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오, 로즈(Oh, Rose)-5
다니엘이 성큼성큼 침실로 들어갔다.
유미는 갑자기 황당해졌다.
침실로 가자고? 이게 무슨 노골적인 유혹인가?
그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내가 그의 말을 잘 이해 못한 거 아닐까?
유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엉거주춤 그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널따란 침대 위의 붉은빛 시트는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유미는 문득 소피와 다니엘이 저녁 내내 ‘레슬링’을 했을 모습이 상상되었다.
유미가 그곳에 신경 쓰고 있을 때 다니엘이 말했다.
“여길 봐요.”
다니엘은 침실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어딘지 낯이 익은 그림이었다.
반라의 동양 여자가 돗자리 위에서 무릎 꿇고 엎드려 작고 검은 경대로
손을 뻗어 거울을 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검은 거울을 보는 일본 여자란 그림이오. 발튀스의 그림이지요.”
“아, 발튀스!”
사춘기 소녀나 묘령의 여자의 에로틱한 모습을 독특하고 연극적이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리는, ‘롤리타 콤플렉스’가 있을 거 같은 프랑스의 대가.
“저거 오리지널인가요?”
유미가 놀라 물었다.
“당연히! 발튀스는 우리 할아버지의 친구였소.
우리 할아버지도 유명한 화상이었지. 발튀스는 오십이 넘어 일본 여자와 결혼했어요.
아마도 저 여인은 발튀스의 아내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내가 왜 창고에서 저 그림을 꺼내 걸었는지 알아요?”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날, 당신의 미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소?
동양 여인의 신비로운 미소에 대해….”
“그랬었죠.”
다니엘의 귓불이 발개졌다. 그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당신을 만나고 와서 당신의 단아한 모습이 자꾸 떠올랐소.
난 그림을 통해 사랑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연출하는 게 좋아요.
소피는 르누아르 그림에 나오는 금발에 희고 살집이 좋은 나부를 닮았지.
한동안은 내 침실을 르누아르 그림으로 장식했었소.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창고를 뒤져 보니 저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소.”
다니엘의 말을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는 욕실로 향했다.
욕실의 복도에 걸린 그림을 그가 가리켰다.
한 여인이 옷을 벗은 채 욕실에서 머리에 손을 올리고 거울을 향해 서 있는 그림이었다.
“욕실이란 제목의 그림이지. 그런데 이건….”
그가 다시 얼굴이 발개졌다.
“당신이 술에 취해 처음 우리 집에 와서 잠든 날,
그날 아침에 내가 위층, 당신 방의 욕실 거울 앞에 서 있던 당신을 우연히 보게 되었지.
그래서 그 흥분을 떠올리며 건 거요.”
유미는 그날의 그 민망하던 조우를 기억했다.
다니엘의 이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독특한 사랑의 고백? 아니면 인생의 어느 순간을 소장하고 있는 대가들의 그림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그의 능력?
이를테면 그의 독특한 감수성과 재력? 여태 만나 본 적 없는, 한국에는 없는 별종이다.
그러나 다니엘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건 명백해졌다.
좋은 징조다.
그런데 이 그림들을 침실에 걸고 유미를 부른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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