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 위험한 약속-7
“소피가 그러더군. 남편한테는 딱 잡아뗐으니까
절대 자신과의 관계를 실토하면 안 된다고.
그 남편이란 작자가 내게 확인 전화를 했어.”
“뭐라 그러셨어요?”
“아니라고 잡아뗐지. 그렇다고 믿는 거 같진 않았지만. 그런데 문제는 소피야.”
다니엘의 숨이 살짝 거칠어졌다.
“소피가 그러더군. 자신의 섹스 스캔들 때문에 남편의 정치경력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다고.
자기 남편은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라 사실 남편이 우리 관계를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거라고.
그러니 그런 의혹을 덮을 만한 일로 남편을 설득하거나 납득시켜야 한다고.
애초에 스캔들이 일어날 실마리를 완전 봉쇄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꿈에도 스캔들을 상상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그 방법으로, 내가 소피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만 된다고.
그러면서 언론에 가짜로 결혼이나 약혼발표를 흘리라는 거야.
그러면 남편도 안심할 거라면서.
그러면서 소피는 이런 제안을 했어.
잠깐 로즈와 약혼하라고….”
“네에? 무슨 말이죠? 저와 약혼을요?”
“아, 미안해요. 이게 무슨 황당시추에이션인지… 그래요, 잠깐동안만.”
“계약결혼도 아닌 뭐 계약약혼 같은 건가요?”
“말하자면 그렇지.”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나라라고 하지만 계약약혼이라니?
철학자 보봐르가 아닌 마담 보바리에 더 가까운 나 같은 여자에게 계약약혼을?
“그것도 잠깐 동안 계약약혼이라니?”
“소피의 남편은 아마도 내게 의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가 봐.
소피를 내게서 완전히 분리하고 싶어 해. 자원해서 곧 미국 주재 대사로 발령받아 나간다네.
그러니 남편이 안심하고 나갈 수 있게 당분간만 그렇게 해달라는 거지.”
갑자기 유미는 일이 터지자 남편에게 찰싹 달라붙는 소피가 얄미웠다.
“결국 소피는 다니엘을 버리는 거네요.”
“그런 조건으로 나를 떠나려는 거지.
그런데 위자료로 내가 갖고 있는 르누아르의 유화 세 점을 몽땅 달라고 하더군.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뭐라구요?”
유미는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한몫 잡고 튀겠다는 거야, 뭐야?
“다니엘, 오히려 역공을 하지 그래요?
남편에게 불륜관계를 다 말하겠다고, 아니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그러지 그래요?
정치가라면 그게 얼마나 큰 대미지라는 걸 알 테니 그대로 무마할 거 아닌가요?”
“그렇게 되면 소피에게 비수를 꽂는 거지. 아주 비겁한 거야.
처음엔 나도 소피에게 배신감을 느껴서 제정신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녀가 그걸 원하니 그대로 해주고 싶어. 내가 한때 위안받고 사랑했던 그녀니까.
그리고 나도 그녀가 가정을 깨는 거 원하지 않아. 그림 아깝지 않아.
그녀가 원하는 그림 다 줄 거야.
다만 사랑의 종말이 못 견디게 서글프고 우울할 뿐이지.”
다니엘이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쓸었다.
이 나이 든 남자가 애인의 배신으로 상처받고 슬퍼하고 있다.
착한 걸까, 순수한 걸까? 그런데 르누아르의 그림은 도대체 얼마나 할까?
다니엘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니엘이 고개를 들었다.
“소피가 진작에 그런 타협안을 내놓았는데 결정을 못하고 있었지.
차마 로즈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에릭을 만나러 런던에 간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
에릭하고는 별일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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