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450) 프렌치 커넥션-14

오늘의 쉼터 2015. 4. 20. 23:23

(450) 프렌치 커넥션-14 

 

 

 

 

유미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백화점에서 파트타임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저 사람은 집 안에서 가구처럼 살아가죠.

 

사는 게 지리멸렬하죠.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든 당신을 한번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화가 나요.

 

가끔 저 사람이 당신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거 같아서요.

 

당신이 한국에서 성공한 여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요즘 프랑스에 와 있다는 걸 알고는 만나려고 결단을 내렸어요.”

“제 근황을 누가 당신에게 알려 주나요?”

“당신의 측근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측근이라고요? 한국의?”

“그건…지금 말하기는….”

“좋아요. 대신에 오빠와 독대할 기회를 주세요.”

유미는 돈가방을 열었다.

“자, 확인해 보세요.

 

저로서는 무리를 했어요.

 

하지만 유진 오빠와 당신을 보고는

 

이렇게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이 정도는 위자료로 당신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자벨이 ‘거 봐요,

 

난 사기꾼은 아니랍니다’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미는 화제를 돌렸다.

“유진오빠가 작품전을 했던데, 요즘도 작품해요?”

“보셨잖아요?

 

거동도 불편하고 한쪽 눈도 실명이니 원하는 작품은 힘들지 않겠어요?

 

그나마 앉아서 가까운 오브제들을 나름대로 찍는 거죠.

 

모든 게 다 변했으니 적응하는 수밖에요.

 

이제 돌아가 주세요.”

“부탁인데, 잠깐만 저 혼자 오빠를 만나 작별인사를 하고 가게 해줘요.”

이자벨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는 유진의 방으로 갔다.

 

그러나 유진의 방문은 잠겨 있었다.

“오빠, 문 좀 열어줘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안쪽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빠, 오빠를 어떤 방식으로든 돕겠어요.

 

그게 내가 사랑했던 오빠에게 용서를 구하는 거겠지?

 

다만 꼭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

긴 침묵이 이어졌다.

 

기다려도 반응을 하지 않는 유진에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유미는 명함을 꺼내 문 아래 틈으로 밀어 넣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좋아요, 오빠. 여기 내 명함이에요.

 

언제든 연락하세요.

 

다만 닷새 후면 난 한국에 다니러 가요.

 

그 안에 마음 바뀌면 내게 꼭 연락 주세요.”

천천히 휠체어 굴리는 소리가 문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명함만 빼들고 휠체어 바퀴소리는 물러났다.

유미는 유진의 아파트를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카페에서 기다리던 베르나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베르나르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 유미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말없이 뒤따랐다.

 

유미의 눈치를 보던 베르나르가 운전석에 앉자 물었다.  

 

“어디로 가지?”

“지옥으로.”

“방금 전에 거기서 나온 거 같은 얼굴인데?”

유미는 흠씬 두들겨 맞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유진이 그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지금은 견딜 수 없이 혼란스럽다.

 

그래도 그를 통하면 유미를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종하는 손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면 다행일까?

그때 베르나르가 속도를 내며 말했다.

“좋아, 로즈! 넌 죽었어. 오늘은 지옥 맛을 보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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