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 프렌치 커넥션-11
유미는 이유진이 살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게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쓰나미 같은 혼란이 밀려와서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 모른다.
다만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은 들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이유진에게 용서를 받는 일이 더 끔찍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유미는 여자와 이유진을 직접 만나보는 조건으로 돈을 건네기로 했다.
여자는 다음 날 오후 3시에 지난번의 이브리 아파트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수표가 아니라 전액 현금으로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이유진이 살아 있는데, 제가 출연한 그 동영상 파일 값으론 정말 세군요.
이건 뭐 앤절리나 졸리의 개런티도 아니고.”
“이건 아주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내일 보시면 잘 알겠지만….
날 사기꾼이나 협박꾼 취급하지 말아요.”
그러고 다시 보니 여자의 인상은 그런 쪽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림새로 보아 부유한 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상하게 자존심 강한 사람
특유의 정신적 고고함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
어쨌든 유미는 아침부터 은행에서 현금을 구하느라 긴장을 한 데다 점심까지도
입맛이 없어서 굶었다.
현실감이 없고 판단력도 희미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 있는 이유진을 본다….
그러나 이 만남은 무얼 예고하는 걸까?
정말 여자를 믿을 수 있을까?
그의 배후는? 유미는 망설이다 베르나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안전장치를 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이런 일엔 다니엘보다는 젊은 베르나르가 더 믿음직스러웠다.
베르나르는 당장에 차를 끌고 와 주었다.
커다란 서류가방에 챙겨온 현금을 차에 싣고 유미는 주소지를 대주며 말했다.
“옛날 친구 집에 잠깐 방문하는데 금방 돌아올 거야.
아파트 앞 카페에서 맥주 한잔 하며 기다리고 있어 줘.
만약 한 시간이 지나도 내가 아무 연락이 없다면 그 주소지로 와 주고.”
“알았어. 그런데 얼굴이 심각하네. 싸우러 가는 사람처럼. 남자 친구집?”
“아니, 여자 친구.”
“ㅋㅋ 돈 갚으러 가나 보네. 아아, 알겠다.
오래 지난 돈 갚으려니 속이 아픈 거야, 그렇지?”
나름 눈치 빠른 그가 서류가방을 슬쩍 보더니 상상을 발휘하며 말했다.
“괜히 넘겨짚지 마.”
“어쨌든 난 관심 없어. 일이 끝나면 오늘 밤 로즈와 함께 지낼 거라는 기대 외에는.”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후미진 곳에 차를 세우게 하고 유미는 아파트로,
베르나르는 카페로 향했다.
지난번 봄에 찾아왔을 때보다 아파트 안의 나무가 푸르게 우거져 있었다.
유미는 우황청심환을 하나 꺼내 씹어먹었다.
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한 후 오후 3시의 눈부신 햇빛 속을 똑바로 걸어갔다.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마치 꿈속에서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걸었다.
8년이나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8년 동안 유미의 어두운 꿈속에 유령으로 나타났던 인물이다.
그가 살아 있다니. 어떻게!?
유미는 낡은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며 주소지 메모를 꺼내 층수와 호수를 다시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눌렀다.
지난번 그 아파트 문 앞에 다가갔다.
유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눈앞의 초인종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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