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 도약 3
유미의 머리가 복잡한 것은 저녁 무렵에 지완과의 통화 때문이었다.
지완은 황인규와 이혼하고 새 남자를 만나 알콩달콩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황인규에게는 이제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지만, 예전의 전화번호도 모두 바뀌고
새 연락처는 모른다고 했다.
또 하나 안타까운 사항은 유미가 만나 보려고 했던 유 의원이 며칠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이다.
유 의원을 만나 그와 단둘이 조용히 이야기를 하려던 희망이 무너져 내린 우울함 때문에
가슴이 무거웠던 것이다.
그가 그대로 숨을 거두기라도 한다면… 너무도 허망할 거 같았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 옛날 대학 입학식 날,
그의 차에 부딪혀 첫 인연을 맺게 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가 만약 아버지라면… 그를 아버지라고 꼭 불러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의식이 없다니….
그의 눈빛 또한 특별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내가 나락에 빠지지 않게 돌봐주고
새 삶을 살도록 나를 인도했던 거야.
이유진은 누가 유미의 프랑스 유학을 지원한 사람인지 모르며
단지 조두식이 중간에서 그 일을 대행했다고 했다.
조두식이 유 의원, 윤 회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만 했다.
하지만 유미는 유 의원과의 인연과 그의 연민에 찬 눈빛을 떠올리면
그가 엄마의 연인 Y이자 자신의 친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홍길동도 아닌데, 20년 동안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살았다니…
그 또한 유미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가슴으로 삼켰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이복 자매인 지완이 혼자 유 의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았다는 게 너무도 화가 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미의 상상일 뿐이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내일이라도 그를 보러 병원에 한번 들러 봐야 하겠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필체 감정을 의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모든 과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조두식은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고수익을 통하는 수밖엔 없다.
고수익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와 동지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얽힌 과거가 유미의 발목을 칡넝쿨처럼 붙잡고 있지만,
유미는 또한 떨치고 나가 자신의 사업계획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게 복수가 되었든 꿈의 실현이 되었든,
온전히 자신만의 능력으로 세상에 서야 한다.
어린 시절이라면 아버지에게 기대겠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이다.
이제 그건 별개의 문제다.
다만 자신의 인생의 근원을 찾고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아버지로 살아가지 못했을 그의 인생에 대해서도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면
이해해 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자신이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성공해서 아버지란 늙은 노인에게 멋진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멋지게 화랑을 열어 성공하고 싶다.
유미는 잡생각을 떨치려고 수첩을 꺼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화랑을 오픈하는 작업은 누군가가 실무를 맡아주면 좋겠지만,
박용준은 일단 두고 볼 생각이다.
그는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
유미는 인사동에서 작은 화랑을 여는 대학동창 우승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미 만나서 윤곽을 잡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김 교수와도 두어 가지 프로젝트를 의논하려고 하고 있다.
서울에 온 지 며칠 되지만, 파리의 다니엘에게서는 매일 전화가 걸려왔다.
유미의 부재가 그의 사랑을 부추기나 보았다.
다니엘과 통화가 끝나면 유미는 런던에 있는 에릭과 통화했다.
에릭은 아버지보다 더 사업 수완이 뛰어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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