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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위험한 약속-9

오늘의 쉼터 2015. 4. 9. 23:23

(428) 위험한 약속-9

 

 

다니엘이 내려간 후, 유미 또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밖에는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때때로 번개도 치고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다.

 

유미는 빗소리에 마음이 심란해져서 양주를 한 잔 마셨다.

황당한 다니엘의 제안. 이 일이 유미의 운명에 무엇을 예고하는지….

 

갑자기 닥쳐온 행운이라 할 수 있을까?

 

꿈같은 이 일이 설마 악몽이 되는 건 아니겠지?

 

다만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었다.

 

보상이 확실한 계약약혼. 어쩌면 결혼으로 이어질 전초전.

 

하지만 다니엘과의 결혼이 행복할 거란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난 한국으로 조만간 돌아갈 건데. 이 이국땅에 뼈를 묻고 싶진 않은데….

 

아니면 적당한 때에 파혼이나 이혼을 하고 위자료를 챙긴다?

 

그랬을 때 내가 받을 수 있는 타격이나 상처는 무엇일까.

 

상처라면 삶에서 무수히 받지 않았는가.

 

그 상처에 대한 보상이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걸까.

 

한입에 덥석 물고 싶은 미끼 아닌가.

 

하지만 다니엘에게는 남자로서의 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그의 아들 에릭의 매력을 알고 난 이후엔 더욱더.

 

하지만 계약약혼 기간에는 내게 성적 자유를 허가한다고?

 

다니엘과 약혼하고 에릭과 결혼한다?

 

유미는 기발한 발상과 상상에 웃음이 났다.

그때 거대한 나무뿌리가 거꾸로 처박힌 것 같은 번개가 검은 유리창에 명멸했다.

 

그리고 굉음을 내는 천둥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오늘밤 잠자기는 다 글렀군. 유미가 양주 한 잔을 더 따라 마셨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다니엘이 비를 맞은 듯한 몰골로 서 있었다.

“다니엘, 웬일이에요? 비를 맞은 거예요? 땀이에요?”

“약을 먹었는데도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셨더니….”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땀에 젖은 그의 몸을 바라보며 유미가 물었다.

“괜찮아요. 그냥 눈만 붙이면 악몽을 꾸어요.”

“아이 참, 웬 악몽을?”

“로즈, 부탁인데 혼자 잠들기 싫어서 그러는데 오늘 밤 나와 함께 있어 줘요.”

다니엘의 몸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유미는 다니엘을 일단 자신의 침대에 누였다.

 

그리고 마른 수건으로 그의 얼굴과 이마의 땀을 훔쳐 냈다.

“내가 잘 때까지 좀 옆에 있어 줘요. 로즈가 옆에 있으면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의외로 심약한 남자인가.

“어린애처럼 악몽을 꾸다니. 여자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힘든가요?”

유미는 소피와의 이별 후유증을 이렇게까지 앓고 있는 다니엘이 바보스럽게 보일 지경이다.

 

다니엘이 그 말에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그러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 평생 어머니와 헤어지는 게 이렇게 힘들다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왔다.

“어릴 때,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었어요. 벌써 50년이나 되었는데….

 

어머니는 노르망디의 별장에서 실종된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되었어요.

 

내가 발견했지. 시골 아이들이 내 시계를 뺏어서 숲에 감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건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귀중한 회중시계여서 난 그걸 찾으러 숲속으로 갔다가….

 

그 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가끔 그때의 꿈을 꿔요.

 

난 늘 숲을 헤매는데 문득 풀숲에서 어머니의 신발이 보이고 그리고…

 

아, 어머니의 마지막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다니엘이 괴로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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