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 프렌치 커넥션-9
유미는 이유진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다 이른 아침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날 그는 갑자기 찾아와 왜 떠나자고 했을까?
우스운 건, 이유진 대신 황인규와 급히 짐을 챙겨
베네치아로 떠나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운명이라면 너무나 묘하지 않은가!
홍두깨에게서 메일을 확인한 것은 오후가 넘어서였다.
‘좋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겠지요.
당부하건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비밀스러운 접촉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더 크게 다칠 것입니다.
당신도 준비가 된 거 같으니 속전속결합시다.
내일 오후 3시에 튀일리 정원의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방에서 봅시다.
물론 제가 당신을 알아볼 테니 당신은 조용히 거기서 그의 <수련> 시리즈를 감상하고 계시길.’
내일이라면 목요일이다.
게다가 장소가 미술관이라니….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홍두깨란 인간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건 분명한데….
홍두깨란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이유진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이 날 것이다.
그의 당부대로 비밀스러운 접촉이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홍두깨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홍두깨는 몸이 단단한 남자거나 어쩌면 폭력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니엘에게라도 언질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유미는 모든 걸 혼자 감당하자고 생각했다.
돈을 요구하는 관계는 오히려 덜 위험하다.
타협해서 깔끔하게 처리하면 된다.
모든 위험한 문제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온다.
이유진도 마지막 날, 자신을 정말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황인규도 파멸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그런 것…. 사랑이 바로 문제라면 문제다.
인규와 통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인규의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멘트가 나왔다.
전화번호를 바꾸었나?
아니면 인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공범이자 공동 운명체인 인규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흥분할까?
연락이 된다 해도 지금의 정신 상태라면 인규가 모르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유미는 다음 날 오후 2시 반에 미술관에 도착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콩코드 광장 옆의 튀일리 정원 안에 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미술관 내 타원형의 넓은 방에 전시되어 있다.
자연채광으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수련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이 그윽한 빛의 언어로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의 전시실이라 유미도 가끔 들르는 곳이다.
목요일 오후 3시의 미술관은 관람객이 적당히 드나들었다.
대부분 여자들이고 남녀 커플 관광객도 보였다.
유미는 벤치에 앉아 그림을 바라보면서도 옆눈으로 계속 관람객들을 관찰했다.
건장한 남자만 보면 긴장으로 가슴이 뛰었다.
3시 10분이 되어도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휴대전화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그때 누군가 말을 붙였다. 한국어였다.
“저 죄송하지만 이 디카로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유미 또래의 관람객 여자가 웃으며 디카를 내밀었다.
“혼자 오니 사진 찍을 때 곤란하네요.”
“네, 그러죠.”
사진을 찍은 유미가 건성으로 말하고 시계를 보며 앉았다.
“혼자 오신 거 같은데 사진 찍어 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유미가 고개를 젓자 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네를 좋아하시나 봐요, 오유미씨?”
유미는 놀라서 뒤를 돌아 그 여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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