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오, 로즈(Oh, Rose)-15
물론 남자친구 역은 용준이 맡을 배역이다.
게다가 인증샷도 찍을 겸 오늘밤부터 카메라를 작동시킬 거라고 유미는
다니엘에게 은밀하게 말해 두었다.
유미는 오후 일정을 마치고, 저녁 약속시간까지 남는 시간에 용준을 색다른 장소로 안내했다.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용준은 유미와 회포를 풀 날만 고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 좀 색다른 박물관에나 가볼까?”
“에이, 이제 박물관은 싫어요. 좀 화끈하고 새끈한 데는 없어요?”
“그런데는 남자 혼자 알아서 가야지. 그 동네로 일단 답사를 가자고.”
유미는 ‘빨간 풍차(물랑루즈)’가 서있는 파리의 환락가인 클리시 대로로 그를 데려갔다.
그곳은 밤이면 온갖 섹스쇼가 성행하고 거리에서 호객하는 창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미는 온통 섹스 숍과 섹스 공연장이 위치한 그 거리에서 어느 건물 앞에 섰다.
지난번에 혼자 와서 디카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 자신을 바라보던 남녀커플들의 시선 때문에
용준이 오면 함께 와서 자세히 구경하리라 마음먹었던 곳이다.
“에로틱 뮤지엄?”
“응. 에로티즘 박물관이야. 둘러보면 재미있어.”
지하에서부터 6층까지 성에 관한 온갖 자료가 전시된 박물관 내부는 온 세계에서 수집한
진기한 그림과 비디오, 사진, 조각, 성기구로 꽉 차 있었다.
용준은 갑자기 고도의 집중력과 호기심을 발휘해서 안내문을 읽으면서 유미에게
뜻을 물어오기도 했다.
디카를 꺼내 흥미 있는 전시물을 찍어댔다.
남자의 남근이 스크루인 포도주 따개, 남근 망치, 남근이 총신인 권총, 아프리카의 남근보호대,
여자 조각상의 은밀한 곳에 담배를 끼우는 파이프…
사람들의 성에 대한 상상력은 예나 지금이나 무궁무진하고 발랄하다.
“와, 정말 재미있는 게 많네.”
용준이 킥킥댔다.
“쌤, 저거 하나 선물할까요?”
용준이 가리키는 곳에는 잘생긴 남근이 송이버섯처럼 불쑥 솟아 있는
붉은 색 우단 의자가 놓여 있었다.
“ㅋㅋㅋ…혼자 있는 외로운 밤에는 그만인 거 같은데. 주문제작도 가능할 거 같은데요.”
“그만해라. 저런 무식하고 천박한 붙박이용은 사양이야.”
“농담이에요. 참 이런 걸 전시하다니, 이 나라는 오지랖도 넓고,
거 뭐 똘레랑스인지 또랑인지 품도 넓은 나라예요.
확 트이고 자유로운 여기가 왠지 전생에 내 고향 같아요.”
박물관은 섹스 숍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한 커플이 다정하게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딜도들, 가죽 채찍, 큐빅이 박힌 수갑, 가죽 옷,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도 많이 보였다.
갑자기 윤동진이 떠올랐다. 그때 용준이 유미를 불렀다.
“이거 너무 귀엽고 예뻐요.”
용준이 가리킨 것은 알반지처럼 손잡이에 보석 박힌 꼬마 딜도와
진주구슬로 엮어진 애무용 스트링과 장식용 지스트링(G-String)이었다.
“아까 의자 대신에 이걸 선물하고 싶어요.”
“난 이런 거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그냥, 재밌잖아요. 파리에 온 기념으로요.”
“좋아.”
유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용준이 계산을 하고 그걸 유미에게 내밀었다.
“맛있는 전식을 먹은 거처럼 지금 흥분되네요. 본식이 막 땡기는 거 있죠.”
용준이 상기된 얼굴로 의미있는 말을 했다.
“안 그래도 프랑스식 정찬이 마련되어 있잖아. 늦겠다. 빨리 가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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