지만 정치꾼답지 않게 깨끗하게 늙은 모습이었다.
“아빠!”
지완이 유 의원을 불렀다.
“아버지!”
지완의 오빠 지훈도 유 의원을 불렀다.
만약 저분이 나의 아빠라면…
유미는 그들이 부러웠다.
유 의원이 가늘게 눈을 떴다.
“아버님….”
유미는 입술을 달싹이며 겨우 그렇게 불러보았다.
유 의원이 유미 쪽으로 눈을 돌리는 듯했다.
그러나 눈빛은 희미했다.
유미는 가슴 속으로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절망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면회시간이 다 되어 물러나자 지완이 유미를 병원의 식당가로 데리고 갔다.
커피를 시켜놓고 두 사람은 잠깐 말이 없었다.
지완이 입을 열었다.
“저만해도 한숨 돌린 거야.”
“생명엔 지장 없으시니?”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제부터 장기전에 돌입할지 모르지.
몸을 잘 쓰지 못하고 말을 못하실지도 모른대.
좀 더 좋아지면 일반 병실에 갈 수도 있는데 지금은 좀 더 두고 봐야한대.”
“그래…황인규씨는 연락 전혀 안되고?”
“몰라. 아마 병원이나 시설에 있지 않을까?
시댁 쪽에 연락하면 알 수 있겠지.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이제 내가 뭐 연락할 일이 있니?”
지완은 유미가 황인규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하는 이유를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유 의원의 위급상황 때문에 인사 삼아 유미가 묻는 줄 안다.
유미 또한 지완과 인연이 끝난 시댁에까지 연락해서 인규의 거취를 물을 명분도 없다.
“근데 우리 아빠 저러다 갑자기 의사표현도 못하고 돌아가시면 유산문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직 유언장 작성했다는 소린 못들은 거 같은데.”
지완이 영악한 얼굴로 유산문제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빠가 갑자기 쓰러지기 며칠 전에 너 얘기를 묻더라.
그래서 내가 요즘 걔 한국에 없어요.
프랑스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러면 몇 년 동안 한국에 오지 않느냐고 물으시더라.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냥 쓸쓸한 얼굴이 되시더라.
그러며 늘 그렇듯이, 앞으로도 자매처럼 의좋게 지내는 친구가 되어라 그러시더라.
노인네 참…넌 어째 늙은 남자들한테도 인기가 좋니!”
지완이 살짝 눈을 흘기며 농담하며 웃었다.
유미는 말없이 웃어주었다.
유 의원 또한 언젠가 닥칠 죽음을 의식하고 유미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지완의 그 말에 유미는 점점 더 심증이 굳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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