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오, 로즈(Oh, Rose)-6
그의 입에서 결정적인 고백을 듣고 싶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러나 그는 말을 돌렸다.
“에로티시즘은 진정한 감각이 아니오.”
알듯 말듯 한 말을 했다.
유미가 고개를 갸웃하자 다니엘이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려는지 양미간을 찌푸렸다.
“음, 로즈는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자기가 예술가도 아닌 화상 주제에 영감 타령을 하는 불란서 영감을 보고 있자니 더 답답해졌다.
유미는 궁금한 걸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까 저를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건 무슨 말이죠?”
다니엘이 유미를 보고 허를 찔린 듯 말했다.
“유미를 어떤 식으로든 사업적으로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소.
그건 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게 뭐죠?”
“….”
다니엘이 망설였다.
“설명하기 곤란한데… 기회가 되면 얘기할게요.
당신은 내 삶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니까….”
“좋아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면 되죠.”
“으음, 그래요.”
다니엘이 웃었다.
“난 예술의 세계를 사랑해요.
그건 상상의 세계니까.
이 각박한 현실을 직시하는 건 끔찍하죠.”
“그러시겠죠. 저도 뭐든 상상하는 걸 즐겨요.”
유미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다니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 그건 나도 그래요. 조만간 필요하다면 내 그림들을 한번 보여주겠소.”
“예, 저도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저를 도와주세요.”
다니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는 프랑스식 볼인사를 나누며 그와 헤어졌다.
그의 볼은 끈적하고 뜨거웠다.
위층으로 올라온 유미는 다니엘과 나눈 대화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내게, 또는 내 인생에 영감을 주는 그림들을 나는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림들도 많지만 개중엔 사랑하지 않는 그림들도 많지요.
우리 집은 대대로 화상(畵商) 집안이거든요.
고미술도 많고요.
그러나 내가 사랑하지 않는 그림들은 내게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또는 선물로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감을 주는 그림들을 사랑한다 했는데,
내가 자기에게 영감을 준다면서 나는 도대체 사랑하는 거야, 뭐야?
그 부분은 전혀 명백하게 밝히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을 무료로, 또는 선물로 줄 수도 있다고?
소피에게는 그런 말을 했다고? 그가 내게는 그림을 선물로 줄 수 있을까?
하지만 내게 어떤 식으로든 사업상 도움을 줄 용의가 있다고 했지.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뭘까? 내가 돈이 없다는 건 잘 알 테고, 내게 바라는 게 뭘까?
가진 건 몸밖에 없는 여자에게 성을 바라는 건 당연할 텐데.
그의 눈빛은 성상납을 바라는 자의 끈적하고 노골적인 눈빛은 아니었다.
그게 좀 어렵다. 단순하고 쉬운 거래라면 그런 걸 상상할 수밖에 없을 텐데.
다니엘의 말은 모호하며 무언가 여지를 두었다.
유미는 다니엘의 조건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았다.
어쨌든 그것은 다니엘만의 유혹의 한 방식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어쨌거나 유미는 기분이 들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하느니라’란 시가 있지만,
분명한 건, 유혹받는 것은 유혹하는 것보다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9)오, 로즈(Oh, Rose)-8 (0) | 2015.04.08 |
---|---|
(408)오, 로즈(Oh, Rose)-7 (0) | 2015.04.08 |
(406)오, 로즈(Oh, Rose)-5 (0) | 2015.04.08 |
(405)오, 로즈(Oh, Rose)-4 (0) | 2015.04.08 |
(404)오, 로즈(Oh, Rose)-3 (0) | 2015.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