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 도약 1
서울은 비에 젖어 있다.
8개월 만에 파리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마치 ‘비의 제국’에 입국하는 것 같았다.
곳곳이 푹 젖어 음습한 곰팡내가 나는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오니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인생의 근원도 마치 곰팡이의 서식지 같을 거라는
우울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로 시작하고 진취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도 사업이지만,
자신의 근원적인 문제도 확인하고 해결해야 했다.
미래의 청사진과 과거의 확인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며칠간 머릿속의 혼란이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유미는 차근차근 일을 풀자고 마음먹었다.
사촌 수민의 집에 들러 중요한 짐을 챙겨 시내의 레지던스 호텔에 방을 잡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호텔로 박용준이 찾아왔다.
용준은 와인 한 병을 사 들고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문을 열자마자
유미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쌤, 보고 싶었어요. 이 글로벌 시대에 사랑에만 국경이 있네요. 우리 얼마 만인지!”
하지만 유미가 용준을 부른 건 용준의 의중을 떠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깐, 숨 좀 돌리고. 와인 한잔할까?”
용준이 와인 코르크를 열고 유미가 잔을 내왔다.
“쌤, 이거 되게 비싼 와인이에요.”
“박용준 수준이 그새 많이 업그레이드됐네.”
유미가 와인병을 들어 라벨을 확인하자 용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가 이제 윤조미술관의 핵심적인 큐레이터잖아요.
특히 해외 업무 쪽으로는. 다 쌤 덕분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거기 뼈를 묻을 거야?”
“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좀 도와줄래?”
용준이 유미의 얼굴을 탐색하며 물었다.
“무슨 계획이 있으세요?”
유미는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요즘 윤조미술관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강 관장은 배가 남산만 해 가지고 오늘내일하고요.
쌤이 구매를 도와주신 작품들로 전시회 오픈해 놓고 곧 출산 휴가에 들어갑니다.
중요하고 비싼 작품들이라 진작부터 화제에 올라 있어요.
저도 그동안 준비하느라고 고생했는데 당분간은 좀 한숨 돌릴 만해요.
마침 쌤도 오셨으니 저도 멋진 휴가를….”
용준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유미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참! 용준의 초심은 어때? 나에 대해 맹세했던 애정과 신뢰와 충성은 변하지 않았겠지?”
유미도 와인 한 모금을 물고 그윽한 눈으로 용준을 바라보았다.
“그럼요.”
용준이 그 말을 입증하기라도 할 듯 키스를 하려 다가왔다.
“잠깐. 용준이 늘 맹세하던 충성도와 신뢰도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거야 제가 쌤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시잖아요.”
“애정도가 충성도와 신뢰도를 늘 입증하는 건 아니지. 이제 그걸 실험할 때가 왔어.”
“또 무슨 미션을 맡기려고 그러죠?”
“이건 비즈니스야.”
“비즈니스요?”
유미는 서울에서 계획하고 추진하려는 일을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철저히 비밀인데,
내가 그 유명한 다니엘화랑의 이름을 딴 지점을 낼 거야.
하지만 내가 오너지. 날 도와 달라는 거지.”
“어떻게요?”
“윤조를 그만둬.”
“아니, 그건… 당장에 그만두기는….”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8) 도약 3 (0) | 2015.04.20 |
---|---|
(457) 도약 2 (0) | 2015.04.20 |
(455) 프렌치 커넥션-19 (0) | 2015.04.20 |
(454) 프렌치 커넥션-18 (0) | 2015.04.20 |
(453) 프렌치 커넥션-17 (0) | 2015.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