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오, 로즈(Oh, Rose)-2
“사적인 부탁요…?”
유미가 되묻자 다니엘의 귓불이 발개졌다.
서양남자는 부끄럼을 잘 타는 걸까.
아니면 피부가 희어서 그럴까.
그는 말할 때면 자주 귓불이 발개진다.
“그래요. 혹시 남자 친구 없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 남자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거는구나. 유미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
“예, 없어요.”
유미는 솔직하게 말했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남자 친구가 있나.
“하나 만들어요.”
“예?”
“그러니까 차라리 하나 만들어요. 그리고 위층에 가끔 데리고 와도 좋아요.”
“…?”
자기랑 사귀자는 얘기가 아니었어?
“소피에게 로즈, 아 이건 유미를 우리끼리 부르는 이름이야.”
그러고 보니 두 사람에게 유미는 도마에 자주 오르나 보다.
두 사람이 장미라는 뜻의 ‘로즈’ 앞에 혹시 ‘썩은’이나 ‘벌레 먹은’같은 수식어를 붙일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냥 ‘로즈’라는 별명은 듣기에 좋았다.
“내가 소피에게 로즈에게는 애인이 있다고 했거든.”
이거 무슨 소리야. 이 남자, 어린애가 엄마를 찾듯이 말끝마다 소피, 소피…
결국 소피 때문이란 말이야? 소피인지 소변인지 때문에 내가 개피를 보게 생긴 거야?
“그랬더니 함께 식사나 하자고 하더라고.”
공인인증을 하겠다는 얘기군.
유미는 소피의 눈치를 보면서도 자신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다니엘이 고맙기도 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죠, 뭐. 남자 친구가 한국에서 오거든요.”
유미는 흔쾌히 대답했다.
“다음 주 목요일쯤 어때요?”
다음 주에 출장을 오기로 되어 있는 용준을 염두에 두고 유미가 약속을 잡았다.
“좋아. 내가 목요일 저녁을 초청하지.
남자 친구랑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도 좋아요.
위층에 방을 하나 더 내줄게요.
그냥 남자친구랑 함께 있다는 걸 한 번만 소피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소피에게 내 존재를 안심시키기 위해 인증샷이라도 찍어야겠네.
오늘 따라 커피 맛이 더 쓰게 느껴졌다.
순간 다니엘이 밥맛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사실 다니엘은 알면 알수록 더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유명한 그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기업을 해서 재벌이 아니라,
이렇게 프랑스에는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고 그것을 판매하는 일을 하는
다니엘 같은 사람이 알짜 부자인 것이다.
다니엘은 유미에게는 어쩌면 언덕, 아니 태산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소피라는 방해물이 있지만, 그래서 더 안전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미는 내친 김에 다니엘의 조언에 따라 다니엘의 유명한 갤러리 로고를 박아 넣은 명함을 찍었다.
장미를 떠올리게 하는 명함이었다.
이 명함을 받은 사람들은 유미를 보고, “Oh, Rose!”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유미는 명함에 자신의 영자이름인 ‘Oh, Yumi’ 대신에 ‘Oh, Rose’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꽃’이라는 시구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장미로 남으면 좋지 아니한가.
게다가 꽃 이름을 딴 프랑스 여자 이름을 쓰는 게 세계적인 무대에서는 훨씬 더 득이 될 것이다.
때마침 용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준은 좀 상기된 목소리로 이번 주 일요일에 파리에 도착할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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