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위험한 약속-3
“그랬더니요?”
“뭐 그룹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만 이 분야에서는 신뢰가 중요하니까, 로즈의 역할이 중요할 텐데….”
에릭이 유미를 슬쩍 떠보았다.
“제가 신뢰감이 안 느껴진다는 말씀?”
“오,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1차로는 아버지의 안목을 저는 신뢰하는 편이죠.
게다가 두 번째로는 로즈를 실제로 만나니까 알겠군요.
우린 미술품 감정에는 전문가입니다. 사람도 웬만하면 한 번에 척 알아보죠.”
“가짜와 진짜도 구별하시겠죠?”
“대충 그렇죠. 사실 제가 아는 위조전문가 친구가 있는데,
솔직히 이 친구가 그린 건 잘 구별 못해요.”
“위조 전문가 친구도 있어요?”
“이 바닥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인간의 종류는 다 알고 지냅니다.
그런데 로즈는 진짜입니다.”
뭐가 진짜라는 거지? 어쨌거나 그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매너와 에너지를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8시반이었다.
유미는 파리로 가는 막차를 놓친 걸 알았다. 눈치를 챈 에릭이 말했다.
“뭐가 걱정입니까? 여기가 호텔인데 자고 가면 되지요.
내일까지 시간을 벌었으니 옆에 있는 ‘롱 바’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시죠.
제가 오늘 방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유미는 이 호텔의 인테리어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객실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요금이 엄청 비쌀 거 같았다.
에릭이 계산을 끝내고는 옆에 있는 바로 유미를 데리고 갔다.
그곳의 긴 테이블 앞에는 여자들의 제각각 다른 한쪽 눈만이 등판에 그려진 필립스탁의
흰 의자들이 죽 놓여 있었다.
“당신 눈과 닮은 의자가 저기 있군요. 저기 앉으시죠. 동양인치고는 눈이 크시군요.”
유미는 에릭이 권해주는 의자에 앉아 그가 시킨 스카치위스키를 마셨다.
그는 현대미술의 시장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했고 유미는 취하지 않으려 긴장하면서 마셨다.
그가 취급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레 유미가 그에게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빠른 시일 내에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시겠지만 데미안은 작품 값이 아주 비싸요.
하지만 모든 작품은 작가에게 사야 가장 싸지요.
데미안에게 연락해보겠어요.
팔 수 있는 작품이 어떤 게 있는지.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함께 데미안을 만나보죠.”
“함께요?”
“데미안은 내 친구니까.”
오, 이 남자 점점 멋있어진다.
“정 팔 게 없다면 제 거라도 팔지요,
뭐. 맘에 드실지 모르지만. 한두 점은 갖고 있으니까.”
유미는 에릭에게 점점 빠져든다.
어쨌거나 이 남자만 붙들면 되는 거다.
“데미안은 어떤 사람이에요? 좀 괴팍한 사람일 거 같아요.”
“글쎄요.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한데요.”
작업용 멘트로 낚시를 던지는 건가?
유미는 미소짓고 있는 에릭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에릭은 담백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데미안은 작품을 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을 팔지 않습니다.
그래서 함께 만나자고 한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제가 그의 마음에 들까요?”
그럼요, 당신은 아름다우니까라는 대답을 유미는 기대했다.
그러나 에릭은 대답했다.
“그는 여자에게 관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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